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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삶을 송두리째 바꾼 책과의 만남새로운 인생 / 오르한 파묵 지음 / 이난아 옮김 / 민음사 펴냄

지난해 말 도전했던 오르한 파묵 전작읽기가 반환점을 돌면서 시나브로 중단되었습니다. 파묵의 작품세계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던 것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어떻든 최근에 나온 이난아교수의 <오르한 파묵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읽게 된 것이 중단한 파묵 전작읽기를 다시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살아있는 작가의 ‘전작읽기’가 적절한 용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파묵이 노벨상 수상자라서가 아니라 터키라고 하는 특수한 위치에서 지켜본 동서양문명의 충돌현상을 작품에 담고 있다는 점이 주목거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책을 하나쯤은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경우는 의과대학 신입생 때 읽었던 독일의 의사이며 작가인 한스 카로사의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을 꼽습니다. 유럽을 막연하게 동경하던 것도 있었지만, 특히 작가의 의과대학 신입생 시절의 행적을 적고 있었기 때문에 끌렸고 공감하는 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파묵의 다섯 번째 작품 <새로운 인생>에 등장하는 오스만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습니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새로운 인생>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장에서부터 느껴진 책의 힘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 마치 내가 읽고 있던 책장들로부터 내 얼굴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그러한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9쪽)” 터키사람들이 평소에 과장이 심한 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과연 이런 책이 있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반부에 등장하는 나린박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작가 역시 조심스러운 입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세계 전체를 변화시킨다는 책, 그런 게 오늘날 자네 같은 청년들에게는 가능한 것인가? (…) 그렇게 강력한 마력이 오늘날에도 발휘될 수 있는건가?(177쪽)”

작가는 <새로운 인생>에 여러 개의 복선을 깔아두고 있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화자(話者)인 오스만은 젊은 여성 자난이 잠시 내려놓은 <새로운 인생>이라는 제목의 책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해서 구입하고 읽게 되는데. 그 결과가 오스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인생>은 파묵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소설의 주인공이 읽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즐겨 먹는 캬레멜의 상표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인생>에는 두 가지의 여행이 있습니다. 하나는 오스만이 읽은 책에 담겨 있는 여행과 주인공이 새로운 삶을 찾아 따라가는 여행입니다. 책에 담겨진 여행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는 단서가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그 책을 읽은 독자들 대부분이 빠져들어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내용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독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당국에서 배포를 금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지 않은 경로를 통하여 흘러나온 몇 권의 책 속의 책들이 독자들의 손길을 따라서 건네지면서 그 영향을 받은 독자들이 늘게 됩니다. 이 책의 내용과 파급효과의 심각성을 우려한 나린박사는 대리점모임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대책강구에 나서게 되는데, 책의 원작자를 살해하고, 그 독자도 경우에 따라서 제거하기를 불사한다는 미스터리한 면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파묵은 오스만이 읽은 <새로운 인생>의 내용을 시시콜콜하게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얼핏 전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매혹적인 서구적 삶을 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이를 추종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어 터키전통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나린박사의 사명감을 자극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책에 빠진 오스만이 이 책에 대한 힌트를 던진 자난을 대학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두 번째 만남에서 자난은 오스만에게 키스를 해서 순진한 젊은 영혼을 혼란에 빠트리는 상황 역시 생뚱맞다 싶습니다. 자난은 이 책을 먼저 읽었다는 메흐메트를 오스만에게 소개하는데, 오스만이 자난에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려는 순간 메흐메트가 총격을 받는 상황을 목격하게 됩니다. 당하는 오스만이나 읽는 독자나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종적을 감춘 자난을 뒤쫓은 오스만의 추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보면 파묵의 작품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오브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인물이 사라지는 상황은 앞선 작품 <검은책>과 뒤에 나오는 <순수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검은책>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아내 뤼야와 사촌형 제랄을 뒤쫓는 변호사 갈립이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물입니다. 한편 <순수박물관>에서는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을 그려내고 있다고 요약하고 있으니, 어쩌면 <새로운 인생>에 나타난 실종과 다시 만남이라는 오브제가 한 단계 발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새로운 인생>에서는 실종되었던 인물이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자난은 살아남을 뿐 아니라, 오스만이 메흐메트를 살해하는 것처럼 주인공이 실종된 인물의 죽음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행도 중요한 오브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파묵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소설에 등장하는 여행은 ‘모색으로서의 여행’입니다. 모색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이지요. 나는 현실에서는 ‘여행’을 하고 책 속에서는 상상의 글을 통해 ‘모색’을 합니다.(이난아 지음, 오르한 파묵 변방에서 중심으로, 95쪽)” <새로운 여행>에서의 여행은 이 작품에서 많은 비밀을 담고 있고, 작가가 배치한 많은 장치들을 풀어내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새로운 인생을 찾는 여행을 마친 메흐메트는 <새로운 인생>에 나오는 새로운 삶의 정체를 깨닫고 한적한 곳에 숨어 사는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박물관 역시 익숙한 부분입니다. 비밀결사를 운용하는 나린박사가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전통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거나, 아들 메흐메트에 관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는 것은 역시 퍼묵의 소설 <순수박물관>을 거쳐 이스탄블에 같은 이름의 박물관을 개관하여 작품세계에 등장했던 오브제를 구체화하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에 등장하는 박물관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인생> 안에 등장하는 책 <새로운 인생>을 앞세운 비밀세력의 책과 글을 앞세운 거대한 공격에 대비한 전략으로 준비한 대응방안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장 위대한 보물’인 ‘기억’을 잃고 속수무책의 얼간이가 되지 않게 할 것이고,  (…) ‘절멸의 위기에 놓인 우리 자신의 순수한 시간 그 역사를 통치할 주권’을 새로이 쟁취할 수 있게 할 것(178쪽)”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박물관이란 우리의 손때 묻은 일상의 물건들을 정지된 시간에 붙들어 매는 타임캡슐이라고 하겠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은 타임캡슐에 담긴 앞선 시대의 물건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각과 삶을 기억하고 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과 박물관의 목적은, 우리의 기억을 진심으로 설명하여 우리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의 행복으로 만드는 것(오르한 파묵 지음, 순수박물관 권2, 113쪽)”이라는 파묵의 설명은 다양한 형태와 목적의 박물관이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나의 모든 소설은 이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태어난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 나오는 젊은이들에서 <고요한 집>이 탄생했고, <고요한 집>에 나오는 파룩에게서 <하얀성>이 나왔다.”고 파묵이 말한 것처럼 <새로운 인생>에서도 이런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확신한 오스만이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집을 나서기에 앞서 <밀리예트> 신문을 뒤적여 젤랄 살리크의 칼럼을 읽는다거나 오스만이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 역시 젤랄 살리크가 자살로 죽은 다음에도 누군가가 그의 이름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사실은 젤랄 살리크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검은책>에서 젤랄 살리크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칼럼과 관련하여 살해하겠다는 협박을 피하기 위하여 뤼야와 함께 잠행하는 동안 누군가의 저격을 받고 살해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흥미롭게도 책속의 책 <새로운 인생>을 읽은 독자들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천사, 결국 너를 찾았어. 결국. 빗속에서. 그렇게 긴 여행 끝에. (…)  내가 항상 쫓아 왔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내 앞에서 나타났다간 사라지는. 사라졌기 때문에  찾게 만드는 시선은 너의 시선이었어. 너의 시선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길을 나섰어.(114-5쪽)”

