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한 아이를 놓고 자신이 진짜 엄마라고 다툼을 벌이는 두 명의 여성. 솔로몬 왕은 '아이를 칼로 베 반쪽씩 나누어 주라'는 무시무시한 판결을 내린다. 판결을 따르면 아이는 죽을 테고. 진짜 엄마라면 차마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할 것임을 헤아린 판단이다. 구약성경 속 이 이야기는 솔로몬 왕이 얼마나 지혜로운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왕왕 인용된다. 그러나 달리 보면 자식의 목숨을 살리려는 '고귀한 모성'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애초에 모성애가 없다면 솔로몬 왕의 판결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 7일 수련병원 전공의 집단휴진을 시작으로 한 달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 정부와 의사단체 어느 곳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갈등의 원인이 된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정책이 코로나19 감염병 재난이란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국민건강과 환자의 생명을 걸고 사생결단을 낼 만큼 중요한 일인가 모르겠다.

2022년부터 10년간 한시적으로 연간 400명씩 의대 입학정원을 확대하고 증원된 의사인력 중 300명을 의료취약지 병원에서 의무 근무하는 '지역의사'로 양성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지역의사제로 공공의료 및 필수의료과목 인력을 확충해 지역 간 의료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취지이다. 이대로 실현만 된다면야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정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인구 1천명당 의사인력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분석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활동의사 수는 2017년 기준 2.3명(한의사 0.4명 포함)으로 OECD 평균(3.5명)의 65.7% 수준이다. 인구 10만 명 당 의과대학 졸업자 수도 7.6명으로 OECD 평균(13.1명)의 58% 수준에 그친다. 갈수록 의사 수가 더 부족해질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게다가 빠른 인구 고령화를 감안하면 급증할 의료서비스 수요에 대비해 의사인력을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얻는다.

반면 의사협회는 OECD 회원국의 국토면적대비 의사 밀도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상당히 높다는 점과 인구증가율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의사인력 공급과잉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의료취약지에 근무할 의사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저수가 등의 문제로 의사가 근무할 병원을 운영할 수 없는 의료환경인데 정부가 이런 점을 간과하고 사전에 의료전문가 단체와 협의 없이 졸속으로 의사인력 확대 정책을 수립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90년대 지역 균형 발전이란 명분 아래 이뤄진 무더기 의과대학 신설에 맞먹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처럼 의대 입학정원만 늘리고 그에 맞춰 의대교육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양질의 의사인력 양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지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엄중한 이 시기에 의사집단의 반발을 살 게 뻔한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더 타당한지 판단하긴 쉽지 않다. 다만 지역 간 의료불균형 해소를 위해 이참에 이 문제를 제대로 한 번 짚어보고 사회적 공론화 의제로 다루는 게 분명히 필요하다. 어차피 의대정원을 확대라더라도 당장 의료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의대교육과 전공의 수련과정을 고려하면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와 시민사회, 의료계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와 지역간 의료수급 불균형 등 의료체계 개선과 함께 의사인력 증원 문제를 함께 논의할 거버넌스를 구조화해 답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보건의료기본법'에 명시된 대로 국가 차원의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그 틀 안에서 의사인력 등 의료자원 적정 분배와 공급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단순히 의사인력 증원만으로 지역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는 문제다. 보건의료 공급체계에서 정부의 책임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당장 90조 원에 달하는 내년도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안에서 순수 보건의료 예산은 3조 원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극히 미약하다. 그만큼 의료공급체계 확립 과정에서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고 관리하는 공공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복지부가 펴낸 '2019 공공보건의료 통계집'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국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5.7%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한다.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비중은 10.0%로 역시 OECD 국가 대비 최하위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9만6,000개가 넘는 의료기관이 설치돼 있고,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의 보건의료 부문 예산이 4조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다. 지금은 국가적 감염병 재난 상황이다. 최우선 순위는 코로나19 방역 대응이다. 정부와 의사단체 쪽에서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분명한 명분 없이는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인 것 같다. 게다가 의대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나 이에 반대하는 의사단체 모두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면서 국민 건강과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싸움을 벌이는 이 모순은 뭐란 말인가. 생각건대 정부와 의사단체 어느 쪽이든 먼저 물러서는 쪽에 '국민건강과 환자의 생명'을 지키려는 진심이 있다고 믿는다. 먼저 물러서는 쪽에 솔로몬의 재판에 등장하는 모성애처럼 고귀한 생명의 가치에 최우선을 두고 임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누구든 먼저 물러서서 의료대란을 막고자 하는 쪽에 오롯이 '고귀한 생명 가치와 국민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그 마음을 다했다고 믿는다. 물러섬에 있어서 이보다 더한 명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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