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정부, 업체 간담회서 연구개발 지원·인허가 단축 강조
"조급한 친기업 일변도 규제완화 정책, 더 큰 부작용 초래할 것"

[라포르시안]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을 '제2의 반도체'와 같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부터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로 허가받은 '인보사 성분 논란', 주요 제약사의 잇따른 신약 기술수출계약 취소로 국내 바이오산업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규제 완화와 지원 정책만 논의하는 게 합당한 방향인지 의구심이 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기획재정부는 지난 15일 ‘바이오헬스 혁신 민관 공동 간담회’에서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을 위한 정책 과제를 토론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국내 주요 제약사와 관련 단체가 참여해 정부를 상대로 ▲연구개발 (R&D) 지원 확대 등 바이오헬스 기술 경쟁력 확보 ▲투자 지원 및 세제 지원 등 산업 생태계 혁신 ▲바이오 인력 등 바이오헬스 전문인력 양성 ▲인허가 단축 등 규제 개선 방안을 건의했다.

사진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
사진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

간담회에서 이정희 유한양행 대표는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벤처와 기업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므로 기업, 대학, 병원 등이 함께 연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권세창 한미약품 대표는 "임상 3상 등을 위해서는 R&D 지원이 대폭 확대되어야 하고, 생산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는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므로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조정열 한독약품 대표는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 샌드박스 모범사례를 만들어야 하고, 신약개발 연구비를 자체 조달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이오헬스 기업 대표들의 건의에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의약품 안전 관리 수준을 세계적 수준에 맞추어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고, 신속한 품목 인허가 등에 필요한 부족한 심사인력 확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기업의 R&D 재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세제지원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바이오헬스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보겠다"고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바이오헬스 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하고, 바이오헬스 산업에 대해 국민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함께 더욱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간담회 내내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과 규제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이의경 식약처장은 '신속한 품목허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전성·유효성 위한 규제가 '공포'라는 전문가들 

하지만 현재 국내 바이오산업 분야의 상황을 보면 무분별한 규제 완화 논의보다 안전성·유효성에 대한 보다 철저한 검증 절차를 마련하는 게 더 절실해 보인다.

인보사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 등은 심판자가 아니라 부실 검증과 관리감독으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처야할 위치에 있다.

실제로 코오롱생명과학이 인보사를 개발하는 데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받았고, 인허가 과정에서 인보사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가 잇따랐지만 식약처가 마치 업체 대변인처럼 나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 개발 과정에서 복지부의 신약개발 지원부터 산자부·지식경제부의 바이오 의료기기산업 원천기술개발사업 지원비, 과기부와 복지부의 첨단바이오의약품 글로벌 진출사업 등을 통해 예산 지원을 받았다.   

식약처는 인보사 허가 과정을 적극 지원했다.

식약처는 2017년 7월 인보사 허가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2014년부터 바이오업체의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마중물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유전자치료제도 마중물사업을 통해 품질관리 기준 설정 등에 대한 밀착상담을 받아 개발 과정 중 시행착오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유전자치료제 품목허가 규정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인보사 품목허가에 유리하게 판단한 것으로 정황도 있다.

출처: 2017년 6월 14일 열린 인보사 품목허가 관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 중에서
출처: 2017년 6월 14일 열린 인보사 품목허가 관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 중에서

2017년 인보사 시판허가 한 달 전인 6월 14일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관련 회의에서 한 중앙약심 위원이 "유전자치료제의 품목허가는 관련 규정에 따라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제가 없거나 유전자치료제가 현재 이용 가능한 다른 치료법과 비교해 안전성·유효성이 명백하게 개선된 경우에 한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 규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현행 유전자치료제 품목허가를 규정한 '생물학적제제 등의 품목허가·심사 규정' 제3조2항2조에는 '유전자치료제는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치료제가 현재 이용 가능한 다른 치료법과 비교해 안전성·유효성이 명백하게 개선된 경우에만 품목허가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식약처 관계자는 "관련 규정은 2000년에 도입됐으면 당시는 연구개발 초기로 경험이 부족한 유전자치료제의 무분별한 연구를 제한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며 "기존 치료 대비 안전성·유효성 개선은 직접 비교임상만을 요구한 규정은 아니고 간접적인 비교를 통해서라도 개선을 증명한다면 인정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식약처의 의견에 이어 일부 위원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규정이 없으므로 적절한 시기에 개정검토가 필요하며, 과학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공포'에 기반을 두고 규정을 만든다면 신약을 개발할 수 없다"거나 "규정 만들 때 참여 했었는데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두려움이 많던 때에 만들어진 규정으로, 사용자의 선택이 다양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식약처 편을 들었다.

이처럼 인보사의 개발 과정이나 인허가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이 적지 않았음에도 유전자치료제 개발이라는 성과에만 집착해 검증이나 관리감독은 부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경 식약처장은 지난 15일 간담회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한 의약품 검증 강화가 아니라 신속한 품목허가를 언급했다.

인보사뿐만 아니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논란도 커지고 있다.

2015년 12월 21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015년 12월 21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업체(CMO)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함께 삼성의 바이오 사업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규제완화와 바이오산업 육성 정책 붐을 타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승승장구했다. 2016년 상장을 하면서 현재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분식회계 의혹이 터지면서 상장폐지라는 최악의 상황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최근 들어 다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 등의 논란이 커지고 검찰 수사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 부처들이 나서 관련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 완화가 개발 지원, 신속한 품목허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는 건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지난 4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인보사 관련 토론회에서 인하대의대 최규진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아예 공약에서부터 바이오 산업 육성 계획을 가지고 나왔으며, 재생의료분야에 대한 규제완화 흐름은 과거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조급한 친기업 일변도의 규제완화 정책이 주를 이루며 주식시장을 노린 재생의료 거품이 형성되고, 인보사 사태를 통해서도 이러한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면 더 큰 부작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3,000명이 넘는 환자가 투여받은 인보사 사태에서도 확인됐지만 무분별한 바이오산업 육성 정책의 부작용으로 인한 최종 피해자는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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