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 인력부족 상태서 제공되는 비정상적 의료서비스...구조적인 문제로 들여다봐야

[라포르시안]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로 인해 내 삶은 우울하다" (모 대학병원 내부 게시판에 어느 간호사가 올린 글)

국내 의료기관의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77년 건강보험제도 도입을 기점으로 이후 지난 40년간 의료인프라 확충 과정에서 방치된 문제이자, 의료서비스 산업의 빠른 성장을 가능토록 한 원동력(?)이었다.

병원은 가장 노동집약적인 조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족한 인력으로 노동력을 쥐어짜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일반화됐다. 보건의료인력의 노동력을 근간으로 돌아가지만 건강보험 의료수가 보상체계는 시설과 장비에 집중되고, 인력에 대한 보상 비중은 낮았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적정 의료인력을 두고 돌아가는 병원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만성적인 인력부족 상태에서 이뤄지는 비정상적인 의료서비스가 정상적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왔다.

그나마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과 맞물려 의료 분야에서도 비정상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버텨왔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구조 선진화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조가 확산되면서 의료 분야의 누적된 인력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폭발 직전까지 왔다.

최근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인해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난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가장 먼저 위기가 감지된다. 병상가동률이 90%대 후반을 찍으면서 더는 외래진료이든 입원환자 돌봄이든 늘어난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며 비명이다. 이런 상태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는 의료인의 삶을 불행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전문가·병원 노사의 의료인력 확충 해법은?

병원노사가 함께 모여 적정 의료인충 확충을 위한 의견을 나눴다. 지난 8일 오후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보건의료산업 노사공동포험과 보건의료산업사용자단체협의회(준) 공동 주최로 인력확충 관련 정책워크숍이 열렸다.

지난달 5일 보건의료인력 수급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적정 의료인력 확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감이 커진 가운데 열린 이날 워크숍에서는 다양한 정책 방안이 제시됐다.

우선은 의료인력 공급을 양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발제를 통해 국제비교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보건의료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며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의사 배출을 늘리고, 의료기관의 간호사 배치기준을 강화해 실제로 인력확대로 이러질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한국의 보건복지인력이 전체 노동 인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의 평균인 10.1%에 못 미친다"며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2000년대 들어 고령화 대응 차원에서 의대 입학정원을 늘린 결과 인구 10만명 당 의대 졸업자 수가 2000년 평균 8.3명에서 2015년에는 평균 12.1명으로 늘었다. 반면 한국은 의대 정원 감축 및 동결 정책을 지속해 인구 10만명 당 의대 졸업자 수가 6.0명(한의대 제외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 1인당 의료기관 방문횟수나 의사 1인당 연간 진찰건수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정 교수는 "OECD 보건통계(2017년)를 보면 의사 1인당 연간 7,140명의 환자를 진찰해서 OECD 국가 중 가장 많고, OECD 평균(2,295명)의 3배를 넘는다"며 "한국의 의사들은 과도한 근무 부담과 열악한 근로여건에 시달리고 있으며, 환자들도 3분 진료와 의료의 질적 저하를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등 비의사 직종은 그에 따른 임금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 교수는 "의사 중심의 의료제도 아래에서 공급인력의 제한이 희소가치를 반영해 그대로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의사인력에 국한된다"며 "건강보험 수가 인상에 따른 의료기관의 수입증가는 경영자나 의사인건비 증가로 연결되긴 쉽지만 간호인력의 처우개선은 별도의 노사협상 대상으로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 적정 의료인력을 확충하는 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와 의료공급 체계 및 보상체계의 개편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며 "전문과목 간, 지역 간의 의료자원 균형 분포는 (의대 정원 확대)이 전제조건이 달성되지 않으면 소용없고, 전공의 근무여건 또한 충분한 의사인력 공급 없니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간호 배치기준 실효성 확보를 위해 간호인력 현황 미신고 병원에 대한 패널티를 강화하고, 간호관리료 차등제의 수가 가감산 폭을 확대해 간호인력 배치에 대한 유인을 높여야 한다"며 "신규 간호사 및 전공의 교육에 정부가 비용지원을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병원 노조 측에서는 적정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보건의료정책 방향 제시와 관련 법제도 정비, 적극적인 재원 확보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발제를 통해 보건의료인력 관련한 올바른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병원 노사가 고민해야할 5대 정책과제로 ▲신규간호사 교육제도 개편 및 지원 ▲모성정원제 도입 ▲사학연금 사각지대 해소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인력기준 세분화 ▲간호인력 배치기준 강화 시범사업 적극 추진을 꼽았다.

