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 다이앤 애커만 지음 /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펴냄, 2004년

오늘 아침 창가에 찾아온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셨습니까? 아니면 부엌에서 흘러든 향긋한 커피향이 잠을 깨우던가요? 다이앤 애커만교수는 <감각의 박물학>에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쳐든 햇빛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겨울철, 침실 창유리에 새빨간 빛이 뿌려지면 사람들은 동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7쪽)”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주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자극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 몸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을 감지하지만 잠을 깨울 정도로 강한 자극이 아니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인 자극은 우리의 뇌에서 종합되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로 저장됩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뇌에 전해지는 경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감(五感)이라고 부르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위치에 관한 공감각을 더한 감각이 외부환경으로부터 우리가 정보를 얻는 경로입니다.

코넬대학에서 인문사회학을 가르치는 다이앤 애커만교수의 <감각의 박물학>은 바로 감각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입니다. ‘박물학’이란 단어를 읽으면서 세종로에 있는 국립박물관보다 예전에 가보았던 위스컨신주 다지빌의 와이오밍골짜기에 있는 ‘하우스 온 더 락’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몽상가 알렉스 조르단이 1949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이곳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전목마, 19세기의 옛 거리, 거대한 해양 생물, 신기한 악기, 갑옷과 투구 및 무기, 인형과 인형의 집, 미니 서커스 등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 평소 기이한 물건에 관심이 많던 조르단이 수집한 물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이웃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일종의 민속박물관입니다. <감각의 박물학>은 제목 그대로 감각에 관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부터 세간에 전해져온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감각의 중요성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감각은 뚜렷한 혹은 미묘한 사실들을 그대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감각은 현실을 아주 잘게 쪼갠 다음 그것을 다시 모아 의미있는 형태를 만든다. 감각은 우연한 표본을 받아들인다. 감각은 하나의 예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뽑아낸다. 감각들은 서로 의논하여 그럴듯한 예를 찾아내고, 작고 정밀하게 판단한다. 인생은 모든 것에 빛과 풍부함을 부여한다.(10쪽)”

감각을 통하여 들어온 외부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은 모든 사람에서 똑 같습니다. 즉 감각의 정보는 대뇌의 해마에서 일차 처리되는데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서 단기기억에 머물었다가 폐기되거나 대뇌의 다양한 영역으로 옮겨져 장기기억으로 갈무리되는 것입니다. 즉 감각은 우리를 과거와 밀접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감각의 박물학>에서 우리는 감각의 기원과 진화과정, 그리고 감각이 문화에 따라서 어떻게 다른지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어떤 향기에서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린다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냄새보다 기억하기 쉬운 것은 없다는 점이 후각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다룬 것 같습니다. 인간은 태어난 이후 죽음에 이를 때까지 호흡을 멈추지 않습니다. 후각은 호흡을 통하여 들어오는 냄새를 담은 분자들이 비강점막에 녹아들고 점막에 있는 섬모가 있는 500만개의 수용기세포를 자극해서 냄새정보를 뇌에 보냅니다. 후각신경은 신경섬유로 구성되는 다른 대뇌신경과는 다른 형태로 되어 있고, 후각세포에서 오는 전기적 신호를 직접 받아 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회로에 직접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에드윈 모리스가 <향기>에 적고 있는 것처럼 단기기억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냄새의 기억은 오래가고, 다른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려 한다면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를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냄새는 시각이나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는 키플링의 말은 후각의 특징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냄새에 관한 추억 한자락 정도는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냄새와 관련해서 저자의 놀라운 감성이 느껴지는 구절을 음미해봅니다. “나는 몇 년전 바하마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두 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 안에 바다가 있다는 것과, 우리의 정맥은 조류를 흉내 내고 있다는 것. 물고기 알 같은 난자를 난소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인간 여성으로서, 우리 조상이 수억 년 전에 진화해 나온 바다의 부드럽게 물결치는 자궁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너무나도 감동받아 물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눈물의 소금기를 짠 바닷물에 보탰다.(40쪽)”

촉각에 관한 글 가운데서는 <사이언스>에서 인용한 프레데릭 작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촉각은 최초로 점화되는 감각이며, 대개 맨 마지막에 소멸한다. 눈이 우리를 배신한 뒤에도 오랫동안, 손은 세계를 전하는 일에 충실하다. (…) 죽음에 대해 설명할 때, 우리는 촉각의 상실에 대해 말하는 일이 많다.(111쪽)” 아무래도 촉각에는 ‘사랑’이라고 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본능적으로 시작하는 신체접촉을 통하여 나 아닌 타자(他者)를 인식하게 되고, 특히 가장 신체접촉을 많이 하는 엄마의 손길을 통하여 얻는 따듯한 느낌에서 엄마의 헌신적 사랑을 평생토록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의 작품 <오감>

