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어느 제약회사가 멍을 빼는데 효과가 좋은 연고를 개발했다. 여기저기 많이 부딪히고 넘어지는 아이들을 주 소비층으로 보고 홍보를 집중했다. 경쟁상대는 당연히 다른 제약사에서 출시한 비슷한 효과의 제품으로 여겼다. 하지만 수년간 판매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차에 마케팅 전문업체에 의뢰를 했다. 이 마케팅 업체는 멍 치료제의 마케팅에 빅테이터 활용을 시도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멍’이란 키워드로 블로그와 트위터에 올려진 26억5226만9699건의 문서를 대상으로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도입한 소셜미디어 분석을 했다. 

흥미로운 분석결과가 나왔다. 우선 예측한 주 소비층이 틀렸다. 멍 치료제 시장에서 어린이 소비층은 여성의 1/4 정도에 불과했다. 경쟁상대도 다른 제약사의 제품이 아니었다. '계란'과 '쇠고기'가 경쟁상대였다. 멍은 어린이보다 성인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성인들은 멍을 빼기 위해 연고제품을 바르기보다 계란을 문지르거나 소고기를 붙이는 식의 민간요법을 쓴다는 것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이 제약사는 곧장 이런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성인, 특히 여성층을 겨냥한 새로운 홍보마케팅에 나섰다. 성형수술 후 붓기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소비층도 고려했다. 그래서 제품 겉포장 디자인도 여성 소비층을 겨냥해 새롭게 바꾸고, ‘멍 빼고 붓기 빼고’란 홍보문구를 사용해 여성지에 광고를 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3개월 만에 매출이 30%나 늘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국내 한 제약사의 빅데이터 활용 사례다. 이 회사는 올해 초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주최한 '제1회 빅데이터 활용 분석 경진대회'에서 이 사례를 발표해 은상을 받았다.

바야흐로 ‘빅데이터’(Big Data)의 시대다. 요즘 IT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키워드가 바로 빅데이터다. 빅데이터란 기존의 관리․분석 체계로 감당하기 힘든 방대한 크기의 디지털 정보를 의미한다. 지금은 인터넷 상에서 하루에 생성되는 정보의 양을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만들어진 정보의 양은 총 1.8제타바이트(1조8,000억기가바이트)에 이른다. 이게 얼마만큼이냐 하면 , 우리나라 전체 인구(2010년 기준 약 4875만 명)가 무려 18만 년 동안 쉬지 않고 1분마다 트위터에 3개의 글을 게시하는 양과 맞먹는다고 한다. 정말 ‘빅’ 데이터다.

빅데이터는 그냥 두면 효용 가치가 떨어지는 정보의 편린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모으고 분류하고, 또 연결하면 신통방통한 예언을 얻게 된다.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예측도 빅데이터 분석을 거치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예측으로 바뀌게 된다. 날씨와 베이커리 판매 데이터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유럽 베이커리 체인점이 비가 오면 판매대 앞쪽에 케이크를 진열하고, 기온이 올라가면 샌드위치를 더 많이 준비하는 게 바로 그런 경우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빅데이터에 주목한다. 이미 곳곳에서 활용도 되고 있다. 구글의 '독감 트렌드'나 미국 오바마 정부의 '필박스(Pillbox) 프로젝트' 등이 단적인 예다. 국내에서도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건강보험 가입자 5,000만명의 진료정보 자료 중에서 연령별, 성별, 지역별, 소득계층별로 대표성을 지닌 약 100만명의 정보를 추출해내 건강정보 빅데이터를 구축했다. 이 데이터를 보건의료 정책 수립이나 학술연구용으로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장황하게 빅데이터 이야기를 하는 건 궁금해서다. 건강보험제도와 의료공급체계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미래 의료생태계가 어떻게 될지. 각종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10년 뒤, 혹은 20년 뒤에는 어떤 의료환경이 펼쳐질지 알 순 없을까. 현재 일차의료에 대한 개념조차 없이 의료전달체계는 엉망이고, 대형병원은 블랙홀처럼 환자들을 빨아들인다. 그나마 부족한 공공병원은 문을 닫고, 분만하는 산부인과는 점점 사라지고, 힘든 수술을 하는 외과쪽 의사는 점점 줄어든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가까운 미래엔 어떤 일이 생길까. 정말 포괄수가제는 괜찮나. 의료서비스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를 낼지 모르겠다. 정치권의 선거용 정책으로 전락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이대로 가도 괜찮은가 걱정이다. 

만일 보건당국과 의료기관, 지역사회, 관련 산업계 등에 흩어져 있는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하고, 연결하면 어떤 예측을 내놓을까. 분명한 건 장밋빛 전망은 아니란 점이다. 재앙으로 가득한 묵시록적 미래를 예언하지 않을까 못내 두렵다. 이미 그런 징후가 보인다. 모성사망비가 높아지고 있으며, 지역간·소득계층간 건강 양극화는 물론 병원간 양극화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정말로 ‘대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의료계와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다. 답답하게도 정부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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