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전주홍 교수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 펴내
과학 논문의 본질과 과학자에게 필요한 소양 성찰

[라포르시안] 최근 언론 보도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는 ‘논문’과 ‘저자’다. 논문을 둘러싸고 벌어진 여러 일들로 사회의 공정성과 교육의 평등성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과학 논문이 무엇인지 이해함으로써 과학자가 되려면 어떤 소양이 필요한 지 성찰을 담은 책이 나왔다.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전주홍 교수가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 과학 논문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은 논문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논문은 왜 그렇게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이야기 한다.

이 질문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오늘날 논문의 의미’, ‘과학 학술지의 탄생을 둘러싼 배경’, ‘논문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 그리고 ‘논문 이면에 숨겨진 고민의 흔적들’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의생명과학 논문을 둘러싼 숨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전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과학자에게 과학 논문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가치, 의미, 우연, 재구성과 같은 비과학적 개념이 실제 과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덧붙였다. 

"교수는 연구비를 통해 업적과 명성을 쌓고, 학생은 교수를 통해 미래 비전을 실현한다. 따라서 연구비를 매개로 실험실에서 교수와 학생이 결집하는 자본 매개적 구조를 이루는데, 이는 현대 과학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학문 연구에서 건물, 재단, 기금과 같은 물질적 요소의 중요성은 베이컨도 인식했을 만큼 오래되었다. (……) 지금은 비록 콘크리트 건물 속에 첨단 과학 장비로 둘러싸여 있지만 말이다. 흥미롭게도 베이컨이 살았던 시대에 ‘history’라는 단어는 역사라기보다 관찰이나 실험을 통한 체계적인 탐구 기록이나 보고 자료를 의미했다. 이런 공간에서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논문의 의미를 잊은 채 눈앞의 작은 성과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과학자로서의 역사적 사명과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 - 중에서>

과학 논문이라는 진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 책은 지루하거나 낯설지가 않다. 부제인 ‘과학 논문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과학 논문과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도 함께 풀어냈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 소속 물리학자 잭 헤더링턴(Jack H. Hetherington)이 키우던 시암고양이가 그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등재된 사연은 흥미롭다.

"1975년 잭 헤더링턴(Jack Hetherington)과 공동저자 펠리스 도메스티쿠스 체스터 윌러드(Felis Domesticus Chester Willard)는 물리학 분야의 저명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논문을 게재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는 컴퓨터로 논문을 쉽게 작성하고 수정하던 시절이 아닌, 주로 타자기를 사용하던 때였다. 문제의 발단은 타자기로 논문을 작성하는 기술 환경에 있었다. 원래 연구는 헤더링턴 혼자 한 것이었으나 논문을 작성하면서 무심코 ‘we’ 나 ‘our’과 같은 복수형 인칭 대명사를 사용했다. 여기서 헤더링턴은 타자기로 논문을 완전히 새로 치는 대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저자를 한 명 추가하는 방식으로 복수형 인칭대명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새롭게 추가한 저자로 헤더링턴의 논문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펠리스 도메스티쿠스는 말 그대로 집고양이라는 뜻이다. 놀랍게도 실제 저자는 고양이었다.(……) 저자의 서명은 체스트의 발 도장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학술지 편집진은 고양이 저자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 - 중에서>

노벨상에 얽힌 논문 이야기는 더없이 흥미진진하고, 전통적인 학술지 <철학회보>를 비롯해 영향력 있는 <사이언스>, <네이처>에 얽힌 이야기는 지식의 역사다.

전주홍 교수는 “오늘날 과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실험실 현장의 모습이 어떤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어 이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과학 수준은 절대 과학자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으므로 과학자의 양성은 과학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 교수는 “무한 경쟁과 성과 중심의 틀 속에서는 과학자 양성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 과학자 교육과 연구 문화가 그런 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양적 규모와 성과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경쟁력은 정체되고 있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논문이라는 창으로 과학의 현실을 조망하고 싶었다”고 책을 펴낸 취지를 설명했다.

■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

전주홍 지음 | 도서출판 지성사 |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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