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질병관리청’ 논의, 처음부터 틀렸다

[라포르시안] 우리는 정부가 발표한 개편 방안이 어떤 속 사정이 있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잘 모른다. 무능력하거나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부가 그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 조직 문제는 으레 자기들의 독점적 권한인 양, 그냥 쑥 내민 안을 언론을 통해 들었을 뿐이다. 자기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게임.

그러니 이런 사달이 났을 터. 대통령이 정부 안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니, 정부가 돌아가는 꼴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모르게 행정안전부가 도둑 발표라도 했단 말인가? 정부의 필수 기능인 협의와 보고 과정은 어찌 되어 있으며, 조정과 역할 분담은 누가 어떻게 했다는 뜻인가. 여론이 영향을 미쳤다는데, 누구의 어떤 의견인가?

재검토라 해봐야 조금 손보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크지만, 우리는 그런 비관과 냉소를 이기고 그동안 미뤄왔던 의견을 내놓으려 한다. 지금까지 말을 아낀 이유는 코로나 유행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방역 당국과 정부의 실질적 부담이 큰 것을 고려한 때문이었다. 이제 사정이 달라졌으니 우리도 말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 조직으로 무엇을 해결하고 개선하려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지적할 것은 정부가 내놓은 안 그리고 다른 비슷한 제안들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구체적인 목적과 목표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져 묻는다. 질병관리청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질병 관리’가 현재 어떤 상태이고, 무엇이 문제이며, 정부 조직을 통해 무엇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려고 하는가?      

전부터 상당 기간 논의가 있었으니 무슨 검토안이나 용역 연구보고서, 정책 자료 같은 것을 근거라고 내놓을지 모르겠다. 어쩌겠는가, 하다못해 그런 것이라도 좋으니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기 바란다. 다만, 그저 ‘국민 건강 향상’이니 ‘방역체계 선진화’니 ‘신종감염병 대응태세 강화’ 같은 두루뭉술 목표 말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라.

목표가 명확하려면 그에 앞서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그 모든 문제가, 질병 관리를 둘러싼 과제가 광범위하고 복잡해서 포괄적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다면, 거꾸로 묻자. 앞으로 새로 생기거나 바뀔 조직은 이번에 드러난 현실의 문제(고통)를 완화, 개선,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세부 조직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무슨 경로로?

보건과 감염병을 둘러싼 숙원 과제는 그만두고라도 코로나 유행의 교훈은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이번 유행에서 드러난 방역과 보건의료의 ‘약한 고리’로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건 또는 현상이 있었다.

- 청도대남병원이나 요양병원의 집단 감염과 비슷한 일을 예방하고, 환자를 더 빨리 발견하며, 많은 환자를 제대로 이송할 수 있는가?
- 대구의 교훈. 신천지발 감염은 불가항력이라 치자.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면 광역 정부(시도)나 기초 정부(시군구) 차원에서 환자를 신속하게 분류, 배분, 치료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가? 여기에 맞추어 시설과 인력을 동원하고 그 질을 관리할 수 있는가?
- 학교 개학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여러 당사자가 더 잘 실천하게 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개인 차원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더 계속할 수 없을 때는?
콜센터나 물류 센터 같은 ‘고위험’ 사업장을 예측하고 미리 환경과 조건을 바꾸게 할 수 있는가?
“현재 감염자 추적은 오직 시스템 내 발생 환자만 가능하므로 모니터링 역량에서도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라는 지적도 귀담아들어야 하지만(관련 기사 바로가기), 정책을 결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아야 할 감염, 확산, 치료 등에 대한 역학적 분석이 불가능한 사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실시간에 가까워야 할 모니터링은 그만두고라도 역학 전문가가 최대한 온건하게 표현한 ‘정보체계’의 실상은 이렇다(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 코로나-19 TF 주간 정책리포트 4호 바로가기).

