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 크리스 임피 지음 / 박병철 옮김 / 시공사 펴냄, 2012년

‘만약 당신이 일주일 뒤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스티븐 헤렉 감독이 2002년작 영화 <어느 날 그녀에게 생긴 일>에서 다룬 주제입니다. 이 영화의 리뷰를 정리하면서 리더스 다이제스트 2002년 10월호에 다룬 할리우드의 유명한 남자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췌장암으로 진단받고 6주 만에 죽은 동생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내용을 인용하여, 사랑하는 가족이 미처 작별할 틈도 없이 이별을 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적이 있습니다.

죽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안다는 것은 궁금하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한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미리 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 임피교수의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는 바로 우리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측한 책입니다. 일반화가 가능한 인간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지금은 지구를 지배하고 있지만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는 가정도 검토하고,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더 나아가 태양계와 우주가 소멸하는, 진정 세상이 끝나는 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흔히는 어떤 일이 시작하는 것을 먼저 설명하고 끝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 순서 같습니다만, 저자는 거꾸로 세상이 끝나는 상황을 먼저 설명한 다음에 세상의 시작을 설명하는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저자는 덴마크의 유명한 만화가 스톰 피가 “무언가를 예측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에 속한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과학의 주된 관심사가 끝이 아니라 ‘진행되는 과정’이지만, 모든 만물의 ‘끝’을 조명하는 것”이 책을 쓴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를 듣다가도 끝이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면 흥미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시시한 이야깃거리도 흥미로운 결말로 이끌어 듣는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야 진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2부를 통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현대의학을 필두로 하여 다양한 영역의 발전으로 기대여명을 3배 이상으로 늘려왔지만 결국은 늙어감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을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지구의 생태계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연이 지독하게 인색한 재활용의 선수라는 점을 다음처럼 일깨우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자들은 새것이 아니라 유구한 세월동안 대물림하여 재활용되어왔다.(74쪽)” 결국 생명체의 실체는 구성원자들의 재활용에 불과하다고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생명의 삶을 통해서 얻어진 그 무엇은 유전자라는 기록을 통하여 다음 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개념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해온 것처럼 환생이라고 하는 구체적 상황을 이름이 아니라, 유전자를 통하여 미시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장부터 6장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지구 생태계의 종말을 논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류의 종말에 대해서는 진화과정을 포함하여 태양계 생태계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40억년 동안 지구에는 거의 5억종의 생명체가 존재했지만, 그 가운데 2%만이 현재 생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명체는 물리적인 변화나 환경의 변화로 인해 멸종할 수도 있지만, 개체 수나 생식 능력, 유전자 특성, 지리적 분포, 다른 종과의 관계 등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비교적 화석이 풍부한 지난 5억년 동안을 살펴보면 생물종의 수와 다양성을 추정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하는데, 4억 3500만년전, 3억 7500만년전, 2억 5000만년전, 2억 500만년전 그리고 6500만년전 등 모두 다섯 차례의 대량멸종이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일어났다고 합니다. 특히 육지와 바다에 살던 생명체의 95%가 사라진 고생대 말기인 2억 5000만년전의 대멸종은 화산폭발에 의한 기후변화가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고, 6500만년전의 대멸종은 운석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멸종이 일어났던 2억 5000만년전에 있던 페름기의 대폭발을 계기로 지구상의 생명체가 엄청나게 다양해지고, 멸종하는 속도보다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지금 인류에 의한 여섯 번째 대량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핵전쟁 등이 대량멸종의 원인이 될 가능성을 논하면서 과거 지구생명체에게 재난을 안겼던 자연재해의 가능성도 짚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운석이나 소행성의 충돌, 그리고 외계로부터 유입되는 미생물에 의한 신종전염병의 가능성도 포함됩니다. 미미 레더감독의 1998년작 영화 <딮임팩트>가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 영화는 미확인 혜성과 충돌을 앞둔 지구적 대응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국적 우주선을 발사해서 혜성을 파괴하거나 그 궤도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한편, 미국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할 지하요새를 건설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의 샘플과 20만 명의 각계 전문가들, 컴퓨터가 추첨한 50세 미만의 미국 시민 80만 명을 2년간 수용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지구의 에너지원이 되고 있는 태양의 종말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말년의 태양의 활동을 이렇게 예측합니다. “말년의 태양은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행동한다. 외피는 차가워지면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는 반면, 중심부는 안으로 수축하면서 온도가 1억℃까지 상승한다. (…) 새로운 핵반응은 잠시 동안 엄청난 불꽃을 낳고, 평소의 1000억 배에 달하는 가공할 에너지를 방출한다.(246쪽)” 영드(영국드라마) 마니아들은 빨간 영국식 공중전화부스를 기억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시간여행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닥터 후>에서 나온 태양이 붉게 타오르면서 장엄하게 죽어가는 장면이 이럴까 싶습니다.

