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저비용 구조 속에서 의료인력 노동력 갈아 넣어 유지..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우려

[라포르시안] 겉으로 보기에 한국의 의료체계는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돌아간다. 대형병원들은 끊임없이 병상을 확충하면서 몸집을 키워가고 있으며, 국민의 건강수준을 나타내는 기대수명이나 영아사망률 같은 각종 지표는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한국 의료체계는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 병상과 고가 의료장비는 넘치고, 국민의 외래진료 횟수는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나온 'OECD 보건통계 2018'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3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적었다. 임상간호사 수는 6.8명으로 OECD 평균(9.5명)에 못 미쳤다.

반면 국민 1인당 의사의 외래진료 횟수는 17.0회로 OECD 국가 평균(7.4회)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은 편이다. 병상 수도 인구 1,000명당 12.0병상으로 OECD 평균인 4.7병상보다 2.6배 많고, MRI와 CT 보유대수도 OECD 평균을 웃돌았다.

'최소 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병원 경영의 마술이라도 부리는가 싶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의료인력의 노동력을 갈아 넣는 식이다. 대형병원은 전공의들의 값싼 노동력과 터무니없이 부족한 간호인력의 노동력을 갈아서 몸집을 키웠고,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보는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가 보편화됐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상당히 모순적인 의료자원 분포와 기형적인 의료인력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종합병원급 이상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로 불리는 간호사가 의사의 진료업무를 대체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수술실에서 PA에 밀려나고 있으며, 각종 검사나 수술술기를 배울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국립대병원이 제출한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449명이던 국립대병원 PA는 2017년 776명으로 늘었다. 민간 종합병원에도 PA 인력이 수술실 등 병원내 각종 진료부서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방의 대학병원에서는 흉부외과 등의 외과계열을 중심으로 전공의 기피가 심각한 상황이다. 상당수 지방 국립대병원 중에는 외과계열 진료과에 전공의 정원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예 최근 수년간 지원자가 없어 해당 과의 유지마저 위태롭다.

강원대병원 등 지방 국립대병원 8곳이 국감자료로 제출한 '2018 전공의 정·현원 현황'을 보면 이들 병원에서 병리과, 외과 등 특정 기피과의 전공의 정원 대비 근무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예 흉부외과나 비뇨기과 전공의가 없는 국립대병원도 있다.

간호인력은 또 어떤가. 의료현장에서 활동하지 않는 유휴 간호인력이 약 20만명에 달하고, 간호대학의 입학정원은 지속적으로 확대돼 신규 배출되는 간호사 인력은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들은 만성적인 간호인력난에 시달린다. 살인적인 업무강도와 열악한 처우 때문에 병원을 그만두거나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는 간호사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대책은 늘 간호인력 공급 확대다. 병원들은 경력 간호사가 떠난 자리를 실무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신규 간호사로 메운다. 당연히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환자안전도 위협받게 된다. 심지어 대형병원들은 1년치 채용계획 간호사를 일괄 모집한 후 최종 합격자를 순번을 매겨 대기발령 상태로 묶어두고 결원이 생길 때마다 발령하는 식의 채용 갑질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 의료시스템이 저비용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한국은 적은 수의 의료인력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수준의 급성기 병상과 국민 1인당 가장 많은 외래진료 횟수를 기록하면서도 경상의료비 지출 규모는 GDP 대비 7.7%로 OECD 평균(9.0%)보다 낮다. 저비용 구조에서 의료인력의 엄청난 초과노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의사인력 중 가장 싼 인건비로 주당 100시간 넘게 근무한 전공의, 간호사 1명이 혼자서 수십명의 입원환자를 돌보는 구조,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동네의원.  

저비용 구조와 건강보험 저수가에서 비롯됐다. 의료장비와 시설에 대한 수가에 비해 의료인력이 제공하는 의료행위에 따른 수가 책정은 상당히 박한 구조다.  병원들은 의료인력이 늘 부족한 상태에서 노동력을 쥐어짜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게 기형적인 의료인력 구조 속에서 한국의료가 계속 유지되기는 힘들다. 앞서부터 전공의 수련교육 정상화와 적정 간호인력 확충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일환으로 비급여의 전면 급여 전환과 맞물려 의료계에서는 수가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는 지난 24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 병원들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인력 수준은 가까운 일본의 1/3에 불과하다. 최고 병원이라는 곳도 그렇다"면서 "주 52시간 근무제 등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려면 보건의료 현장에 어마어마한 인력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이 충원되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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