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엽 교수, '건강할 권리' 펴내…사회의학 관점서 건강불평등 문제 등 분석

질병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 것일까.

실제로 각종 보건의료 통계를 보면 유아사망률에서, 암 발병률, 흡연율, 우울증 발병률, 자살률, 심지어 산재 발생률과 교통사고 사망률까지 모든 질병과 사고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한다.

그만큼 개인의 질병과 건강이 '사회적'이란 의미가 아닐까 싶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가 최근 펴낸 '건강할 권리'(도서출판 후마니타스)는 이러한 건강 불평등의 문제를 사회의학적 관점에서 진단·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책의 내용 구성은 크게 ▲1부 건강과 불평등의 사회적 기원 ▲2부 시장을 넘어 공공으로 ▲3부 건강의 정치와 민주주의 ▲4부 건강한 사회, 건강한 시민 등으로 짜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건강 문제를 생물학적 현상으로만 바라보고 예방과 관리, 치료를 환자 개인과 의사의 일로만 돌리던 기존의 생의학적 모형을 비판한다. 그리고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관점에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건강 불평등의 현실을 분석했다.

여기에는 진주의료원 폐쇄, 포괄수가제 논쟁, 4대 중증질환 논쟁 등 최근의 보건의료 이슈뿐만 아니라 이주여성, 빈곤층 아이들, 독거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 경제 위기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사회참여와 건강의 관계 등 건강과 사회가 맺고 있는 근본적 관계를 보여 주는 현상들이 모두 포함된다.

책에 따르면 이주여성, 독거노인, 결식아동,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질병은 ‘소득수준 및 주거 환경, 학력, 직업 및 노동환경’과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며, 이는 다시 이들의 처지를 악화시켜 건강을 해치는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이런 가난과 건강의 악순환은 다음 세대에까지 사회적으로 유전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질병은 생각보다 훨씬 더 사회적이며, 영양・주거・환경, 더 나아가 빈곤이라는 사회적 요인을 개선하지 않고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영화된 의료 현실과 철저한 시장 원리에 따른 의료서비스 공급 구조의 병폐 문제에 집중했다.

특히 상업화된 의료 현실에서 만들어진 의사와 병원, 보험회사, 제약 기업, 의료 기기 업체의 이해관계 네트워크인 '의산(醫産) 복합체'의 부작용 문제에 시선을 돌렸다. 

저자는 "이들은 공공 보건정책과 제도를 자신들의 사익에 따라 통제하면서 한 사회의 건강과 의료가 흘러가는 방향을 좌지우지한다"며 "고가 의료장비인 CT, MRI, 유방암 진단기 등이 사실상 제한 없이 도입된 결과 인구당 장비 수를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되는 요양 병원이 2007년 591개에서 2011년 988개로 늘어나 4년 만에 67.2%나 증가한 것 등이 이런 의산 복합체의 부작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가 거의 전적으로 민간 부문에 의존하는 한국의료의 기본 구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의 의료기관 대부분은 사적 소유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공공병원이라 하더라도 사실상 공공이라 할 수 없는 병원이 많다"며 "극소수의 국립 병원을 빼고는 정부가 운영 주체가 아닌데다가, 별도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도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름만 공공 병원이지 민간병원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한국사회의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사회구조와 질병의 연관성에 입각한 통합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보건이나 의료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서 주거 복지, 지역사회 복지사업, 일자리 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건강 불평등의 상황이 개선될 수 있으며, 결국 '건강해지려면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건강한 사회를 향한 방안으로 "국가의 관료적 통제, 의료 전문가의 전문 직업주의,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통제를 받고 있는 의료 현실을 시민의 참여로 제어해야 한다"며 "사회와 국가, 지역공동체의 건강관리와 시민의 통제에 기초한 ‘건강 레짐’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건의료의 대안적 생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은 저자가 지난해 3월부터 매주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한 '서리풀 논평'이 기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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