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과 생명윤리 /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엮음 / 한국학술정보 펴냄, 2012년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무의미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 초안’에 대한 공청회가 지난 5월 29일 연세의대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공청회에서 의료계, 종교계, 환자단체들은 모두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을 결정하는 절차가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인식을 같이했지만 이를 법제화하는 것에는 입장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종교계는 이 제도가 소극적 안락사로 변질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환자단체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치료 중단 선택을 사실상 강요당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지난해 말 건강보험공단과 병원협회가 수가협상을 진행하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는 부대조건에 합의하였다는 소식이 전달되면서 일었던 의료윤리문제의 논란의 여진이 남아있는 탓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체결된 부대합의문에 명시된 ‘협회는 만성질환 예방 및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등 국민운동을 전개한다. 단, 목표지표를 설정하고 그 성과에 대한 별도의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 있다’는 조항이 해석에 따라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의 문제를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보라매사건을 계기로 의료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져왔던 연명치료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고, 세브란스병원의 김할머니사건을 통하여 법률적 판단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되기까지 연명치료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연구가 진행되어 이제는 제도화에 이르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의학의 발전에 따라 과거에는 문제되지 않던 다양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의료현장에서 부딪히는 윤리문제들은 이제 의료계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을 두고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고 최선의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화두로 하여 종교, 인문학, 사회과학, 생태학, 의학, 자연과학 등의 영역에서 생명과 반생명에 관한 담론을 이끌면서 대안적 생명문화들을 연구해온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가 내놓은 <생명과학과 생명윤리>에 관심이 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생명과 과학의 공존을 바라보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는 생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시작으로, 뇌사판정의 기준문제, 연명치료 문제, 재생의학, 줄기세포연구와 관련한 난자에 대한 인식, 유전자특허에 관한 윤리적 논의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편집을 맡은 심현주 박사는 생명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자세가 변하고 있어 이와 같은 논의가 필요하게 된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편집자가 쓴 서론의 모두에 인용되어 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슈의 필요성을 압축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죽음의 진실을 점점 더 두려워하고 부정하게 되었다. 사회적 의미에서 죽음의 부정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희망과 목적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켰고,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키웠다. 미래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직결되는 신체 기관들을 기계로 대체하고 생명을 연장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삶과 죽음, 장기기증과 수혜자에 관한 논란 역시 복잡해질 것이다. 법적, 도덕적, 윤리적, 심리적 문제들이 제기될 것이고 인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수없이 많은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9쪽)”

먼저 생명론에 대한 논의에서 소광희교수님은 과학적, 철학적, 종교적 차원에서 생명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온 과정을 요약하였습니다. 종교적 차원의 생명에 대한 인식을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생명을 물활론적, 즉 범생명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철학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삶의 방식, 즉 윤리적인데 관심을 두고, 과학적 차원(주로 생물학)에서는 층구조에 기반한 기계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진화론의 대두로 이런 설명이 가능해졌다고 보았습니다. 필자는 생명존중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되 그 사랑은 인간에 국한되어서는 안되며 자연에까지 연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생명과학은 인간을 비롯한 생물계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즉 자연을 아는데 공헌해야 하며, 윤리학은 생명보호에 앞장서고, 종교는 하찮은 미생물도 신의 의해 창조된 거신 만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고귀한 심성의 교화에 힘써야 할 것이라 결론짓고 있습니다.

맹광호 교수님은 논의의 대상을 인간의 생명으로 좁혀서 의학적 측면에서의 인간생명을 논하고 있습니다. 의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생명과 그 생명현상을 보호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왔지만, 인간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는 수동적인 자세를 견지해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계론적 생명관이 대두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인공적 피임기술과 인공임신중절수술 기술, 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 출산기술, 태아진단 기술, 장기이식을 포함한 생명연장 기술 생명체의 합작과 조작 기술, 그리고 안락사 시술 등이 있습니다.

