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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작 10%도 안 되는 공공병원, 그것마저…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3.04.0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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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는 지금 벚꽃이 흐드러졌다. 길가마다 벚꽃이 만개해 꽃그늘이 촘촘하다. 만개한 벚꽃은 햇살조차 무겁다. 슬쩍 부는 바람에도 힘없이 툭 진다. 발길 닿는 곳마다 벚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이 깨끔하다. 쌓인 벚꽃은 눈 같다. 발걸음 옮기는 곳마다 눈처럼 밟힌다. 남도의 작은 도시 진주에도 눈길 가늘 곳마다 벚꽃이다. 그러나 진주의료원 주변에는 벚꽃 구경이 힘들다. 휑한 벌판에 세워진 병원 건물이 생뚱맞다. 막 새로 지은 아파트와 골조공사가 한창인 시멘트 구조물이 을씨년스럽다.

최근 한 달 사이 진주의료원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103년 의료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2월 말 진주의료원 운영 주체인 경남도가 더 이상 운영이 힘들어 아예 문을 닫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탓이다. 지난해 12월 20일 취임한 경남도지사의 결단이다. 폐업을 결정한 이유는 매년 40~60억원의 적자가 쌓이면서 누적적자가 현재 279억원에 달해 더 이상 혈세를 지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 선언 이후 경남도의 후속 조치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연일 진주의료원의 경영 부실과 노조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지난달 7일에는 진주의료원 폐업을 위한 조례개정안을 입법예고하더니 열흘 뒤에는 휴업을 예고했다. 그리고 지난 3일에는 한 달 간 휴업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뿐이랴. 입원환자들을 상대로 집요하리마치 끊임없이 퇴원과 전원을 종용하고, 의료진들에게 퇴사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일사분란하게 추진됐다. 새누리당 전 대표를 지낸 홍준표 도지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산하 공공병원은 요동을 쳤다. 지난 2월 26일 폐업 발표 당시 200여명이 넘던 입원환자는 이달 1일 현재 50여명으로 남았고, 16명이던 의사 수는 반으로 줄었다. 그마저 언제 떠날지 모른다. 병실은 덩그렇게 비었다. 외래환자 대기실은 적막하다. 진주의료원 주위의 을씨년스런 풍경만큼 내부 모습도 휑하다. ‘강성노조의 해방구’라는 홍 지사의 말과 달리 너무 쉽게 무너졌다.  

경남도와 달리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대응은 놀라울 만큼 굼떴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선언한지 거의 한 달 만인 지난달 25일 진영 복지부장관이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만나 폐업 결정을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지난 1일 복지부 공공의료과 담당자들이 처음으로 진주의료원을 방문했다. 폐업 논란이 불거지고 한 달이 훨씬 지나서였다.

복지부가 딱 하나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은 지난달 12일 각 시도에 내려 보낸 지방의료원 공공보건의료프로그램 수행대상기관 선정기준에서 진주의료원은 제외시킨 조치였다. 경남도가 폐업을 결정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복지부마저 진주의료원 폐업에 공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복지부와 경남도의 이런 태도는 공공병원에 대한 척박한 인식수준을 그대로 드러낸다. 진주의료원이 폐업하더라도 당장 해당 지역에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그 자리를 민간의료기관이 대신할 것이다. 존재감을 잃어버린 공공병원의 현실이다. 이미 진주 지역에는 민간의료기관이 차고 넘친다. 진주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공급체계에서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채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 민간이 설립한 의료기관이다.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에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일관해온 덕분이다.

공공의료, 혹은 공공병원은 이제 알맹이는 없고 빈껍데기와 형식만 남았다. 설립 주체인 정부의 의지가 없었기에 예고된 일이었다. 당초 공공의료의 목표는 모든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적정진료를 통한 공익성 추구가 돼야 했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에게 값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란 틀 속에 갇혔다. 민간의료 중심의 의료공급체계 속에서 정부가 국민들에게 선심 쓰듯 공공병원을 세운 탓이다. 그나마 지금은 그런 기능조차 박탈당하고 오로지 효율성에 떠밀려 민간의료기관과 의미 없는 경쟁 구도로 점점 내몰린다. 그래서 공공의료(병원)란 말은 정치적 구호마냥 공허하게 들린다.

며칠 전, 복지부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에 대한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국민행복의료기획단'이란 걸 출범시켰다. 국민행복의료라니, 그 이름 참 징글맞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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