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와 차별은 감염병 방역망 흔들어...혐오표현 남발하며 배제 조장하는 언론들
"선별진료소서 죄인처럼 눈도 못 마주치는 사람들...사회적 낙인 찍히면 두려움에서 못 벗어나"

[라포르시안] "감염병 방역활동의 성패는 배제와 차별이 아니라 포용과 인권보호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동안 감염병 유행에서 얻은 보건학적 교훈이다"

국내 코로나19 사태 초기이던 지난 2월 10일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가 공동성명을 내고 강조했던 내용이다. 코로나19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됐다는 이유로 당시 중국인을 향한 혐오와 배척 목소리가 부쩍 높아질 때였다.

배제와 차별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혐오표현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집요하게 그 대상을 찾아내 분열과 대립을 조장한다. '사회적 낙인찍기' 바이러스가 돌고 돌다 보면 언젠가 우리 자신도 혐오와 배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할 정도로. 

대구에서 신천지신도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는 그들을 향했고, 전 세계 여러 국가로 코로나19 대유행이 번졌을 때는 외국인을 향했다. 이번에는 이태월 클럽발 집단감염이 번지자 성소수자를 향한다. 일부 언론과 지자체는 감염병 방역을 위한다는 이유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배제와 차별을 부추긴다. <관련 기사: 감염병에 대한 혐오·공포·차별 조장하는 나쁜 정치와 언론>

예방의학회와 역학회가 "실재하는 위협과 이에 대한 합리적 대응을 넘어 비이성적 공포로 인해 일상적 삶을 유지하지 않고 불필요한 과잉대응으로 2차 피해를 유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이유다. 특정 종교, 지역, 인종, 성적 취향을 놓고 벌어지는 '사회적 낙인찍기'는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이들마저 숨게 만들어 감염병 방역망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코로나19 인권대응 시민사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제공: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코로나19 인권대응 시민사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제공: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런 가운데 최근 코로나19를 빌미로 성소수자를 향한 배제와 차별은 물론 이를 정당화하는 혐오표현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참여연대,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은 지난 14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혐오와 차별로는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이태원의 한 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이후 언론사들이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보도를 쏟아냈다"며 "중앙재난대책본부와 정부가 '차별과 혐오는 질병 예방과 공중보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언급을 했지만 언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금도 혐오를 선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자체의 감염병 방역을 위한다는 이유로 혐오를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각 지자체에서 발송한 재난문자는 상호명을 포함한 ‘게이 클럽’을 언급하며, 마치 성 정체성 때문에 전염병이 확산되었다는 식의 메시지를 던졌다"며 "사회구성원에게 정책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행정의 특성상, 방역을 이유로 사회적 소수자들을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치부하고 불필요한 개인정보 공개를 통해 혐오를 조장한다"고 했다.

인권과 방역이 양자택일의 가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인권의 원칙에 기본 한 정책을 펼칠 때 우리 모두가 더 안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감염병 확산이라는 위기 앞에서, 인권은 한가로운 이야기처럼 취급된다. 방역과 인권이 서로 상충한다는 인식은 이렇게 만들어진다"며 "그러나 배제와 차별을 조장하는 정책은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 확진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정책은 검진률을 낮추는 등 오히려 방역을 약화 시킨다"고 우려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규진 건강과대안 운영위원(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선별진료소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혐오와 배제가 방역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며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증언했다.

최 운영위원은 "중국인들에게 혐오가 퍼졌을 때, 신천지 종교인들에게 혐오가 퍼졌을 때, 그들이 그 하얀 선별진료소 천막 안으로 들어오늘 걸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아십니까"라며 "역학조사지에 중국인, 신천지라고 크게 적힌 종이를 직접 받아들고 들어와 마치 죄인처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사람들을 저는 수도 없이 봐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 주홍글씨가 새겨지면 텐트 안에서 제가 아무리 친절을 베풀어도 그들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그 두려움은 코로나보다 빠르게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 퍼져나갔다"고 했다.

중국인과 신천지 신도를 향한 것보다 더 큰 낙인이 이태원 방문자들, 특히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 운영위원은 "이 상황이 너무 두렵다. 그들이 하얀 천막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데까지 얼마나 높은 장벽이 생겼는지 보이기 때문"이라며 "지금 그들에게 혐오를 쏟아내고 있는 언론들은 정말 코로나 종식을 방해하고 있는 거다. 언론들이 한 행위는 아예 이태원 방문자들에게 바레케이트를 치고 검사와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방역의 장기전을 준비하려면 검사받기를 두렵게 만드는 혐오와 차별을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운영위원은 "코로나19와의 장기전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감염이 의심되면 빠르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검사받으러 나오는 것을 두렵게 만드는 어떠한 혐오와 차별도 해선 안된다.. 그리고 상병수당처럼 아프면 특별한 조건 없이 쉴 수 있는 제도를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