[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무능하거나 안이하거나

[라포르시안] 코로나19 유행이 이만한 정도로, 더 위험해지지 않으니 정말 다행이다. 다른 나라가 어떠니 어디는 난리가 났느니 하는 소식과 비교해서? 아니다. 판단은 고통이 얼마나 큰가, 더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우리 주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더 견딜 수 있을까 등을 잣대로 삼아야 한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지금 걱정이 더 크다. 가장 먼저는 다시 유행이 올 때 지난 두 달 가까이 했던 것과 비슷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환자를 치료했던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소진은 더 말하지 않는다. 그에 더해서 자발적이거나 강제로나 활동을 줄이고 멈추었던 사람들이 더 견딜 수 있을까 하는 현재진행형 걱정, 다른 무엇보다 물적 토대가 불안하다.

이제부터 진짜 위기가 닥칠 수 있으니 이미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먼저 눈에 띄는 집합 행동은 호소, 불만 표출, 작은 항의, 소송하겠다는 경고 같은 것이나, 이조차 힘이 있어야 언론에 나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또는 개별화한 고통이 얼마나 클까 짐작조차 어렵다.

어디가 경계인가, 국가와 정부, 정치의 대응은 별 긴장감이 없어 보인다. 무능인지 게으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백신과 재난지원금을 보궐선거와 연관 짓는 그 버릇과 마음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그들에게는 이 모든 개별화된 고통이 보이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듯한 이 영토화 현상, 그리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하지만 당장 문제를 줄여야 하고 또한 지금 어떻게 하는지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니, 급한 대로 몇 가지를 요구하고자 한다. 국가와 정부, 현실 정치가 응답할 것들이다.

첫 번째 부탁. 국가적 지표가 아니라 현실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전환할 것. 국가와 국가의 역할은 진작 개개인의 현실을 떠났고, 방역과 경제 성과의 국가 비교만 남았다. 여러 개인과 그의 고통은 숫자와 통계를 넘지 못하는 것이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적 위상(topology)이 아닌가(관련 자료 바로가기).

저 유명한 국가 재정의 건전성 논란도 이런 정치에 완전하게 부합한다. 재정 당국에 휘둘리는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당국부터 추상의 세계에 속한 재정 건전성을 신줏단지 모시듯 받든다. 이들은 정부 부채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권고도 우습게 여길 것이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고 판단하는 것이 먼저다. 몇몇 사람의 사정을 보고 국가 정책을 정할 수 없다는 그 ‘멘탈리티’부터 바꿔야 한다. 갖가지 구체적인 개별 사정에 주목해야 국가와 집단에 대한 정책을 바꿀 수 있으니, 목표와 수단의 원래 의미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두 번째 부탁. 미리 준비할 것. 매출에 임대료에 비용에... 한계상황이라고 이야기하는 마당에, 모두 선택과 집중, 꼭 필요한 곳과 사람에 초점을 맞춰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에 30만 원 ‘푼돈’을 주는 것과 비교해 말이야 맞는 말이다. 돌봄도 더 필요한 사람 덜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선택과 집중의 능력은 있는지를 묻는다. 누가 얼마나 필요한지 파악은 해 놓았는가? 또 파악할 수는 있는가? 살아남을 만큼 지원할 돈은 확보해 놓았는가? 현실은 이런 마당에.

“3차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발표하며 특고·프리랜서 70만 명을 대상으로 최대 100만원의 고용안정지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신규가 아닌, 기존 1~2차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지원받은 특고·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했다... 신규 신청자는 2월 접수와 심사를 거쳐 2~3월에는 지급을 끝낼 예정이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최대 100만 원을 주는데 접수-심사-지급이 몇 달 걸린다는 이 한심한 준비 태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행정 능력, 전자정부와 정보통신 인프라는 어디로 갔는가? 자영자의 매출이 얼마나 줄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가? 그 사이에 뭘 해 놓았는지, 일 년 전부터 뻔히 예상되던 상황에 이제야 법과 제도를 논의하는 중이라니 말문이 막힌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되풀이하는 말. 이번 유행이 끝이 아닐 가능성이 크며, 그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삶의 토대를 건사하지 못하면 모든 방역 방법은 이론일 뿐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다 소용이 없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남는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재정, 행정, 정보, 법과 제도를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

세 번째 부탁. 예외적으로 담대하고 신속할 것. 생계가 위험한 지경에 최대 ‘100만 원’을 ‘3월까지’ 지급하는 것은 정부의 관점(이해관계)인가 사람의 관점(이해관계)인가. 도덕적 해이니 형평성이니 하는 말, 관례니 행정적 어려움이니 하는 소리를 할 형편이 아니다.

예외 상태에서는 더 용감해야 한다. 연봉 5만 달러에 부양가족이 두 명이면 6천 달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관련 기사 바로가기). 일찍 문을 닫는 식당에는 하루(!) 6만 엔을 지원한다는 일본(관련 기사 바로가기). 왜 이들처럼 상상할 수 없는가?

세 가지를 부탁했지만 어디 그것뿐이랴, 모두 합해서 ‘준비’라고 하자. 이제 막 유행은 상황이 조금 나아지려는 때, 지금이야말로 위기대응 그리고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 혹시라도 또 유행이 번지면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낙관하기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사람이 산다. 그래야 이 정치공동체도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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