“역학적으로 시급한 문제들이 과제화가 안 되고 있고 정리가 잘 안 된 상태에서 가을 유행을 맞을 것 같음. 그리고 현재 질병관리본부가 보유한 행정용 역학 자료는 제한점이 분명함. 그래서 먼저 이 제한점 극복을 위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고...”

이른바 정부 조직 개편은 이런 문제들과 연관되어야 한다. 그저 관련성 정도가 아니라 충분한 효과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가 다시 유행할 때 또는 새로운 감염병이 닥칠 때 바뀌고 나아지는 것이 없을 바에야, 조직 개편은 아무 소용이 없는 정치와 공무원의 면피용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관련 정책과 제도, 정부 조직, 또는 체제 변화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여러 조치와 정책으로 포스트 코로나 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뉴노멀’ 이야기가 괜히 나올까. 매일 학교와 가게와 작업장,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은 앞으로 싫어도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보건, 의료, 노동, 교육, 문화가 무엇인지 가리킨다.

원격의료와 같은 이상한 곁가지나 비상경제대책과 같은 되풀이하는 성장 담론만으로 정부 역할을 다했다고 착각하지 말라. 개인과 사회가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으로는 턱도 없다. 국가와 정부가 가장 유력한 주체다.

싫어도 과거를 온존할 수 없고, 능력이 부족해도 변화의 압력을 피해 갈 수 없다. 익숙한 말로 바꿔 다시 표현한다. 국제 사회가 이미 역사적 사건이라 부르기 시작한 코로나 판데믹으로 사회경제체제 ‘개혁’이 불가피하다. 여기에는 국정의 운영원리와 정부의 구조, 기능도 포함된다.

보건과 의료에 국한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대비해야 하는 포스트 코로나는 단지 질병관리청의 문제가 아니다. 백신 개발이나 바이오산업 연구? 정부의 미래 구상과 상상력의 한계가 답답할 따름이다. 개혁은커녕 최소한의 변화 압력조차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경험했고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 또한 선생이니, 많은 교훈 중 한 가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유행의 결과 코로나 피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코로나와 방역이 무엇이기에 왜 이런 일이?

이런 결과가 나타난 중요 원인은 필수 의료 공백과 의료이용의 어려움 때문이다. 방역을 비롯한 질병 관리가 얼마나 종합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하는지, 이 사태가 웅변한다. 코로나 방역이 그 바깥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가 다시 코로나로 돌아온다고 할 때, 국가 방역 정책의 범위는 그냥 코로나가 아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포스트 코로나는 또한 코로나를 넘는다는 뜻에서 ‘트랜스 코로나’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의도나 능력과 무관하게 강제당할 것이다. 공공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과 민간의 연계, 일차 의료, 병원의 기능과 운영방식,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지방 정부와 보건소, 건강보험 등등. 사실상 모두를 ‘재구성’해야 한다. 의료 서비스와 구분되는 ‘공중보건체계’는 현재 시스템(체계와 체제)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이므로, 아예 새로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건과 의료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태도와 방식, 그 키워드는 당연히 보건의료의 전면 개혁이다. 혹자는 아무 일에나 (장기적인) 개혁을 동원한다고 과장이라며 탓할지 모르겠다. 단연코 아니다. 이러지 않고서는 당장 이 아슬아슬한 유행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대안이 막연하다는 점에서, 보건의료 개혁 전략은 현실이며 구체성이다.

질병관리청에 대해, 이상의 두 차원을 관통하는 원리는 한 가지다. 정부 조직, 그것도 좁은 몇몇 부처와 부서의 문제로 좁히면 국민, 시민, 사람들을 위한 체계와 조직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공무원과 일부 이해당사자의 일, 구경거리가 될 따름이다.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자. 제대로 문제를 정의하고 목표를 정해, 보건의료 개혁의 틀과 과제 안에서 조직을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 잊지 말 것은 이것이 정부의 폐쇄적이고 내밀한 과제가 아니라 또한 ‘우리’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독점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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