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의 가슴앓이>

지난 칼럼을 쓸 즈음에는 진주의료원을 폐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 각계각층에서 공공병원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폐쇄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보건의료를 망치는 일이라고 하면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홍준표 경남 도지사도 다소 주춤하는 기세다.

외국의 공공병원 특징

진주의료원 때문인지, 지난 대통령 선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웬만한 국민들은 한국의 공공의료 부분이 취약하다는 것을 거의 알게 되었다. 외국은 의료보장성이 90% 가까이 되는데 우리는 60% 남짓, 그들은 공공의료 인프라가 90% 정도 되는데 한국은 10% 정도(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12%, 병원 수는 6% 정도)로 흔히 비교하는 OECD에서도 최하위라고 한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로 필자가 찾아갔던 외국의 병원들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들에게서 공공병원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모두 알다시피 공공병원 이용은 거의 무료라는 점이다. 암이든 중증질환이든 관계없다. 하지만 동네의원들은 나라마다 달라서 진료비를 내는 곳도 있고, 안 내는 곳이 있기도 하다.

둘째, 종합병원은 거의 다 공공병원이다. 그래서 외국에 갔을 때 공공병원이 어디 있느냐 물어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주변에 깔린 게 다 공공병원이기 때문에 굳이 ‘공공병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평범하게 ‘OO종합병원’이라고 표현하며, 역시 평범하게 이용할 뿐이다. 늘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면서도 굳이 숨을 쉰다고 일일이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노스 요크 종합병원(North York General Hospital)’.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예산으로 지역에서 전문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런던 외곽 뉴멀든(New Malden) 지역의 킹스턴 종합병원(Kingston Hospital). 역시 공공병원으로서 영국도 지역마다 균등하게 유치해서 지역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셋째, 공공병원의 의료 수준과 의료의 질이 사립병원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래서 공공병원에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진료과들이 있지만, 사립병원들은 진료수가가 낮거나 노력 대비 수익이 낮은 것들은 취급하지 않는다. 심장수술, 중증질환센터, 응급실 등은 외국의 사립병원들이 들여놓지 않는 진료 내용들이다. 주민들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겪게 되면 모두 지역의 종합병원(공공병원)으로 간다. 사립병원들은 대부분 수술이나 검사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다.

고관절치환 수술을 받아야 하는 70세 Smith 부인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병원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NHS와 계약을 통해 치료비를 받고 있는 사립병원(영리병원)도 있었고, NHS 병원(공공병원)도 있었다. 그녀는 NHS 병원을 골랐지만 수술 날짜는 정해졌어도 병실이 나오지 않아서 다시 사립병원을 찾아서 시간을 잡았고, 병실에 입원을 한 후 빠르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수술 받은 얼마 후 운이 나쁘게도 그녀에게 위험한 합병증이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 사립병원은 응급의료 전문 인력은 물론 응급치료 시설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급히 NHS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다행히 Smith 부인은 머잖아 회복을 할 수 있었지만, 자칫 기본적인 수술이었어도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다.(영국 의사협회 제공 사례)

넷째, 외국의 공공병원들은 거의 적자병원들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적자를 만들어내니까 문제 있는 병원이라는 인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병원들은 해마다 내년도 병원 운영 예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받고 있고, 주민들로부터 진료비를 받아서 운영하지 않으며, 의료장비, 수술기법, 약품비, 인건비들이 해마다 증가하는데 예산이 따라서 증가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마다 배치되어 있는 종합병원들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자가 아니라 예산이 늘어나는 것

필자가 사는 제주도의 2013년 예산이 3조 원이 약간 넘는다. 2014년에는 분명 이 금액보다 많은 예산이 수립될 것인데, 도 예산이 수천억 원 초과되었다고 도 행정을 나무랄 것인가? 예산이 초과 수립되었다고 도의회에서 질타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만 적정하게 만들어졌는지, 새는 구석은 없는지 살필 뿐이다. 국가나 시도의 예산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그러한 시각을 공공의료원에는 왜 못 보여줄까? 각 시도에서는 주민들의 공익을 위해서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면서 지역의 건강지킴이인 공공의료원에는 왜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일까?

모든 조직이나 단체의 예산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공공의료원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의 보건문제에 관여하고, 저소득층 환자들을 돌보고 국가 비상사태 때에는 적절한 역할을 해내는 의료원들은 해마다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사실 적자란 개념은 경영에서 쓰는 말이라서 예산이 늘어난다고 쓰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외국과 다른 점은 한국의 공공의료원들은 전액 국가나 지방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주민들로부터 진료비를 받아가며 운영해야 하며, 쥐꼬리만큼 아주 조금 지원을 받기 때문에 더 힘들게 운영되고 있다.

국가의 전폭 지원과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외국의 공공병원을 우리는 왜 못 만들어낼까? 거기에는 앞서 칼럼에서 썼듯이 대부분의 의료 인프라가 민영화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이 큰 영향을 미쳤고, 둘째는 공공병원을 키우지 못하는 국가나 지방정부의 소홀한 인식이 컸다고 본다.

그렇다고 외국의 공공병원들이 모두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공공의료원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것들을 조명하면서 우리 공공병원들이 발전할 방법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고병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제주도 '탑동 365일 의원'을 공동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보건복지분야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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