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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⑮] 외국인이 건보재정 위협한다는 허상...이주노동자에게 건강보험이란?김정우(노동건강연대 회원,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라포르시안]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15살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중독으로 숨진 산재사망 사건을 돌이켜볼 때,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던진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동환경 개선의 시작을 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병원을 찾은 노동자에게 주로 하는 업무와 사용하는 물질을 의료인이 묻는다면 보다 적정한 진료를 할 수 있고, 다친 이후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진료실에서 환자의 직업력을 묻는 의료전문가의 질문은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정책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장의 의료전문가가 적합한 치료와 재활 및 예방을 위해 환자의 직업을 묻고, 직업이 건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격주로 연속기고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주>

최근 뉴스 기사를 보고 기시감이 들었다. 건강보험료는 매년 오르는데, 외국인, 특히 중국인이 상당한 보험급여를 받아 가도 되냐는 기사다. 매년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혹은 공중보건 위기라든가 건강보험 재정이 우려될 때마다 일부 정치인들이 외국인에 대한 건강보험 재정지출 자료를 들고나온다. 레퍼토리는 비슷하다. 먼저 건강보험 재정 고갈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외국인에게 지급된 건강보험 급여액을 보여주면서 ‘먹튀족’ 혹은 ‘얌체족’으로 표현되는 외국인이 건강보험 재정을 거덜내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치 외국인이 건강보험 재정 고갈의 핵심인 것처럼. 거기에 줄줄 새나가는 재정을 내국인이 ‘혈세’로 메꾸고 있다고 덧붙인다. 내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것이 마치 외국인 때문인 것처럼.

이런 기사들은 늘 반박된다. 전체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를 보면, 외국인이 건강보험료로 내는 금액이 급여로 받아 가는 금액보다 크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서 진행한 연구는 외국인 가입자들이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거나, 2019년 7월 전까지 임의가입이었던 지역가입자 가입에 있어서 역선택(의료이용 수요가 높은 사람만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증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2017년 한 해 동안 외국인 지역가입자 중 의료를 이용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내국인과 비슷했지만(외국인 11.9%, 내국인 10.1%), 직장가입자는 23.7%로 내국인(5.0%)보다 매우 높았다. 환자 1인당 연간 진료비와 환자 1인당 연간 입내원 일수는 내국인보다 훨씬 적었다.
1일당 진료비는 외국인이 다소 높았는데, 이는 외국인이 의료이용을 못 하다가 중증이 돼서야 의료이용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면서도 고액사용자(연간 1000만원 이상) 비율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적었다.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 흑자의 이유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5년 6개월간 발생한 316억원의 외국인 부정수급<관련기사: 매년 오르는 건보료…중국인이 5년간 2조5천억 타갔다는데>에 대해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은 과연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4년간 9,417억원의 흑자<관련기사: 외국인이 건보 '공짜'이용?…낸 건보료보다 보험혜택 덜 받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그 배경은 알고 있는지 말이다. 2019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외국인 및 재외국민 직장가입자는 71만4,323명이고 지역가입자는 52만5,216명으로, 직장가입자가 19만 명가량 더 많았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보듯, 직장가입자는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가 병원을 잘 가지 않는, 혹은 못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이 비교적 건강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아파도 쉬기 어렵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열악한 노동 현장일수록 의료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의료이용은 더 어려워진다. 보험에 가입되어도 여전히 높은 경제적 장벽, 의료서비스 이용과 관련된 정보의 부족, 언어의 장벽, 문화적 요인 등도 병원 문턱을 높인다.

불합리한 건강보험 제도 역시 이주노동자의 의료이용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다. 사회보험의 기본적 원칙은 능력에 따른 부담과 동일 급여다. 하지만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재산에 따라 책정한 보험료가 전년도 내외국인의 평균보험료보다 적으면 평균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참고로 2020년 평균보험료는 123,080원으로 이주노동자의 수입을 고려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게다가 배우자 외의 성인 가족이 있으면 그만큼 더 늘어난다. 만약 2명의 성인 자녀가 있다면 가구의 건강보험료가 369,240원이 되는 것이다. 모두 일을 하고 있다면 어렵게나마 납부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결국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게 되기 쉽고, 병원에 가는 것이 더 부담스러워진다. 제도가 바뀌어 건강보험을 체납하면 비자 연장도 제한된다.

직장가입자로 가입되면 내국인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고, 사업자가 절반을 부담하기 때문에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많은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농축산업과 어업에는 5인 미만 사업장이 많고, 사업자 등록을 고의로 회피하는 사업주들이 있어, 이주노동자의 건강보험 직장가입은 더 어려운 실정이다.

코로나19는 제도의 불합리한 면모를 더욱 부각시켰다. 경제 위기와 함께 많은 노동자가 무급휴직과 해고를 당했는데, 이는 이주노동자 역시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무급휴직이나 해고를 당하면서 수입이 없어지지만, 건강보험료는 그대로 거나 오히려 오른다는 것이다. 수입은 줄어도 건강보험료 123,080원은 참 꾸준하다. 신종감염병 위기 시대에 이주노동자에게 건강보험은 어떤 의미일까? 사회적 안전망은커녕,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삶을 더욱 옥죄는 제도는 아닐까?

이주노동자 건강권 실질적 보장 없는 규제, 또다른 부정수급 불러올 수도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부정수급을 강조한다. 그런데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한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려는 노력 없이 부정수급을 막는 데만 급급한 조치들이 이어지면 오히려 또 다른 부정수급을 불러올 수 있다.

예컨대 납부할 수 없는 보험료를 부과해서 건강보험 체납자가 되면 이주노동자의 비자 연장이 제한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주노동자는 건강보험 체납 사실을 숨기거나 타인의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을 것이다. 미등록이 되고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했다고 해서 안 아플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병원 문턱이 높은 상황에서 부정수급을 해서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는 2019년 외국인 및 재외국민이 국내 입국 후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가입을 위한 최소 체류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강화했다. 그리고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닌 경우에는 지역가입자로 당연적용시켰고, 피부양자 범위는 직계존비속,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존속까지로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하던 것을 배우자와 미성년자녀로 축소시켰다.

보건복지부는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형평성 제고’를 위해 이러한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복지부 관련 보도자료 바로가기>.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형평성은 중요한 문제다. 근데 정말 형평성 제고가 고민이라면, 일괄적으로 능력 이상의 ‘평균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현실화하고,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는 곳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게 하는 것과 같이 이주노동자 차별을 없애는 방안도 논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변진옥, 조정완, 이주향, & 이정면. (2019). 외국인 국민건강보험 가입현황 및 이용특성 분석. 한국사회정책, 26(4), 83-100.

노동건강연대는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고 이를 위한 활동을 하는 사회운동단체이다. 계약직, 파견, 외주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조합을 조직하기조차 힘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을 펴고 있다.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을 받지 않고, 단체 활동을 지지하는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노동건강연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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