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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에곤 실레의 눈빛과 피츠버그의 불꽃 나무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 읽기 / 정영숙 지음 / 이담북스 펴냄

지난주에 장석주님의 <일상의 인문학>을 소개하면서 보스턴에서 열린 학회를 다녀왔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독성병리학자들이 참석했는데 전공분야나 관심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학회 참석 이외의 활동을 같이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에는 혼자서 가게 되었습니다. 국내 미술관은 별로 가보지 않는 제가 외국에 갈 때마다 그곳 미술관 혹은 박물관을 꼭 찾는 이유는 예술에 대한 안목을 높여보려는 차원이라기보다 일종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어느 미술관에 있는 어떤 작품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다는 허영심 말입니다. 사진 촬영이 허용되기라도 한다면 나중에 사진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싶은 속셈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공무 혹은 학술행사로 가는 해외여행이다 보니 미리 여행지에 대하여 충분히 공부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미술관 소장품을 감상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주마간산으로 돌아보기 마련입니다. 근래 들어 예스24 블로그 커뮤니티를 통하여 미술작품을 해설한 책을 읽을 기회는 많아지고 있습니다만, 그림을 보는 눈을 뜨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스스로 깨치는 일이라서 핵심을 챙기는 일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초대받은 부서 워크숍 행사의 경험은 제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회의실을 빌어 열린 워크숍의 공식일정을 마치고,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아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윤명로 화백의 기획전 ‘정신의 흔적’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 전시된 모든 작품을 꼼꼼하게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윤명로 화백의 핵심 작품마다 당시 화가의 삶이라던가 작품의 제작기법에 대하여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설명내용이 확인되면 “아하!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역시 전문가의 압축된 설명이 그림을 이해하는 안목을 높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발품을 팔아야 그림을 감상하는 눈도 열리는 것이겠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중회의실과 대강당이 있는데 대관료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인원이 된다면 큐레이터의 해설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3월 26일 부터 6월 23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를 전한 와이뉴스의 송광호 기자는 “실험성이 돋보이는 ‘문신’연작, 독자적인 표현방식을 모색한 ‘균열’ 연작, 전통적인 사물에 행위를 결합한 ‘얼레짓’ 연작, 자연의 거대한 에너지를 담아낸 ‘익명의 땅’ 연작과 겸재에게서 추상을 본 ‘겸재예찬’ 시리즈는 그를 추상미술의 명인으로 끌어올렸습니다.”라고 요약하고, ‘빈 공간에 최초의 한 획을 던지면 그 공간이 요동치고, 그 요동의 순간과 함께 호흡하면서 맞춰갔다’는 윤화백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추상의 대가 윤명로 화백이 느낀 궁극의 추상은 결국 자연의 숨결이었습니다.”라고 정리하였습니다.(연합뉴스 2013년 3월 28일자 기사. “자연을 닮아가는 추상미술의 거장, 윤명로)

최근 미술작품에 관한 책들을 읽을 기회가 많아진 것은 제임스 엘킨스 교수의 <그림과 눈물>이 기여한 바가 많습니다.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는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제 우리 영혼의 용량은 리큐르 잔으로 재야 할 겁니다.”라고 갈파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건조해졌는지, 간혹 무언가를 느낄 때도 그 작은 감정들에 조차 얼마나 인색한지를 비꼬았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인용하고 있는 엘킨스교수의 ‘눈물이 말라버린 시대의 그림에 대하여’라는 서문을 읽으면서 숨 가쁘게 살아오면서 저의 감성 역시 덩달아서 메말라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눈물을 쏟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설마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역시 그림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저의 부족함 때문일 것입니다.

마른 감성의 눈으로 그저 그림을 바라보는 저 같은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만, 그림을 통하여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분도 있습니다. 미술사를 전공하는 조이한교수님은 <그림, 눈물을 닦다>에 그런 생각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죽을 것만 같아서 도망치듯 시작한 독일 유학이니 낭만은커녕 하루 버티기도 힘들어 오기로 버틸 때, 에곤 실레의 작품 <해바라기> 만나고 눈물을 쏟았다는 고백을 한 조이한 교수님은 그때의 느낌이 다음과 같았다고 적었습니다. “여름 내 쏟아져 내린 뙤약볕 아래서 마지막 수분 한 방울마저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렸지만 해바라기는 서 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버릴 것만 같은 이파리. 까맣게 타 버린 씨앗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티고 선 모습. 해바라기의 자존심. 내가 거기서 본 것은 해바라기가 아니라 내 모습이었다.(조이한 지음, 그림 눈물을 닦다. 204쪽)”

<그림, 눈물을 닦다>에서 조이한 교수님은 눈물, 즉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소설, 시, 영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그림이 말하려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안규철화백의 작품 <먼 곳의 물>에는 하얀 식탁보가 깔린 탁자에서 주홍색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고, 물고기 앞에는 물이 반쯤 채워진 투명한 유리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식탁보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는 결코 유리그릇에 담긴 물에 닿을 수 없기에 조이한교수님은 이 작품을 ‘너무 멀리 있는 물’로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안도현 시인의 시(詩) <그대에게 가고 싶다>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 (…) 사랑이란 /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 그대에게 가고 싶다 (…)”