그 천사는 바로 오스만이 여행 중에 찾아 같이 여행을 하고 있던 자난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난과 같이 여행하고 있는 오스만이나 자난은 무슨 오해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찾는 것은 바로 천사였습니다. 그 이유는?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되지만 천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빛이 닿는 사물이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게 된다고 믿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 세계와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있는 출구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평온과 죽음 그리고 시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급행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사고가 많은 급행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다가 죽음을 만나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작가의 복선을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깨달음을 얻은 자, 메흐메트는 나린박사의 아들 나히트이기도 하고, 비밀조직의 추적을 따돌리고 숨어살 때는 주인공 오스만의 이름을 빌고 있어 다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구분이 무너지는 경계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린박사는 자신의 아들이 오스만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들의 존재가 수상쩍어 보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전하는 진실은 이렇습니다. “책이 많은 사람을 탈선시키고,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 놓고, 모든 악의 원천이 된다고, 그리고 나린박사가 책에 대항해 벌이는 전쟁은,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외국 문명과 서구에서 유입된 새로운 문물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 글에 대항한 투쟁이라는 것 등등..” 그렇다면 같은 깨달음을 얻은 메흐메트가 그를 사랑하는 자난을 떠나 비란바 마을에 숨어버린 이유가 단지 자신을 뒤쫓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아버지 나린박사가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렇다면 자난을 차지하기 위하여 오스만이 자신을 죽이러 온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자신의 이름으로 숨어살고 있는 메흐메트를 저격하는 순간 오스만은 “넌 나 같은 사람을 찾아서, 책을 주고 읽게 만들어. 그리고 인생을 망쳐버리게 만들지.(306쪽)”라고 말하려 합니다. 책속의 책이 주는 경지에 오르기 전에 나린박사를 만났기 때문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게 된 것일까요?

파묵은 이 작품에 독특한 장치를 숨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읽는 독자들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의 모든 구석구석을 충분히 주의하면서 지능적으로 보았는가? (…) 내가 극장에서 메흐메트를 총으로 쏘았을 때, 그가 자난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아챘는지 알고 있는가?(373쪽)” 마치 학과진도를 확인하기 위한 쪽지시험처럼 말입니다. 쪽지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시려면 집중해서 책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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