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노동실태와 과제 정책토론회 열려..."사직·이직이 간호사들의 꿈"
환자안전 위협..."환자가 셀프치료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

[라포르시안] "간호사를 시작했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간호사 노동환경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 전공의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야간 근무 때 병동에서 의사를 보기 힘들고, 주치의 노티(notify)도 불가능한 상태다" <서울 모 사립대병원 20년 경력 간호사의 증언>

병원 현장의 의료인력 부족으료 열악한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형병원에서는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관련법 시행으로 간호사의 '노동력 갈아넣기' 행태만 더 가중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적정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대책도 없이 전공의법이 시행되면서 그에 따른 업무 부담이 간호사 직종으로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찾아 병원을 떠나거나 경력 단절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의 전체 간호사 면허 소지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활동을 중단한 '장롱면허' 상태인 이유다.   

지난 13일 국회에서 ‘한국 간호사의 노동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 대한간호협회, 전국보건의료노조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 발제에 앞서 병원현장의 실태를 고발하는 현장 간호사의 증언이 나와 주목받았다.

서울의 모 사립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20년차 경력의 간호사 A씨는 의료현장의 간호사들이 처한 노동실태를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A간호사는 “전공의법이 시행된 이후 저녁 근무 때는 의사를 보기 힘들어졌다"며 "이 때문에 전공의가 맡아오던 업무가 간호사에게 넘어왔다"며 "요즘은 야간에 입원환자 주치의에게 노티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주당 근무시간 제한으로 전공의 업무가 줄어드면서 병원들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PA(진료보조인력) 간호사 확충이다. 병원이 전공의를 대신해 3~5년차 경력 간호사를 PA로 활용하면서 기존 간호사의 업무 부담은 더 커졌다고 한다.

A간호사는 "1년차 미만의 신규 간호사의 중환자실 간호인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농담으로 ‘환자가 셀프치료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왜 내가 간호사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자조했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간호사가 고유 간호업무는 물론 의사와 약사 업무까지 부담하고 있다고 전했다. 

A간호사는 "병원은 1~2년차 의사가 오더를 냈을 때 경력 간호사가 이를 걸러주기를 바라고, 그런 역할을 못 하면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다"며 "또한 약사가 해야할 복약지도나 심지어 가루약 조제업무까지 간호사가 맡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낮은 연차의 후배 간호사들에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고 말한다. 사직서를 내는 게 간호사들의 희망이 된 상황"이라며 "나처럼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생계형 간호사만이 남아서 현장을 지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규 간호사를 뽑아도 얼마 못 가 병원을 그만둔다. 병원간호사회가 2015년 실시한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 결과, 2014년 채용한 신입 간호사 1만 3,779명 중 33.5%가 2014년 12월 기준으로 병원을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며칠 휴가를 다녀온 사이에 '응급사직'으로 그만두는 간호사도 적지 않다. 그마나 얼마 전까지는 이직 등으로 병원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하는 간호사가 많다보니 한꺼번에 다 그만두면 남은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에 번호표를 뽑아서 사퇴 순서를 정하는 '사직 순번제' 방식이었다.

요즘은 앞뒤 돌아보지 않고 하루 이틀 만에 퇴사를 통보하고 도망치듯 병원을 떠난다. 간호사 업무환경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고형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가
고형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가

고형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가 보건의료노조의 의뢰로 올해 2월 간호사 2만2,8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간호사의 79.5%가 이직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직을 고려한 이유는 80.2%가 열악한 근무조건과 노동강도를 꼽았고, 이어 임금수준 51.6%, 직장문화 및 인간관계 25.9% 순이었다. 

A간호사는 "2~3일 휴가라도 다녀오면 간호사가 대여섯 명 정도 바뀌어 있다. 휴가 다녀온 기간 동안 응급사직하는 신규 간호사는 저하고 얼굴도 못 보고 헤어지는 셈"이라고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다.

또다른 현장 증언자로 나선 중소병원 소속 간호사 K씨는 “지역 중소병원의 경우 특히 인력부족 문제가 심각해 1년 내내 간호 인력을 상시 모집할 정도”라며  “인력이 부족할 때는 한달에 오프 3~5개, 나이트 근무 10개, 수술실 콜대기가 18~20개씩 발생한다”고 말했다.

K씨는 "중소병원의 인력문제는 정말 심각한데, 1년 내내 상시모집을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병원이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상은 병든 노동자들뿐”이라고 토로했다.

간호사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포스터. 출처: 보건복지부
간호사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포스터. 출처: 보건복지부

 "간호사 임금수준과 노동실태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어"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간호사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적정인력 확충과 처우개선이 근본적인 대안으로 제시됐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발제를 통해 "간호인력 문제에서 가장 시급한 건 이직을 줄이는 것"이라며 "2018년 기준으로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39만4,662명에 달하지만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19만5,314명으로 전체의 49.5%에 불과하다. 특히 1년 미만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은 2017년 기준으로 42.7%에 달한다"고 했다.
 
정 실장은 "간호인력의 이직률을 줄이려면 신규간호사 교육 가이드라인 및 프리셉터에 대한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야간간호 가이드라인 신설 및 준수, 야간간호관리료 신설이 필요하다"며 "또한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인한 결원 인력 모성정원으로 충원하고, 예측가능한 교대제 개편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사의 법적 배치기준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영우 대한간호협회 병원간호사회 회장은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사 최소배치 수준과 간호관리료 차등제 기본등급을 일치시켜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강력한 처벌을, 반대로 간호사를 추가 채용하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가산을 부여해 ‘병원 내 간호사 확보’라는 정책목표를 실효성 있게 달성토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3차 상대가치개편에서 이 같은 내용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따른 실효성 있는 보건의료인력종합계획 수립 필요성도 지적했다.

박 회장은 " 간호인력문제는 인구변화, 병상 추이, 고령화 속도, 대학 정원 등 다양한 사회적 요소에 영향을 받으므로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올해 10월부터 시행될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따른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은 반드시 수립되도록 해야 하며, 이 때 간호인력 수급을 위한 공급 측면 뿐 아니라 이직 감소 및 장기근속이 가능하며,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질적 제고 측면까지 포함해 포괄적으로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신규간호사가 의료기관 적응과 이직률 방지를 위한 정책 개발 및 재정투입, 중소병원 간호인력 확보를 위해 야간·휴일 근무시간 보상 등을 고려한 표준임금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올해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의 근무조건 실태를 조사한 결과 간호사의 임금수준과 노동실태는 10년 전과 비교해서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해마다 병원의 병상과 장비가 증가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간호인력은 늘 부족한 상태로 채워지지 않고 있다"며 "병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인권이 보호받는 일터가 되도록 활동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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