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간호정책 선포식에 정치인 발길 쇄도...간협 정치력 발휘?
간호사 노동환경 제도개선 제자리..."간협 제역할 못해" 불만 높아

[라포르시안] 지난 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대한간호협회 주최로 '2018 간호정책 선포식'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인 장충체육관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간호대학 학생과 간호사로 가득 메워졌다.

게다가 여야 각 정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이 행사에 참석한 국회의원만 6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체 간호정책 선포식이 뭐길래 이렇게 많은 정치인이 행사장을 찾는 걸까.

간호협회는 매년 이맘때쯤 간호정책 선포식을 열어왔다. 이 행사는 국민 건강증진 및 간호의 성공적 미래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지난 2009년부터 시작했다. 매년 핵심 슬로건을 내걸고 그에 따른 정책과제를 선포하는 식이다.

2016년에는 '행복한 간호사, 행복한 국민'을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2017년에는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간호사 수급 불균형 해소'가 슬로건이었다. 올해는 `대한민국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간호사가 주도하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정했다.

간협은 매해 열리는 간호정책 선포식에 정치인을 초청해 단체의 정치력을 과시했다. 실제로 의사단체가 개최하는 행사와 비교해봐도 간협이 추최하는 행사에는 정치인의 참석률이 높은 편이다.

현 신경림 간협 회장이 19대 국회의원 출신이란 점 때문에 올해 행사에는 예년보다 훨씬 더 많은 여야 국회의원이 참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간호정책 선포식에서 제시한 8대 중점 정책과제로는 ▲국민 중심으로의 보건의료체계 혁신, 간호법 제정으로 실현 ▲간호정책의 혁신과 변화를 주도할 정부 내 간호전담부서 설치 ▲장기근속 간호사 확보, 간호사의 8시간 노동 준수로 실현 ▲간호 중심의 입원료 수가체계, 상대가치점수 개편으로 실현 ▲대한간호협회 지역 간호조직으로 커뮤니티케어의 실현 ▲고령사회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방문간호 중심 통합재가서비스로 실현 ▲간호직 전담공무원 제도, 지역보건법 개정으로 실현 ▲전문간호사 업무 법제화로 간호 전문직 위상 제고 등이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선포식에 참여한 많은 국회의원이 축사에서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이 이뤄지게끔 돕겠다"고 했다.

화려한 간호정책 선포식 행사처럼 의료현장 간호사들의 행복감은 높아졌을까, 간호사 수급 불균형은 조금이나마 해소됐을까.

현장의 간호사들은 간호업무가 나아진다는 걸 거의 체감하지 못한다.

여전히 만성적인 간호인력난으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태움'은 여전하다. 살인적인 업무강도와 열악한 처우 때문에 병원을 그만두거나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는 간호사는 줄지 않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활동하지 않는 유휴 간호인력이 약 20만명에 달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간호사 면허소지자 수는 2017년 기준으로 총 37만4,990명에 달하지만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인원은 18만6,000여명으로 전제 면허소지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상황에서 한 명의 간호사가 선진국에 비해 3-4배 많은 환자를 담당하면서 불완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자신의 업무에서 보람을 찾지 못하는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나거나 떠날 마음을 품고 있다. 의료현장의 많은 간호사들이 사직서를 품고 산다고 한다.

정부가 간호인력 부족에 대응하는 방법은 신규 간호사 배출 확대다. 간호대학 입학정원을 늘려서 간호인력 공급을 확대하면 문제가 해소될 것이란 단순한 생각이다.

이런 대응은 오히려 간호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많은 병원들이 경력직 간호사가 떠난 자리를 실무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신규 간호사로 대체하고 있으며, 이는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열악한 처우에 견디다 못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일도 벌어지고 있다. 대형병원은 '대기간호사제도'를 통해 채용 갑질을 벌이고, 병원내 간호사의 인권유린과 각종 갑질이 끊이질 않는다.

어제(1일) 열린 간호정책 선포식은 참석한 국회의원이 너무 많아 인사말에만 몇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정치력이 대단한 간협이 있음에도 왜 간호현장의 많은 문제는 개선되지 않는걸까.

일선 의료현장의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간호협회가 회비는 꼬박꼬박 걷어가면서 간호사를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불만의 목소리와 함께 협회 조직을 혁신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페이스북의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는 "정부가 병원의 간호인력 부족 해소 방안으로 처우개선과 근본적인 의료인력 공급구조 개선이 아니라 신규 간호사 배출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간호협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간호사가 병원을 상대로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싸울 때 간협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온다.

열악한 간호업무 환경이 나아지리란 희망을 보지 못한 간호사들은 하나둘 의료현장을 떠난다.

외과중환자실 간호사로 20년 넘게 근무했던 김현아 씨는 올해 펴낸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라는 책을 통해 "간호사의 일은 아름다웠지만 슬픈 자괴감으로 가득한 직업이었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이라고 했다.

수십 명의 국회의원이 서로 얼굴을 내비치려고 찾아오며 대성황을 이룬 간호정책 선포식 현장. 혼자서 수십명의 환자를 감당하며 주사 놓고, 환자 이송하고, 비품 챙기고, 병원내 각종 행사에 동원되며 '백의의 전사'처럼 싸우는 의료현장의 간호사들. 두 장면이 서글프게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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