그림에서 시를 읽은 이는 또 있습니다. 윤향기 시인입니다.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키스 스캔들>에서 시인의 공상적 그림읽기를 볼 수 있습니다. 클림트, 뭉크, 실레, 브랑쿠시, 마그리트, 비어즐리, 루벤스, 워터하우스 등 대가들이 그린 키스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씨줄로 하고, 다양한 작가들의 시(詩)는 물론 소설,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키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날줄로 엮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꽃잎을 훔치는 키스’나 ‘위험한 욕망의 키스’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시지요? “당신이 일상에서 잊어버린 키스! 그러나 어쩌면 당신의 영혼이 아직 기억하고 있을 키스! 生의 에너지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키스에는 요란한 온도와 불빛이 있다. 그것은 때로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넓고 훨씬 신비롭다.(윤향기 지음, 키스의 미학, 53쪽)”라고 적고 있는 시인은 치유의 방법으로 키스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조이한 교수나 윤향기 시인은 그림이라는 씨줄에 시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작품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만, 그림에 시만을 오롯이 짜 넣은 글이 있습니다. 정영숙 시인의 <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읽기>입니다. 요즈음 개그프로에서도 <대한민국 행복 업 프로젝트>라는 코너가 뜨고 있는 것을 보면, 여자가 행복해지는 일이 무엇일까 관심을 가질 만한 것 같습니다. “샤를 보들레르 이래 시인은 언제나 화가의 암호를 풀어내는 해독자였고, 화가 역시 시인의 정신을 형상화하는 재현자였다. 시인은 시 안에 그림을 넣어두고, 화가는 그림 속에 시를 숨겨둔다. 마치 암수한몸과 같다.”라고 박제천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림을 읽어내는데 시(詩)만한 것이 없겠다 싶기도 합니다.

정영숙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 읽기>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화가들의 그림을 본 후에 쓴, 시가 있는 기행문 형태의 산문과 시를 먼저 읽고 그 시에 맞는 그림을 찾아서 쓴 산문을 엮었다고 합니다. “이 글들은 내 삶의 흔적이다.”라고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10여년에 걸쳐 써온 글들이기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가슴에서 소용돌이치던 불꽃들이 명화를 통해 시로 승화하거나, 아이들을 기르면서 부딪쳤던 어려움이나 아이들의 미래를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는 글이고 보면 책의 제목에 시인의 마음을 제대로 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봄에 책을 세상에 내놓 것을 염두에 두었던 듯, ‘마법사가 만든 봄’이라는 제목 아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을 가장 먼저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피렌체에서 ‘비너스의 탄생’을 감상하고서 ‘봄날 하느님을 만나다’는 제목의 시에 느낌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비온 뒤, 하얀 목련 꽃봉오리 속에서 / 비너스의 탄생을 본다 / 바람의 신이 파도에 태어난 금발의 여인을 / 봄의 여신이 있는 /성스러운 섬 키프로스에 데려다 주고 있다(17쪽)”고 시작하는 시에서 조가비를 타고와 키프로스 섬 해안에 내리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얀 목련 꽃봉오리 속에서’는 봄기운이 느껴지는 계절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 비너스가 타고 온 조가비를 목련 꽃봉오리에 비유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역시 시도 그림만큼 해석이 다양할 것 같습니다.

‘영원하고 말이 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는 로댕의 작품 ‘나는 아름답다’는 ‘지옥의 문’의 오른쪽 기둥 꼭대기에 있는 작품이라고 해서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영숙 시인은 ‘지옥의 문’을 미국 스탠포드대학 로댕박물관에서 보았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동경에서 열린 일본독성병리학회에 참석한 길에 들렀던 동경 국립서양미술관의 뜰에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로댕박물관에서도 본 적도 있습니다. ‘나는 아름답다’는 ‘추락하는 남자(Falling Man)’와 ‘웅크린 여인(Crouching Woman)’으로 각각 독립된 작품으로 제작된 것을 접합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로댕이 당시 유행하던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실린 ‘미(美)’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첫 구절을 소개합니다. “오, 인간들이여! 나는 꿈꾸는 돌처럼 아름답다 / 모든 사람을 상심하게 하는 나의 가슴은 / 시인에게 사랑 이야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생겼다 / 물질같이 영원하고 말이 없는 사랑을.(37쪽)” 고개를 하늘로 치켜든 채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는 팔뚝으로 웅크린 여인을 받쳐 든 남자에서 추락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웅크린 여성이 추락하는 것을 남자가 받아낸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표현했다는 해석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구요.

시인은 에두아르 마네의 1863년작 ‘풀밭 위의 점심’에서 퍼시 비쉐 쎌리가 1820년에 발표한 시 ‘종달새’가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 명의 옷을 입은 남자들 곁에 벌거벗은 채 앉아 있는 여인의 천연스러운 표정과 셸리의 시에서 “사라지는 태양의 금빛 찬란한 빛 속에서 / 구름이 빛나는 위에서 / 그대는 떠올라서 달려간다 / 지금 막 달리기 시작한 몸을 떠난 기쁨처럼(76쪽)”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한 몸인 듯 앉아있는 그녀는 싯귀처럼 달려가 마침내 우윳빛 몸은 불의 구름이 되어 창공을 날아오를 것 같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모두 23명의 화가들의 그림을 중심으로 시를 엮어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비엔나의 벨베데레궁 오스트리아 회화관에서 만난 에곤 실레의 작품에 대한 느낌에서 다시 눈길을 멈추었습니다. “강한 붓터치와 말라비틀어진 왜곡된 몸의 곡선, 허공을 바라보는 퀭한 눈빛, 말라비틀어진 시든 해바라기의 줄기와 잎새들, 외로움에 떠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는 몸이 움츠러드는 듯한 아픔과 고통을 느꼈다.(68쪽)” 에곤 실레의 작품 <해바라기> 만나고 눈물을 쏟았다는 조이한 시인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저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지 기회가 된다면 꼭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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