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제도를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발길이 잦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2004년부터 실시한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에는 벌써 수십개 국가에서 300여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 연수과정을 찾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주로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중동 등지의 국가에서 온다고 한다. 최근에는 태국과 필리핀, 베트남 등의 국가와 건강보험제도 노하우를 수출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외국의 보건의료전문가들이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꼽는 건 단기간에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12년 만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다. 전세계 어느 국가의 사회보장제도 역사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성과다. 의료선진국 미국이 우리보다 40여년 앞서 의료보장 제도를 고민해 왔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우리는 불과 12년 만에 달성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과정과 방법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군사정권이다. 당시 군사정부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럴듯한 사회보장 제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 정치적 이유로 도입된 의료보험제도는 직장의료보험을 시작으로 12년만인 1989년 지역의료보험을 아우르는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됐다.   

선진국들이 수 십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해온 의료보장제도를 단기간에 서둘러 완성했으니 온전할 리가 없다. 긴시간을 걸쳐 숙성되지 못한 제도이다보니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강제가입 방식의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하자니 국민들의 저항을 우려해 보험료를 낮게 책정했다. 그런 까닭에 의료보험 수가도 낮게 책정됐다. 의료보험이 보장하는 항목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른바 ‘1977년 패러다임’으로 불리는 ‘저수가-저부담-저급여’의 3저 시스템이 등장했다.

당초 이 제도의 취지대로라면 국가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의료기관을 설립.확충해야 했지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탓에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대신 빠르게 늘어나는 민간 의료기관을 건강보험 적용 기관으로 지정했다. 초기에는 건강보험을 적용을 받는 요양기관을 계약제로 운영하다가 참여률이 떨어지자 2년 뒤 강제지정제로 바꿨다. 그러다 지난 1999년 지금의 당연지정제가 도입됐다.

   ‘저수가-저부담-저급여’란 3저 시스템과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없었다면 사실 지금의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3저 시스템은 두고두고 건강보험을 괴롭히고,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골칫덩어리가 됐다. 저수가로 인해 건강보험 진료만으로 수익 보전이 힘든 병의원들은 비급여 진료, 박리다매식 3분진료와 과잉진료를 양산했다. 환자들은 낮은 보장성 탓에 큰 병에 걸리면 '재난적 의료비' 폭탄을 맞고 가정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러 ‘메디컬 푸어’로 전락했다. 의약품 리베이트와 의료전달체계 왜곡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건보공단은 외국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에게 GDP 대비 6~7%에 불과한 국민의료비 수준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완성했다고 자랑한다. 사회보장 전문가와 국제기구로부터 가장 효율적인 건강보험제도로 평가받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과연 외국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연수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상세히 배우고 돌아가는지 궁금하다.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현재 한국 의료의 가장 큰 고민거리란 점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5주년을 맞아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건보공단 김종대 이사장은 "보험료 부과체계의 불형평성 문제 등으로 인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건강보험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극복해 새로운 도약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현재에 안주하느냐 하는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를 지금 이대로 개발도상국에 수출해도 괜찮은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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