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이렇게 어느 순간 우리는 무언가가 되고 무언가가 된 우리를 지켜주고자 또 다른 우리들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고인의 뜻이 저희 유족과 직접 혹은 멀리서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해 주신 분들을 통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2018년 마지막 날, 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유족이 장례식을 치른 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통해 전한 감사인사 글의 한 대목이다. 고인이 얼마나 훌륭한 의사이자 치유자였는지 유명을 달리한 후 뒤늦게 알게 되면서 그저 마음이 먹먹할 뿐이다. 또한 고인의 유족이 우리 사회에 전한 배려 깊은 말들은 더욱 가슴을 울린다.

유족은 혈육을 잃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인 피의자와 진료실의 안전을 방치한 이 사회를 향해 거칠고 사나운 언어로 분노를 쏟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질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분노를 경계하며 고인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속 깊은 언행을 보여줬다. 유족이 전한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는 언행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유족을 통해 고인이 생전에 환자를 대하면서 실천한 인술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하게 된다. 거듭 고 임세원 교수의 명복을 빌며 유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

고 임세원  교수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표지 이미지.
고 임세원  교수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표지 이미지.

무엇보다 유족은 고인이 평소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우리 함께 살아보자'라는 뜻을 지키고자 애썼다. 고 임세원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을 경계하고,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보였다. 특히 의사이기 이전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어봤던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정신질환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애썼고,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로서 갖은 노력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유족은 그런 고인의 뜻을 기리며 이 사건으로 정신질환 환자들이 격리와 배제로 내몰리고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까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고인이 남긴 언어로 자칫 정신질환자를 향한 혐오에 빠질 수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다잡게 했다. 그렇기에 의료진을 위한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촉구하는 유족의 호소는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다. 정신질환자가 차별과 편견없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 의료진이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게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임을 깨닫게 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무언가가 되고 무언가가 된 우리를 지켜주고자 또 다른 우리들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는 유족의 말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또 다른 유족이 있다. 작년 11월 말부터 찬바람이 부는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요구하며 한 달 넘게 릴레이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들이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턱뼈를 깎는 양악수술을 받은 후 발생한 출혈과 의료진의 관리 소홀로 49일간 뇌사 상태로 있다가 사망한 고 권대희 군의 어머니. 지난 2014년 1월 코피가 멈추지 않아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 요추천자 시술을 받던 중 쇼크로 사망한 고 전예강 군의 어머니.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은 후 간호사의 실수로 인한 약화사고 때문에 숨진 딸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7년간 영안실에 딸의 시신을 냉동보관한 채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왔던 아버지.

이들을 비롯한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들은 작년 11월 말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을 위한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요구하며 한 달 넘게 릴레이 1인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이들의 1인 시위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반대하는 의료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까지 더해져 더욱더 쓸쓸하고 힘들다. 이들이 요구하는 건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의사면허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무자격자 대리수술을 예방할 수 있도록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중대한 환자안전사고 보고 의무화를 위해 관련법을 개정해 달라는 것이다.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의료환경이 의료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식으로든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게끔 불합리한 의료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하는 이유다. 

고 임세원 교수 유족이나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들이 요구하는 바는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의료진과 환자가 지금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하고 치료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임세원 교수가 생전에 집필했던 책의 제목처럼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환자는 오로지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병원을 방문해 의사를 찾을 뿐이다. 의사도 환자를 치료하며 생의 한가운데에서 사람과 사람,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치유자의 의지를 다진다. 임 교수가 남긴 '우리 함께 살아보자'라는 말을 기리고 실천해야 하는 건 오롯이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 시작은 '함께 살아보자'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생각을 '말하기'에서 비롯된다. 유족의 바람처럼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한 우리가 무언가가 되고, 그 무언가가 된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또 다른 우리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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