정재수 정책실장은 "지난달 보건의료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오는 10월 25일부터 시행 예정임에 따라 필요한 법제도는 정비돼 있지만 종합적인 정책방향 제시와 이를 위한 적극적인 재원 확보 방안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간호인력 문제 해결의 선순환 구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간호인력 처우개선과 이직률 낮추기가 매우 중요한 정책"이라며 "이를 위해 신규간호사 교육훈련에 필요한 적정 수준의 지원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2019년도 예산안에 신규 간호사와 간호대학 실습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관리업무만 담당하는 '교육전담간호사'를 국·공립병원에 배치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77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민간의료기관이 90% 이상 차지하는 국내 의료환경에선 일부 국공립병원만을 대상으로 교육전감간호사 배치를 지원하는 건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이 정도 예산으로는 사업의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더욱이 민간병상이 90%에 육박하는 공급 구조에서 관련 예산은 10%에도 못 미치는 국공립병원에 한정돼 있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며 "신규간호사 교육제도 개선을 위해 각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별로 3~4명의 교육전담인력 및 병동별로 4명 이상의 교육전담 프리셉터를 갖추기 위해서는 연간 1,612억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병원 사용자 측에서는 인력확충에 앞서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금처럼 대형병원으로 경증질환자까지 몰리는 상태를 방치하고, 의료인력만 확충하면 결국에는 의료시스템 붕괴만 늦출 뿐이라고 심각한 위기의식을 보였다.

박종후 고려대 안암병원장은 "선택진료 폐지와 상급병실 급여 적용 등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환자는 크게 늘었지만 의료인력은 그대로다. 게다가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주당 근무시간 80시간 제한으로 업무시간이 줄면서 전공의 인력이 반토막난 것과 마찬가지 상태"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형병원부터 망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환자가 크게 늘면서 내부고객인 의료진의 업무부담은 가중되고, 업무만족도는 떨어졌다. 

그 와중에 병원 내부 게시판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로 인해 내 삶은 우울하다"는 한숨섞인 글도 올라왔다.    

박 병원장은 "우리 병원에서도 작년 10월부터 환자가 크게 늘기 시작해 병상가동률이 90% 중반을 넘었다. 최고 96.5%를 기록했다. 이 정도 병상가동률은 분만실과 신생아중환자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병상이 다 찼다는 의미"라며 "의료진의 업무부담이 더 커졌고, 사직하는 간호사가 속출했다"고 전하며 지금의 상황을 총체적 난국으로 비유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병원장인 나 사진도 우울하게 만들었다"며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해 환자안전은 심각하게 우려되고, 환자와 직원들의 불만은 폭증하고, 인건비 상승률은 가팔랐다"고 했다.

지금과 같은 상태를 방치하고 의료인력 확충만 추진한다는 건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논의하고 우려했다.

박 병원장은 "바람직하고 건강한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논의는 없고 각 직역의 현안에만 집중한다. 서로 간에 한치의 양보도 없다"며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기반한 보건의료 발전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에 따른 하위법령 마련과 작년에 발표한 간호인력 처우개선 종합대책을 추진하면서 의료인력 확충 문제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정책워크숍에 참석한 손호준 복지부 의료정책자원과장은 “보건의료 인력수급문제는 간호인력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고, 이를 포함해 보건의료인력 전반을 검토하는 단계로 나갈 것"이라며 "의료전달체계는 내부적으로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보건의료인력 문제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아가야 할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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