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누구를 위한 영리병원인가

[라포르시안] 제주도가 기어코 영리병원을 허가했다. 도지사가 공론조사 결과를 무시했다거나 무슨 조건을 내걸어 설립을 허가했다거나 하는 ‘과정’ 이야기는 보태지 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언론이 시시콜콜 짚었고, 많은 사람이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제주의 영리병원은 그 자체로도 난제나, 사실 국가적, 전국적 영향이 더 중요하다. 병원이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제주를 넘어 국가적 문제가 되리라 예측한다. 병원이 돈을 많이 벌면, 여러 투자자와 지자체가 우리도 하겠다고 할 것이고, 안 되면 규제가 많아 실패한 것이니 온갖 것을 더 풀어야 한다고 나설 것이다. 자본의 논리와 법칙은 으레 이렇다. 고삐를 풀려는 시장은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리 크지도 않은 제주 영리병원이 국가대표 수준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이런 ‘물꼬 효과’ 때문이다. 아무리 큰 뚝이라도 물꼬가 트이면 순식간에 물길이 넓어지고 둑은 터진다. 병원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줄이려는 것이 제주 영리병원을 말하는 진정한 이유다.  

첫째, 영리병원이 국내 환자를 진료하는 문제. 제주도는 국내 환자 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결과적으로 목적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의료법으로 안 되면 아예 근거 법(제주특별법)을 개정하겠다고 하나(관련 기사 바로 가기), 글쎄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국제 분쟁으로 비화하면 더 불확실하다.

투자자가 국내 환자에 목을 매는 이유는 영리병원과 투자의 본질, 즉 병원 운영과 수익 때문이다. 사람(환자)이 직접 이동해야 하는 의료의 특성 때문에 외국인 방문자만으로 충분히 많은 환자를 확보하기 어렵다. 국내 환자가 병원의 주 수익원이 되어야 하고, 따라서 ‘내수 시장’이 튼튼해야 한다. 이 병원의 개설 과목에 포함된 내과, 가정의학과에 무슨 외국인 환자가 그리 많겠는가.  

허가를 받은 영리병원은 국내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 뻔하다. 앞으로 영리병원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곳 또한 국내 환자를 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목을 맬 것이다. 영리병원이 국내 환자를 볼 수 없으면, 장담하건대 어떤 투자자도 영리병원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둘째, 환자들이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있는지. 제주 영리병원은 외국인 환자만 보는 것으로 시작했고, 한국 건강보험 자격자가 없으니 지금 이 문제는 논의 대상도 아니다. 아직 건강보험 적용 여부는 무풍지대다.

문제는 앞으로, 비보험이지만 국내 환자를 볼 수 있게 되고, 그러고도 영리병원 운영이 썩 좋지 않은 경우다. 이 병원이 얼마나 많은 환자를 유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않고 (훨씬 비싼 비용을 물면서) 그저 그런 정도의 병원을 이용할 환자가 얼마나 될까? 한국에서 건강보험 없이 자부담으로만 병원을 운영할 수 있으려면, 백 퍼센트가 비싼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많은 환자가 찾아오려면, 그냥 좋은 병원과 의사, 진료로는 어림도 없다.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할 정도로 천하의 명의와 어디에도 없는 진료가 아니면 안 된다. 지금 구조에서는 99.9%의 병원과 의사가 국민건강보험 안에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결국 어떤 영리병원이라도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법과 규정이 그렇게 되게, 모든 힘과 능력을 동원할 것이다. 형평성의 원칙을 들먹이거나 외국 사례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 국내와 국제 소송과 무역 분쟁을 피할 까닭이 없다. 이렇게 되면 기존 비영리 병원도 영리병원이 되겠다고 나설 것이다.   

셋째, 그래서 결국, 영리병원이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 제주도가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일부 주민이 찬성하는 데에도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리병원이 실제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앞서 말한 첫째와 둘째 문제와 밀접하다. 국내 환자도 진료하고 건강보험 혜택까지 누릴 수 있으면, 혹시 병원 경영이 잘 되고 수익도 날지 모르겠다.

수익이 난다고 하더라도 남들처럼 해서는 영리 논리를 충족할 수 없다. 영리병원에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를 적용해도, 영리병원(들)이 보통 한국의 비영리병원처럼 운영해서는 ‘충분히 많은’ 이익을 남기기 어렵다. 투자자가 원하는 대로, 예를 들어 은행 이자보다 더 많은 수익을 회수하려면?

영리의 기술은 실로 간단한 원리에 기초해 있으니, 매출과 수익을 늘리고 비용은 줄여야 한다. 고가에다 과잉 진료가 필연이고, 모든 수단을 써서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비싼 검사와 장비를 낭비하거나, 사람과 재료를 덜 쓰는 이유다.  

그렇게 해서 남긴 돈은 투자자에게 돌아가고, 배당과 송금 형태로 외부로 나간다. 비영리 병원처럼 의료시설 확충, 인건비, 연구비 등으로 내부 투자, 재투자에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병원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영리병원의 특성이자 목표다.

한 가지 덧붙여, 경제와 짝을 이루는 것이 영리병원이 의료 (서비스)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황당하다. 투자를 유치해 병원과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구체적 내용이 없고 결과에 이르는 논리 구조도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질 향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를 위한 진짜 투자가 무엇인지, 영리병원은 답할 수 없다.

백 걸음을 양보해 (옛날식) 경제가 중요하다 해도 영리병원은 답이 되기 어렵다. 일자리가 몇 개 늘어난다 해서, 고가, 과잉, 과다 진료와 수입으로 국내총생산이 일부 늘어난다 해서, 이를 진짜 경제라 할 수 있을까? 특정 병원이 직원 수를 늘리고 돈을 더 많이 벌며 수익을 남길 수 있어도,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양과 질, 어느 쪽을 봐도 ‘비정상적’ 사례 이상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정책은 정치를 통해 나아가는 법,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제주도 영리병원이 ‘책임 떠넘기기’의 정치 안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지금 결정권을 가진 관료와 정치인들은 16년이나 끌었으니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라고 과거로 책임을 미룬다(과거사, 경로 의존의 정치). 도지사는 1천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각오해야 허가를 철회할 수 있다고 불가피성을 주장한다(비용과 경제, 위협의 정치). 그뿐인가, 제주도와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유권해석으로 내국인 환자 진료를 막을 수 있다는데, 이는 최종 책임은 사법 심판에 미룬다는 표현이다(행정과 사법의 정치). 여당과 중앙정부가 지방정부가 한 일 또는 할 일이라면서 뒷짐을 지는 것도 익숙한 면피 방식(지방분권의 정치).

지금 제주도와 도지사, 그리고 중앙정부(보건복지부)는 다시 또 하나의 정치, 미래로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조금 지나면 책임자가 곧 바뀌고, 그 다음에는 다른 맥락에서 다른 사람이 대처하리라 기대하는 태도다. 미래에 대한 약속은 공허하다. 앞으로 공공의료가 훼손되면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하지만, 내일 바로 결과가 나올 일도 아니고 3년, 5년 후에 그가 무슨 수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개인은 책임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사회적, 국가적으로는 문제가 더 복잡하고 어려워질 것이다. 책임 떠넘기기를 중지하고, 차라리 지금 결단하는 것이 어떨까? 우리는 중앙과 지방 정부가 어느 정도 값을 치르더라도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판단한다. 지금 행정, 법률(소송), 외교(대외관계), 경제(배상, 일자리) 비용을 물어야 오히려 미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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