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시간외수당 못 받고, 부족한 의료인력 장시간노동으로 메워
'저비용·노동력 착취' 기반한 한국의료 틀 깨야

[라포르시안] '값싼 인건비의 최소 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다른 산업분야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우리나라 병원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영원칙이다. 

한국 의료시스템은 저비용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적은 수의 의료인력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수준의 급성기 병상과 국민 1인당 가장 많은 외래진료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경상의료비 지출 규모는 GDP 대비 7.7%로 OECD 평균(9.0%)보다 낮다.

이런 의료공급체계가 가능한 건 의료인력의 엄청난 장시간노동과 공짜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인력 중 가장 싼 인건비로 주당 100시간 넘게 근무한 전공의, 간호사 한 명이 수십 명의 입원환자를 돌보는 구조,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동네의원 개원의사들. 

대형병원은 전공의들의 값싼 노동력과 터무니없이 부족한 간호인력의 노동력을 갈아넣어서 병상을 확충해왔다. 저비용 구조에 기반을 둔 관행적인 공짜노동과 장시간노동에 의한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가 보편화됐다.

'사람 값'에는 박하고 '기계 값'에는 후한 건강보험 수가체계도 공짜노동과 장시간노동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다. 지금까지 건강보험 의료수가는 시설과 장비 사용에 편중된 보상체계를 적용했다.

병원이 시설을 확충하고 각종 검사장비를 도입해 운영하는 데 적용하는 수가에 비하면 의료행위에 투입하는 의료인력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수가보상은 상당히 박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병원들은 적정 수준이 아니라 최소한의 의료인력으로부터 노동력을 쥐어짜서 돌아가는 진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병원들은 간호사가 초과근무를 해도 근무수당조차 신청하지 못하게 하는 '공짜노동' 요구를 관행처럼 유지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가 올해 3월~4월 2개월간 전국 44개 병원을 대상으로 시간외근무수당 지급 기준과 시간외근무시간을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장치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간외근무수당을 1분 단위로 지급하는 곳은 6곳(13.65%)에 그쳤다.

시간외근무수당을 30분(18곳), 40분(1곳), 45분(1곳), 1시간(9곳) 등 30분 혹은 1시간 이후부터 지급하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심지어는 2시간 이후부터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는 곳(1곳)도 있었고, 부서장의 사전 승인과 동의를 받지 않은 시간외근무수당은 인정하지 않거나(2곳), 시간외근무수당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병원(1곳)도 있었다.

어떤 병원은 통상근무자에게는 초과시간만큼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고, 병동 3교대 근무자 중 낮번에는 시간외근무수당 청구 불가, 저녁번에는 초과시간만큼 청구, 밤번에는 기본 1시간 인정 등 근무형태별·근무조별 시간외근무수당 적용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시간외근무시간을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장치는 28곳(63.63%)이 아예 없었고, 있다고 응답한 병원 현황은 컴퓨터 로그인-로그아웃(2곳), 출퇴근 펀치(1곳), 지문인식기(5곳), 지정맥 인식기(1곳), 직원카드(4곳), 관리자 관리(1곳) 등이었다.

근로기준법과 노사간 단체협약에는 하루 8시간, 주40시간제를 초과하는 시간외근무시간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조사결과를 보면 실제 병원에서는 근로계약서와 단체협약에 명시된 출퇴근시간이 준수되지 않을 뿐더러 출퇴근시간을 객관적으로 기록할 장치나 임금계산의 기초가 되는 근로시간 관리대장조차 없어 공짜노동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병원업종에 대한 근로조건 자율개선 지도사업을 시행한 결과 점검대상 50개 병원 중 근로시간 위반 7곳(14%), 연장근로 위반 14곳(28%), 휴게시간 위반 21곳(42%) 등의 불법이 적발됐다.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이 2018년 3월 한 달 간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등 전국 14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조합원 1,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의료노련이 실시한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7.2%가 '연장근무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간호사의 경우 하루 평균 4시간 가까이 시간외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간호사의 시간외 근무시간이 긴 원인으로는 52.4%가 '일상적인 업무하중'을 꼽았고, 이어 '인수인계 등 업무준비'(13.4%), '교육시간'(3.6%) 순이었다.

연장근무가 수시로 발생하지만 시간외 근로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상당히 높았다.

조사에 참여한 병원 노동자의 68.2%는 시간외 근로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56%가 '관리자가 눈치를 주거나 승진 등 불이익을 유려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내가 원해서 남아 있기 때문'(13.4%), '전체적으로 신청하지 않는 분위기'(2.4%) 등을 꼽았다.

2016년 12월부터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간호사의 '노동력 갈아넣기' 행태가 더 가중되고 있다. 적정 의료인력 확충 대책도 없이 전공의법이 시행되면서 그에 따른 업무 부담이 간호사 직종으로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정한 노동의 댓가를 지급하지 않는 공짜노동과 장시간노동이 만연하면서 이를 견디다 못한 경력직 간호사가 떠난 자리를 인건비가 더 싼 신입 간호사로 대체하고 있다. 간호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고려할 때 의료서비스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환자안전도 위협받게 된다.

심지어 대형병원들은 1년치 채용계획 간호사를 일괄 모집한 후 최종 합격자를 순번을 매겨 대기발령 상태로 묶어두고 결원이 생길 때마다 발령하는 식의 채용 갑질을 저지르고 있다.

병원에 채용된 봉직의사들의 처지도 크게 나을 게 없다. 봉직의 가운데 상당수는 계약직 형태로 병원에 고용돼 근무하고 있으며, 의료기관은 주당 근로시간 제한 규정에서 제외하는 특례업종에 포함되기 때문에 주당 근무시간도 상당하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회원 7,885명을 상대로 실시한 '2016 전국의사조사' 결과를 보면 진료의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50.0시간이고, 연평균 근무시간은 2,415.7시간에 달했다.

같은 시기에 한국의 취업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2,069시간)보다 305시간이나 더 길었다. OECD 회원국 평균과 비교하면 651시간(약 27일) 더 오래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력 갈아넣기' 의료인력 공급구조 바꿔야

이런 의료공급 구조를 보면 한국 의료를 지탱해온 본질은 '노동력 착취'나 다름없다. 더 적은 월급으로, 더 적은 수가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하는 방식으로 병원과 의료시스템을 유지해 온 셈이다.

병원들이 지금처럼 저수가 구조를 핑계삼아 편법적이고 불법적인 '공짜노동·장시간노동' 체계를 지속할 경우 상황은 좀처럼 개선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건 이렇게 '노동력 갈아넣기' 식의 의료인력 구조를 기반으로 한 의료시스템은 계속 유지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대형 환자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한국 의료시스템 실패에 대한 ‘적신호’가 계속 울리고 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려면 병원의 간호사 등 최소 의료인력 수준을 법제화하고 이를 어기는 병원에 대한 강력한 지도와 감독, 처벌이 집행하는 동시에 병원이 자발적으로 적정 의료인력을 확충할 수 있게끔 수가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을 계기로 그동안 개별병원의 경영적 판단에 맡겨놓았던 의료인력 확충 문제를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이란 목표 아래 국가가 책임지고 개선해야 한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보건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법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적극적인 재원확보 방안이 필요하다"며 "지난 4월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서 요구하는 규정에 따라 보건의료인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적정 인력기준 마련과 인력수가 제도화, 필요한 재정 확보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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