맹 교수님은 기술이란 일단 개발되면 빠르게 확산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의학분야의 기술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문제라서 기술의 발전을 기다리는 환자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확산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라고 전제하고, 올바른 의학적 생명관의 정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인류문명의 역사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인간의 본래적 존엄성마저 잃게 하는 기술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경향을 경고하고, 인간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모든 학문과 기술은 결국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역사적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장기이식술의 발전에 따라 사망의 기준이 전통적으로 내려온 심장사(心臟死)에서 뇌사(腦死)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뇌사의 정의에 대한 하버드 의대 위원회 보고서>를 계기로 ‘회복 불가능한 혼수상태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서’ 인정하자는 입장으로 전환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한없이 계속되는 혼수상태가 환자와 환자가족 및 의료자원에 지우고 있는 부담을 줄이고, 이식수술용 장기의 획득을 둘러싼 논쟁을 피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뇌사와 장기은행과 관련하여 죽음을 실용적으로 재정의하게 된 것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북소리]에서도 다루었던 한스 요나스교수님의 <기술 의학 윤리>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요나스교수님이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영역에서 행해지는 죽음의 대한 규정은 더욱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는 의사가 그의 사형집행인이 되거나 그의 죽음을 정의할 수 있도록 전권을 위임해서는 안된다.(한스 요나스 지음, 기술 의학 윤리, 215쪽)” 라고 한 이유는 우리가 아직 삶과 죽음 사이의 정확한 경계선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톨릭교회가 뇌사판정에 관하여 아직까지 공식적 가르침을 공표한 바 없음에도 로마 알폰시아눔 대학원의 윌리엄 비히 교수님은 뇌사판정의 기준에 관한 윤리적 검토를 통하여 “죽음이 일어난 후에 자신의 기관을 기증함으로써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삶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는 거룩한 행위이다.(84쪽)”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생명유지를 위한 의무의 한계와 죽음의 판정 및 기준에 관하여 광범위한 고찰을 통하여 죽음판정을 위한 뇌사기준은 충분히 발전되어 왔고 타당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고 보기 때문에,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뇌사판정의 기준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신빙성과 확실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습니다.(83쪽)

앞서 인용한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과도 관련된 사안은 울산의대의 김장한 교수님이 다루고 있습니다. 뇌사, 존엄사, 지속적 식물인간상태를 정의하고 카렌 퀸란양과 낸시 크루잔양의 사례를 인용하여 치료중단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지속적 식물상태에 대한 의학적 접근으로는 식물상태를 진단하는 기준에 관하여 임상증상과 진단에 필요한 최소관찰기간, 진단기준을 적용하는 나이 등을 고찰하고,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에 대한 치료수준 그리고 환자 가족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 등을 논하였습니다. 존엄사의 본질이 ‘삶의 질’의 측면에서 본 생명유지에 대한 가치평가이며,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연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미끄러운 비탈길’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인용의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개진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결손을 해결하거나 파킨슨병, 루게릭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과 같은 난치성질환을 치유하는 방안으로 생체이식, 인공장기의 이식, 자체복원력의 극대화에 의한 자연적 치유 기술 등이 적용되고 있지만 아직 많은 제한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 생체 이식의 제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대두된 것이 줄기세포치료기술입니다. 줄기세포란, 무제한적인 분열 능력을 가지는 미분화상태의 세포로서 다양한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인체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실험실내에서 미니간을 만들어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에 따라서 성체줄기세포, 제대혈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배아줄기세포의 경우는 수정란에서 시작되는 배아로부터 얻는 것이기 때문에 수정란을 얻는 방법에서부터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과정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 배아줄기세포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에 관한 의학적 문제까지 산적해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무지의 공포에서 떨기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장래를 개척해 나가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130쪽)”고 맺은 김원선교수님의 글은 논의되어야할 사안들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배아줄기세포 기술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난자의 제공에 대한 사회학적 측면의 문제를 파헤친 조주현교수님의 글에서는 여성의 재생산건강권(의학용어로서 reproduction은 재생산이라기보다는 생식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복제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한 남성이건 여성이건 독자적으로 인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원에서 난자제공을 다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지만 지나친 확대해석이 아닌가 싶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배아복제기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교수님의 사건의 본질 가운데 하나였던, 연구원을 비롯한 자원자로부터 기증받은 혹은 매매를 통하여 얻은 난자로 실험이 이루어졌다는 의혹에서 나온 논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 해방후 국가가 주도한 출산과 관련된 제반정책을 보면 여성의 건강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서 발전하여 국가주의의 강화, 가부장적 가족의 유지, 그리고 출산의료기술의 확산 아래 여성의 모성이 도구화되어왔다는 주장은 논의점이 있다고 보입니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인간 유전자(DNA)는 ‘자연의 산물’이므로 특허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는 소식과 관련하여 가톨릭대학교의 이상헌교수님이 다룬 유전자 특허와 관련된 글도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요약하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관련분야에서 오랫동안 논의해온 것들인 까닭에 오래 전에 발표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출간을 앞둔 시점에서 최신지견을 반영하여 수정보완했다고 합니다. 생명과학은 뜀박질하는 상황에서 생명윤리의 논의는 거북이걸음이라는 느낌입니다만 그래도 꾸준한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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