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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온갖 폭력으로 병원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3.07.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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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모든 폭력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때로 폭력이 부당한 탄압에 저항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에.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 정당화는 자기중심적 착각일 뿐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폭력은 범죄행위에 다름없다. 하물며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병원 내에서 이뤄지는 폭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 병원 내에서 이뤄지는 폭력의 실태는 상당히 심각하고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응급실은 물론 진료실 내에서도 폭언과 폭행이 행해진다. 더욱 큰 문제는 폭력의 가해자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기도 하지만 의사가 의사를, 혹은 의사가 간호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사하기도 한다. 드물게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폭력을 가한 적도 있다. 폭력의 가해자가 어느 순간 피해자로, 피해자가 어느 순간에 가해자로 돌변한다. 폭력의 악순환이다.

몇 가지 조사결과가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의가 실시한 '2012년 전공의 근로환경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련기간 중 교수 및 선배의사에게 폭력 및 폭언을 당한 적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6.10%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보다 앞서 대전협이 지난 2007년 응급실 전공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629명 가운데 67%가 폭언이나 폭력을 경험했다. 지난 2010년 전국 141개 병원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가운데 80.7%가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경험했고 50%는 폭행을 경험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병원 내 간호사나 행정직 역시 폭력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약 50%가 환자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응답자의 23%는 의사로부터 폭언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런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다. 대체 어쩌다가 국내 병원이 이렇게 폭력적인 환경이 됐나 싶을 정도다. 폭력의 양상도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응급실에서 빨리 치료해주지 않는다고 집기를 부수고 의사나 간호사에게 폭언을 퍼붓고 폭행을 가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최근에는 치료결과 등에 불만을 품고 환자가 자신을 치료한 의사에게 흉기로 중상을 입히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선후배 의료진간 폭언이나 폭행도 끊이지 않는다. “맞으면서 배운다”는 이상한 도제식 수련 문화 탓에 교수가 전공의를, 혹은 선배 전공의가 후배 전공의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가하는 일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작년에는 환자가 자신의 앞에서 전공의를 폭행한 교수를 벌해 줄 것을 요구하는 민원을 해당 병원 측에 넣기도 했다.

병원 내에서  이처럼 광범위하게, 일상다반사로 폭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믿기 힘들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미디어 속에서도 걸핏하면 환자가 의사의 멱살을 잡거나, 선배 의사가 후배 의사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나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행사한 대가로 처벌을 받는 장면은 보기 힘들다. 은연중에 병원내 폭력이 별일 아닌 듯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의사사회도 폭력적 문화로 얼룩졌다. 작년에는 의사협회 회장에게 징계 처분을 내린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에게 동료의사들이 휴대폰을 이용해 험악한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의협 회장이 중앙윤리위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은 이유는 그가 야인시절 전임 회장에게 날계란을 던지는 등 폭력적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노환규 회장은 결국 “현직 의협회장에게 계란투척이라는 물리적 폭력을 가한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취지가 옳다 해도 부적절한 행동에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고 규범”이라 말하며 사과했다.

    최근 의료계가 병원 내 폭력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관련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의료기관 내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할 경우 가중처벌로 다스리자는 것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개정 시도가 수차례 이뤄졌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환자나 시민단체가 반대해 무산됐다. 의료인 폭행시 가중처벌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누구에 의해서 이뤄지느냐는 따라 폭력이 갖는 문제의 본질이 다를 수 없다. 어떤 이유의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폭력의 역사>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딱 세 번의 폭력을 행사한다. 가게에 침입한 강도가 종업원을 강간하려할 때, 갱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왔을 때, 그리고 형이 자신을 죽이려 할 때였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모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폭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상당히 우울하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족이 다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스란히 남겨진 폭력의 기억에 갇혀 결국 이 가족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폭력은 영혼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 특히 병원 내에서 이뤄지는 폭력은 범죄행위고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안전과 최선의 진료를 위해서라도 응급실에서의 폭력 행위만큼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의료인간 폭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병원은 지금 온갖 폭력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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