통증은 촉각의 한 종류인 통각으로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 나쁜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만, 애무와 키스라는 접촉을 통하여 얻는 촉각은 사랑이라는 불을 지피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로 로댕의 조각 작품 <키스>를 들고 이렇게 이유를 적었습니다. “암반 위에 앉아 부드럽게 서로를 포옹한 채 영원의 키스를 나누는 연인. 왼쪽 팔을 남자의 목에 두르고 있는 여자는 황홀경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남자의 입 안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도 보이고. 남자는 오른손을 펴 여자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그가 잘 알고 있는, 찬탄해 마지않는 허벅지고, 그는 여자의 다리가 악기인 양 연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감싸 안은 둘의 어깨, 손, 다리, 엉덩이, 가슴은 찰싹 붙어 있고, 둘은 서로의 운명을 입으로 봉인하고 있다.(171쪽)” 년전에 방문했던 일본의 동경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훔쳐보듯 했습니다만, 어쩌면 저자는 이렇게 꼼꼼히도 관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각하면 아무래도 프루스트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마들렌의 추억입니다.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 생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차의 첫 모금을 마신 순간으로 되돌아가본다. (…) 분명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것은 그 맛과 연결되어 맛의 뒤를 따라 내게로까지 올라오려고 애쓰는 이미지, 시각적인 추억임에 틀림없다. (…) 그러다가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85~89쪽)” 마들렌을 넣은 홍차 한 모금에서 콩브레 시절의 추억을 길어 올리기까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결국 프루스트는 이를 계기로 추억을 더듬어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시간들을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각적 자극이 시각적 기억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기억회상 패턴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아마도 홍차에 녹아든 마들렌의 맛에 대한 미각적 기억과 홍차의 향기에 대한 후각적 기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기억이 만들어질 무렵에 받아들였던 시각적 기억들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청각을 통하여 수용하는 소리라고 하는 자극은 어떤 물체의 움직임으로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기 분자의 파동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청각은 그리 예민하지 못해서 공기분자의 파동 가운데 일부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창 젊을 때는 초당 16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의 주파수 영역을 감지할 수 있고, 인간의 목소리는 남자의 경우 초당 100헤르츠 여자의 경우 150헤르츠 내외의 주파수를 가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토록 제한적인 가청범위마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음영역이 더욱 축소된다고 하니 아무래도 청각에는 제한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청각에서 빠트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UCLA의대에서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나타나는 뇌의 활동을 PET로 조사했더니 독서는 뇌의 좌반구를, 음악은 뇌의 우반구를 흥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기전을 밝히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음악은 감정을 상징하고, 반영하고, 타인에게 전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골치 아프고 부정확한 말에서 해방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즉 음악에 언어적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직접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도 다른 문화의 음악에는 반응한다는 점을 보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저자는 “외국어는 번역해놓아야 이해할 수 있지만, 흐느낌, 울음, 비명, 기쁨, 웃음, 한숨을 비롯한 부르짖음과 외침 소리는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음악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의 채석장에서 나온 절제된 외침이다.(318쪽)”고 적었습니다. 최근 우주에 존재하는 미지의 생물학적 존재와의 교신을 위한 방법으로 음악을 선택한 이유일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1977년작 영화 <미지와의 조우>와 로버트 저메키스감독의 1997년작 영화 <콘택트>가 바로 외계인과의 교신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시각은 빛에 근거한 감각입니다. 지구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는 파장의 색을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특별한 목적이 없다는 이상한 성질을 색체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과 식물이 가지는 색깔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을에 식물의 색깔이 독특하게 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나뭇잎의 색깔이 변하는 이유는 여름철 생존을 위하여 꾸준하게 만들어내는 엽록소에 감추어져 있는 본디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엽록소는 열과 빛에 파괴되지만 여름동안은 꾸준하게 만들어져 대체되는데, 가을이 되면 만들어지는 엽록소가 점점 줄어들면서 가려져 있던 다른 색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연은 가려지지 않은 본래의 색깔이 가장 아름다운 것인 셈입니다. 저자는 가장 볼만한 가을 잎새, 즉 단풍을 미국의 북동부와 중국의 동부에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와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장산과 설악산의 불붙는 듯한 단풍을 보았더라면 절대로 빠트릴 수 없었을테니까요.

인간의 감각에 따라 다양한 예술행위가 발전해왔습니다. 후각은 향수를, 미각은 음식을, 청각은 음악을 그리고 시각은 미술과 조각을 발전시키는 근원이 된 셈입니다. 그리고 보니 현대에 들어와 시작한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은 한 가지 감각만을 위한 예술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예술의 모든 언어는 순간을 언어로 바꾸기 위한 노력 속에서 발전되었다. 예술은 아름다움이 하나의 예외,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어떤 질서의 기초를 이룬다고 가정한다.(408쪽)”고 한 존 버거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술은 자연을 문진(文鎭) 속에 가두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쯤해서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감각의 박물학>인 것처럼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인체의 감각의 신비로운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 일독을 권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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