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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건강 연속기고(17)] 감염병 재난이 드러낸 노동의 가치와 남겨진 숙제송봉경(노동건강연대 회원, 『노동과건강』 100호 편집위원)

[라포르시안] 노동건강연대는 올 한 해 <라포르시안>을 통해 보건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독자들과 ‘노동과 건강’에 대하여 이야기해 왔다. 오늘 이 글에서는 2020년 ‘노동과 건강’에 대해 한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더 나은 2021년을 위해 어떤 숙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다시 짚어보려 한다. <'노동과 건강 연속기고' 글 목록 바로가기>

제도가 노동자를 힘들게 할 때 물어야 할 것

노동건강연대는 16편의 글을 지면에 보냈다. 노동자가 병원에서 겪는 어려움을 알고 있는 의사들은 환자의 직업을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어떤 일을 얼마의 노동 강도로 일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진료실을 찾아온 이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국적이 어디이든 상관없이 ‘직업이 무엇인가’, ‘무슨 일을 하는가’를 진료 항목으로 꼭 물어보아야 한다는 점을 신신당부하며 부탁했다.

보건의료인이 진료실에서 만나게 될 노동자들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보건의료 산업의 중요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주변적인(!) 업무를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간병 노동자나, 기본권을 유보당한 채 건강을 갈아 넣으며 일하는 전공의의 이야기도 노동과 건강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방송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등의 제도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실태도 살펴보았다. 이주노동자의 건강보험 이용실태와 이에 대한 공격의 부당함도 짚어보며, 이들의 건강 보호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특히,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사업주가 많은 농업에 취업한 이주노동자는 지역가입자로 월 13만 원 가량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노동건강연대가 만난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조건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지역가입자로써 건강보험료는 다달이 내야 하는 현실을 감내하며 상추를 따고 시금치를 포장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서 건강보험을 의무화하였겠지만 모든 이주노동자가 건강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고용제도와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은 아직 요원한 일로 보인다.

산재보험 제도 역시 노동과 건강 연속 기고에서 주요하게 다룬 문제다. 한국에선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아파서 치료받고 요양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안정적이지 않다. 산재보험이 이를 담당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재보험 처리를 할 것이냐, 일자리를 지킬 것이냐, 하는 갈등 앞에서 일자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산재보험 신청이 까다로워 망설이고, 산재환자가 되고 싶지 않아 망설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다.

기업이나 사업주가 노동자들의 산재보상 처리를 막으려고 하기도 한다. 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치는 일 자체를 예방해야 한다는 의지가 크지 않고, 이를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의지를 강제하는 사회적 정치적 압력은 거의 없으며, 그런 상태가 역사적으로 정당화되었다는 맥락도 짚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산재보험 제도 자체가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형적인 노동의 출현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도 짚어볼 수 있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산재보험이지만, 사업주의 비용, 행정조직의 효율적 집행 등을 더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제도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더 힘겹게 할 때 이를 바꾸어내는 힘을 어디서부터 만들 수 있을까? <라포르시안>에 기고한 글들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다.

2020년이 ‘노동과 건강’에 건넨 이야기들

2020년의 코로나19 대유행은 보건의료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보호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유례없는 재난의 크기 앞에 인력을 충원하고 처우를 개선하라는 요구는 응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재난 이전에, 이러한 요구를 실현할 시간이 충분히 있을 때조차 피하고 미뤄오지 않았는가. 코로나19 앞에서, 미뤄왔던 많은 숙제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를 본다.

‘필수노동자’라는 단어가 귀에 감기는 요즘이기도 하다. 청소하는, 돌봄을 하는, 먹거리와 음식을 배달하는 노동자들에게 감사와 존중을 보내는 시민이 늘고,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났다. 비대면의 시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는 시대가 된 것 같지만, 사회구성원의 생명을 유지하고 돌보는 노동은 노트북의 모니터로는 할 수 없다. 제도적 보호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응답까지 보면 안도감마저 든다. 이 안도감이 소비자, 시민 개개인의 선한 마음에서 끝나지 않아야 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현실에서 결실을 맺어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지 못할 이는 없을 것이다.

마스크를 지원하고 위험수당을 지급하는 일, SNS로 감사의 인사를 전파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계속되면 좋을 일이고 확산되길 바란다. 하지만 재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반짝 힘내자는 캠페인만으로 필수노동자들을 응원할 수 없기에 다른 압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가 내놓는 제도개선책이 노동자로서의 권리확장을 미루기만 한 채로 임시적인 방책만을 담고 있다면, 온정에만 기대어 필수노동자를 지원하는 게 옳은지 물어야 한다. 그들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역량과 협상력을 보장해주지 못한 채 머무는 일이 옳은지 물어야 한다.

또한 2020년은 전태일 50주기이기도 했다. 전태일이 보듬고자 한 어린 시다와 미싱사들은 2020년의 작은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노동자로 이어지고 있다(이들 상당수는 또한 필수노동자이기도 하다). 건강과 안전에 대한 정보는 없고, 주먹구구식 임금체계 아래 수당없는 초과노동을 한다. 노동조합은 거의 없다.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도 근로감독관으로부터 귀찮은 민원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게 가장 큰 위험은 임금체불과 장시간 노동, 직장 내 괴롭힘 등이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은 수직적이고 위계를 따지는 문화와 노동자를 효율로만 보는 관점이 만나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정신건강에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2019년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성일수록, 비정규직일수록 법시행의 효과를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2021년에도 노동자들을 힘들게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렇게 경제적으로건 사회적으로건, 심지어 문화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지위에 있는 노동자를 우리는 2021년에도 지속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 노동자도 아니고 노동자가 아닌 것도 아닌 채로 ‘특수고용’ 형태로 노동자들을 옭매는 제약을 이제 그만 없애버려야 한다. 이들이 문제 없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지원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는 강력한 행정력과 노동자의 관점에 선 근로감독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2020년이 남긴 숙제를, 전태일이 남긴 숙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일일 것이다.

노동건강연대는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고 이를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단체이다. 계약직, 파견, 외주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조합을 조직하기조차 힘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을 펴고 있다.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을 받지 않고, 단체 활동을 지지하는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노동건강연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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