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간호인력 부족 구조적 문제는 외면하고 신규 간호사 배출 확대만 찾아
개별병원 경영 논리에만 맡겨진 적정 인력확충..."국가가 책임지고 나서야"

[라포르시안] "2010년부터 의료기관 인증평가제를 실시하면서 의료인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왜냐면 환자 안전과는 무관한 눈속임 인증제이기 때문"이라며 "의료기관 평가인증을 준비하는 동안 정규 업무시간에 환경 및 물품정리, 간호기록 점검 등을 하느라 직접 환자를 보는 간호 시간이 줄어든다. 인증제 준비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간호사들은 사직 욕구가 상승한다" <A 국립대병원 소속 간호사>

"한국의 간호사 한명이 돌봐야하는 환자가 선진국에 비해 3-4배 많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가고 있다. 그래서 간호사의 70%가 사직을 꿈꾸고 30%는 실제 사직을 하고 있다. 신규 간호사들은 입사후 제대로 트레이닝도 받지 못하고 환자 간호에 투입되면서 매일 매일 입술이 바짝 바짝 타 들어가는 긴장감으로 일하고 있다" <B 사립대병원 소속 간호사>

간호인력 부족 문제는 한국 의료시스템이 안고있는 고질적인 병폐다. 병원마다 적정 간호사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상태에서 불완전한 환자 돌봄을 제공한다.

간호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항상 나오는 대책이 바로 간호사 배출 확대다. 간호사 배출을 늘리면 병원의 간호인력난이 해소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많은 통계가 간호사 배출 확대와 간호인력난 해소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준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간호등급제 실시와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 대형병원 병상 확충 등으로 간호인력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2008년 이후부터 간호대 입학정원을 해마다 대폭 증원했다.

작년에 대한간호협회가 작성한 '통계로 본 우리나라 간호사 배출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간호교육기관 수는 2006년 127개에서 2015년에는 203개로 최근 10년 사이에 무려 76개 대학에 간호학과가 새로 신설됐다. 2015년 기준으로 간호대학 입학 정원은 1만8,869명으로 2008년(1만1,775명)과 비교해 7,094명이 늘었다.

지난 2013년에는 전국 3~4년제 간호대 1학년 재학생이 2만3,000여명 규모로 늘었고, 이에 따라 2017년부터 2만3,000여명에 달하는 신규 간호사배출이 확대됐다.

지난 수년 사이에 간호사 수가 절대적으로 증가했지만 병원의 간호인력난은 그대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이유는 의료현장에서 활동하지 않은 유휴 간호인력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2016년 12월 통계개발원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보고서 본문에서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조성현 교수가 집필한 간호인력 부문의 현황을 보면 국내 의료기관의 간호인력 현황과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인력은 5.2명으로 OECD 34개 국가 중 29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인구 대비 간호인력이 가장 많은 스위스 17.4명과 비교하면 약 1/3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인구 대비 병상수는 2위, MRI수와 CT수는 각각 4위와 6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보건의료 자원 분배가 인력보다는 시설과 장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현행 건강보험 보상체계가 '사람 값'에는 박하고 '기계 값'에는 후한 방식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일자리 창출을 억제하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보고서를 보면 간호사 면허자 중 실제 보건의료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활동 간호사(practicing nurses)는 2004년 8만 9,607명에서 2014년 14만 7,210명으로 64.3% 증가했다. 그러나 전체 간호사 면허자 중 활동 간호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44.4%에서 2014년 45.6%로 지난 10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다.

간호사 배출을 확대해도 실제로 임상현장에서 활동하는 인력 비율은 항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간호사 면허자 중 활동 간호사 비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높은 이직률을 꼽을 수 있다. 병원간호사회가 2015년 실시한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 결과, 2014년 채용한 신입 간호사 1만 3,779명 중 33.5%가 2014년 12월 기준으로 병원을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금처럼 무조건 간호사 배출을 확대한다고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다.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상태에서 벌어지는 살인적인 업무강도와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으면 간호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현장 간호사들의 지적이다.

더 많은 신규 간호사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자? 

무엇보다 병원이 적정 간호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수가체계를 개선하고, 국가가 적정 의료인력공급을 책임지는 구조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정부는 적정 간호인력 확충 문제를 민간병원의 경영적인 판단에 맡기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대책이라고 내놓는 게 항상 간호사 인력의 공급 확대다.

복지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대책’을 보면 이 같은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복지부가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바로 오는 2022년까지 신규간호사 인력 10만명을 추가로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경력단절 후 취업하지 않는 유휴 간호인력이 약 20만명에 달하는 상황임에도 향후 5년간 신규 간호사 10만명 추가로 배출하겠다는 건 간호사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병원의 인력부족 문제를 메우겠다는 의도와 다름이 없다.

최근에는 간호학과의 학사 편입학 학생 비율을 현행 입학정원의 10%에서 30%까지 2023년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교육부는 "간호사 배출 확대로 부족한 간호 인력 문제를 해소하고 질 높은 간호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병원이 적정 간호인력을 확충하기 힘든 수가체계의 문제라든지 간호사의 이직률이 높고, 대형병원과 수도권으로 쏠림이 심화되는 구조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오로지 신규간호사 배출 확대로 인력공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신규 간호사 배출을 확대하면 병원 입장에서는 경력직 간호사가 빠진 자리를 신규 간호사로 메워 인건비 부담이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간호업무의 특성을 고려할 때 경력직이 빠진 자리를 신규 간호사로 메울 경우 의료서비스 질을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환자안전도 위협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병원들은 신규 간호사를 대거 채용한 후 장시간 발령대기 상태를 놓고 기존 인력이 빠져나가면 대기간호사 중에서 발령을 하는 기형적인 채용 갑질도 벌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정숙 의원(민주평화당)이 지난 열린 10일 보건복지부 국감에서 대형병원들이 1년치 채용계획 간호사를 일괄 모집한 후 최종 합격자를 순번을 매겨 대기발령 상태로 묶어두고 필요시 충원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장정숙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민간 상급종합병원 2곳과 국립대병원 8곳의 지난해 신규간호사 채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곳 모두 대기간호사를 채용해 4~5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발령대기 상태로 묶어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병원은 신규 간호사를 대거 채용한 후 시차를 두고 결원이 생길 때마다 추가로 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 의원은 "대기발령 상태의 임용대기자가 많기 때문에 한 두명이 그만둔다고 해도 상급자나 병원 측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에 '힘들고 못버티겠으면 나가라'는 식의 대우가 계속된다는 게 간호계 내부의 전언"이라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간호인력 공급 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간호사 배출을 확대하도 인력부족 문제는 해소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간호사들은 좀 더 처우가 좋은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이직하거나 아예 의료현장을 떠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많은 간호사가 환자의 건강을 돌보고 생명을 살린다는 보람을 품고 사는 게 아니라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병원을 그만두기 위한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고 한다. 

보건의료체계와 건강보험제도의 구조적 문제에서 초래된 간호인력 부족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간호사들이 의료전문가로서 비전과 꿈을 갖지 못하고 번아웃(Burnout syndrome)과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7일 전국보건의료노조 주최로 열린 '환자 안전병원⋅노동존중 일터 만들기 보건의료노동자 대행진'에서 한 지방 국립대병원에 근무하는 5년차 간호사는 "저의 꿈은 사람답게 살고 싶어 병원에서 사직하는 것이다. 이제 더는 사람이 죽어가는 병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병원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환자도 직원도 아프지 않는 병원이 되려면 인력 충분해야 한다. 더 이상 병원의 인력문제를 개별 병원에 맡겨서는 안되고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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