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 처리 가능성 높아져...시민단체·의료계 "보험업계 숙원사업 해결하려는 특혜 법안"

[라포르시안] 국회에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편의를 높인다는 명분으로 의료기관에 실손보험금 청구 대행을 강제화하는 법안 처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작년 9월과 올해 1월에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과 전재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고용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요양기관이 그 요청에 따르도록 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해당 서류의 전송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전재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도 비슷한 내용이다. 이 개정안은 보험회사로 하여금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거나 이를 전문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보험계약자·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담았다.

그동안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실손의료보험 청구전산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검토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24일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이 법안의 심사를 앞두고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법안에 대해 '신중검토'가 아닌 '동의'로 입장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실손의료보험 청구절차 간소화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관련 기사: 실손의료보험 병원 청구대행 정책이 위험한 이유>

가장 우려해야 할 대목은 보험사가 병원에 직접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건강보험 보험자와 비슷한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처럼 병원이 보험사에 진료비(보험금)를 직접 청구함으로써 실손의료보험이 건강보험과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고, 여기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같은 전문 심사기관이 위탁심사를 맡을 경우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구 간소화를 통해 실손의료보험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건 건강보험 하나로 걱정없이 치료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과도 어긋난다.

민간보험사가 병원으로부터 확보한 진료기록 등의 데이터를 구축해 보험금 지급이나 계약 갱신시 가입자에게 불리한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

병원 입장에서는 민간보험사와의 실손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발생할 행정업무 부담과 지급 거부에 따른 소송 등의 문제를 떠안게 되며, 이 때문에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공이 크게 위축될 수도 있다.

"보험금 청구 편의성 높이려면 보험사 청구방법·복잡한 서류 요구부터 개선해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지난 24일 성명을 내고 "보험가입자 편의성을 핑계로 보험업계 숙원사업을 해결하려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실손의료보험에 있어 의료기관은 보험계약자도 아니며 어떠한 법률적 관계도 없어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청구를 수행할 의무는 전혀 없다"며 "보험업법이 건강보험법의 상위 법률이 아닌 이상 의료기관을 통한 청구 강제화는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의료법 제21조(기록 열람 등)는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및 의료기관 종사자는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표 제작: 라포르시안, 자료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2017년회계연도 결산 분석’
표 제작: 라포르시안, 자료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2017년회계연도 결산 분석’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에서 기관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는 심평원이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위해서 실손의료보험 심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지적도 제기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실손의료보험의 청구 대행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한 심평원의 역할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공적재정이 투입되는 공보험의 운영원리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사보험 시장의 업무 위탁을 허용하는 것은 불허해야 한다"며 "보험업법이 국민건강보험법의 상위 법률이 아닌 이상 국민건강보험법 개정 없이 실손의료보험의 청구 대행 업무는 적법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료기관에게 강제하고 있는 보험금 청구 전송 관련 자료는 진료내역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환자 개인의 건강정보라는 점에서 민감정보에 해당된다"며 "보험금 청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료나 내용 이외에 민감정보는 전자적 전송에서 배제해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개정 법안에는 이에 대한 제한이 없다. 이 법안은 겉으로 보험가입자의 편의성을 앞세우지만, 보험업계의 숙원사업의 해결을 위한 법안"이라고 비난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보험업법 개정안에 절대 반대한다고 천명하며 법안 저지를 위해 투쟁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의협은 지난 24일 관련 성명서를 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되면 일차적으로는 환자가 보험금을 신속하게 수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보험사는 환자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새로운 보험 가입과 기존 계약 갱신을 거부하거나 진료비 지급을 보류할 수 있게 된다"며 "환자의 보험청구 간소화가 아니라 보험회사의 환자정보 취득 간소화"라고 꼬집었다.

개정안이 국민의 편의보다는 실손보험 적자로 흔들리는 보험업계를 위한 특혜라고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실제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편의를 증진하는 게 목적이라며 보험금 청구절차나 관련 서류를 간소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앞서부터 보험회사가 실손의료보험금 청구시 환자에게 필요한 서류를 애매하게 고지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그 절차가 복잡해 환자들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게끔 하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지만 보험업계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데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의협은 "보험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의료기관에게 부당하게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물론, 의료기관이 지켜야 할 환자의 정보를 아무런 통제 없이 보험사가 요구하는대로 제출하게 하는 악법"이라며 "환자의 청구 간소화를 통해 소비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려면 보험사들이 먼저 청구를 위해 필요한 정보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세우고 보험사에 상관없이 통일된 청구방법과 서류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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