태양이 죽어간다면 당연히 지구적으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겠지요. 그래서 천문학을 하시는 분들이 태양계 밖에서 생물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지구에서 도망가기’라는 제목으로 인류가 살아남을 방법을 어떻게 모색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신천지를 찾기 위하여 떠나는 미래인류의 모습은 쉽게 연상되지 않습니다. 신대륙을 찾아 돛을 올리고 항구를 떠나던 콜럼버스의 모습이 그랬을까요? 드라마 스타트랙에서 나왔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만, 저자는 무거운 짐이나 사람을 우주선으로 실어 나르지 않고 공간 이동시키는 방법은 지난 50년 동안 SF소설의 단골메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니 초등학생 때 읽었던 공상과학 동화에서도 ‘조운트’라고 하는 공간이동방법을 미래인류가 사용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태양이 늙어가서 백색왜성이 되는 시나리오 말고도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하는 상황도 예견된다고 합니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 은하계로부터 220만 광년 떨어져 있는데 초속 130km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어 앞으로 30억년이 지나면 우리 은하계와 합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5억년에 걸쳐 유령처럼 상대 은하를 통과하게 될 두 은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교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사는 태양계가 은하의 꼬리를 타고 우주공간으로 탈출하게 될 확률이 12%, 안드로메다은하로 편입할 가능성이 3%라고 합니다. 하지만 새로 생긴 은하의 중심부로 내던져 은하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은하계가 안드로메다은하와 합쳐 밀코메다라는 새로운 이름의 은하로 탄생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핵융합의 한계온도를 간신히 넘긴 상태에서 희미하게 목숨을 보존하는 소수의 백색왜성만이 남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세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에 나오는 대사처럼 ‘이도 없고, 눈도 없고, 맛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존재로 남았다가 결국은 우주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마지막 순간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궁금하게 됩니다. 어느 코미디언은 궁금하면 500원만 내면 알려준다고 합니다만, 우주의 마지막 순간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가설은 대체적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커지고, 차가워지고 희박해지는 우주의 빅뱅과정이 특정 시점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차가운 종말이 첫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결말입니다. 이와는 달리, 물질이 서로를 잡아당기는 효과가 누적되어 어느 임계치에 이르면 팽창하던 우주가 최댓값에 도달하여 한숨을 내쉬고 빅뱅의 과정을 역으로 되밟으면서 수축하기 시작한다는 뜨거운 종말이 두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결말입니다. 우주의 종말이 차가울지 뜨거울지에 대하여 학자들의 논쟁이 분분하지만 최근에 암흑에너지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읽은 <우리 안의 우주>를 통하여 개념을 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쓴 닐 투록은 폴 스타인하르트와 함께 ‘주기적 우주이론’을 제안해 우주물리학은 새로운 숙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주기적 우주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수조 년을 주기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 주기는 중단없이 영원히 반복된다.(364쪽)”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우주>에서 이 부분을 읽고 정리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빅뱅 이후에 우주는 팽창했다가 수축하고, 또 순환할 때마다 우주의 크기는 커지고 점점 더 많은 물질과 복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오실로스코프에 나타나는 파장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모습을 연상하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와 겁(怯)의 개념, 그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이르는 알쏭달쏭한 말들이 바로 우주물리학이 밝혀낸 것들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연일까 싶습니다.” 임피교수는 “앞으로 지어질 중력파 감지 시설과 우주에서 중력파를 찾고 있는 플랑크 위성이 좀 더 세밀한 데이터를 보내온다면 우주가 일회용인지, 아니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지 판정이 내려질 것이다.(365쪽)”라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임피교수는 “과학은 우주의 종말을 예견할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 분야에서 과학자들은 최고로 난해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최상의 이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주의 종말은 모든 과학을 통틀어서 가장 불확실한 분야이기도 하다.(372쪽)”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가 “우주론 학자들은 실수를 자주 범하지만 결코 의심하지는 않는다.”고 다소 비꼬는 듯 말했다고는 합니다만,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는 그들의 노력은 결코 폄하할 수 없다 하겠습니다.

‘마술 같은 사건으로 가득 찬 이 우주에서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라는 임피교수의 마무리 글이 인류의 부단한 노력을 다그치는 일갈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주에서 빛이 사라지면 끈기 있고 독창적인 생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 어쨌거나 우리는 생각이 없는 물질보다는 우월한 존재임이 분명하다.’라고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읽고서, ‘크리스 임피교수가 안내하는 우주의 시원으로 가는 여행은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덕분에 유익하고 재미있었다.’고 정리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의 전작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를 읽은 느낌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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