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정직해야 한다. 이건 도덕규범이자 기본적인 원칙의 문제이다. 법정에서의 위증이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사실 유포 등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짓말을 했다고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법조항에 ‘누구나 정직해야 할 의무가 있다’란 포괄적 규정을 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이 범법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원칙과 도덕규범의 문제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대혼란이 초래될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의사에게 있어서 ‘설명의무’는 정직과 마찬가지로 원칙과 직업윤리의 문제다. 자신을 믿고 찾아온 환자에게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따른 효과와 부작용을 성실하게 설명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규범이다. 지금도 이를 어길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최근 법원의 판결을 보면 의사가 설명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설명의무를 법제화해 이를 어겼다고 판단될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에 더해 행정규제까지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이런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지난 24일 민주통합당 김성주 의원이 수술 전에 의사가 환자에게 위험성과 부작용 등의 사전설명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할 때 환자의 진료와 관계되는 중요한 사항을 환자나 보호자에게 미리 설명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을 대표발의 한 김성주 의원은 “개정안의 목적은 의료인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한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 제고에 있다”며 “그러나 현행법상 의료인은 환자에게 요양방법과 건강관리에 필요한 사항만을 지도할 뿐 질환·수술 등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없다. 법적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법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 법안에서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처벌조항을 두지 않았다고 하지만 결국 하위법령에서 처벌조항이 생길 여지가 충분하다.(만일 처벌 조항이 없다면 굳이 이런 법조항을 신설할 이유도 없다) 이런 법안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에도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전면개정을 추진하면서 의사의 설명의무를 법제화하는 조항을 포함시킨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법제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포괄적 설명의무’를 법제화 하는 것이 그만큼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치 ‘정직해야 한다’를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설명의무가 법제화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가뜩이나 의료분쟁이 늘고 있는데 설명의무 위반의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환자들의 소송제기가 넘쳐날 것이다. 의료진도 환자를 진료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심리적·시간적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1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한국적 의료환경 속에서 설명의무 법제화가 가당키나 한 일일까.

엄밀히 따져 설명의무 법제화는 전후가 뒤바뀐 상식 밖의 처사나 마찬가지다.  왜 국내 의료기관에서 의사의 설명의무가 충실하게 이행되지 못하는가를 따져보면 이해가 간다. 저수가로 박리다매식 진료가 만연한 의료현장에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분한 설명의무를 이행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배경을 간과하고 설명의무를 법제화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의료진의 자기방어적 기재를 발동시켜 환자에게 선택의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러한 설명의무 법제화는 ‘규제 만능주의’의 한 단면이다. 논란과 비웃음 속에 시행된 ‘액자법’과 다를 바 없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의료법 시행규칙’은 모든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환자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액자를 원내에 게시토록 했다. 복지부는 처음에 액자의 크기 및 형태(병원급은 가로 50센티미터 세로 1미터, 의원급은 가로 30센티미터·세로 50센티미터 크기 이상의 액자형틀)까지 규정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떠밀려 이를 삭제하고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게시토록 했다. 문제는 시행 1년째 접어든 액자법이 과연 얼마나 환자의 권리를 높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환자의 권리를 제고한 효과는 거의 없고 액자를 판매하는 업체들의 매출만 높였으리라 생각한다.

‘환자 권리장전’을 아로새겨 액자에 담아 걸어둔다고 환자의 권리가 높아질 리 만무하다. 마찬가지로 의사의 설명의무를 법제화한다고 환자의 안전과 선택권이 강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불필요한 행정력만 낭비할 뿐이다. 환자의 권리를 높이고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다. 그것이 가능한 의료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왜곡된 의료환경을 개선하는데 먼저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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