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화 문제 다룬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발간

[라포르시안] '의료화(medicalization)'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이 질병이나 질환 같은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의료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코올의존증, 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출산, 완경, 우울증, 월경전 증후군(PMS), 수면장애, 노화, 비만, 불임, 학습장애, 발기부전, 성형수술 등을 꼽는다. 의료화로 인해 이미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의 거의 모든 과정이 의학의 관리 영역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삶의 의료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70년대 이후부터 30여년 간의 의료화 과정을 추적하고 분석한 책이 나왔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후마니타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사회학자인 피터 콘래드의 30년에 걸친 '의료화' 추적기다.

이미 의료화는 전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이고 파급력이 있는 중대한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의료화한 의학적 진단의 타당성이 아니라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배경과 변화의 맥락을 살피는 데 초점을 맞췄다. 

1부 ‘개념’편에서는 의료화의 배경과 변화 맥락들을 동시대 여러 연구자의 논의를 신중히 검토하며 폭넓게 살폈고, 2부 ‘사례들’에서는 남성 발기부전과 탈모, 아동 및 성인 ADHD, 항노화와 성형수술, 경기력 향상과 같은 인간 증강, 동성애 등 의료화 및 탈의료화의 주요 사례를 자세히 분석했다. 3부 ‘한계와 결과’에서는 의료화를 이끄는 주체들과 동력의 변화, 그리고 의료화가 문화 및 사회뿐만 아니라 의료 및 제약 산업 전반, 환자나 소비자에게 끼칠 영향을 제시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의료화 사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저자는 의료화와 젠더가 가지는 관계에 주목했다. 의료화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갱년기, 발기부전, 탈모 등의 사례처럼 남성에서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탈모의 의료화는 임상시험에서 얻은 우연한 결과에 열광한 소비자들, 의사들의 광범위한 ‘허가외사용(오프라벨 처방)’, 제약 회사의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 등 여러 주체가 상호작용으로 이뤄졌다.

1960년대 고혈압 치료제로 승인받은 로니텐(로게인)이 그 대표적 예다. 로니텐은 임상시험 과정에서 한 환자의 정수리에 머리가 새로 자라나는 효능을 보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임상시험 자원자들이 몰려들었고, 의사들은 1980년대 중반 탈모 치료제 승인이 나기도 전에 허가외사용을 이용해 수많은 탈모 환자들에게 로니텐을 처방했다.

1988년 정식으로 FDA의 승인을 받자 제약회사는 로니텐의 이름을 로게인으로 바꿔 판매를 시작했고, 1996년에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허가 사항을 변경받으면서 다양한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를 제작해 내보냈다.

남성의 건강 영역에서 의료화가 본질적으로 남성성과 젊음의 상징을 잃지 않으려 하는 남성의 욕망에 있음을 주목했다. 신체 기능이 떨어질수록 자신의 남성성 또한 위태로워진다고 느끼는 남성들은 스스로 신체 능력을 보존하고 회복하기 위한 의학적 해법을 찾는다. 결국 남성 문제의 의료화는 의료 및 제약 산업이 추동하고, 소비자 대상 광고가 이를 가속화하기는 했지만 남성적 정체성이나 능력, 전형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대한 남성 자신의 우려 때문에 촉진됐다고 분석했다. 

의료화는 특히 정신건강 영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눈여겨볼 만한 한국의 의료화 사례로 ADHD를 들었다. 한국에서 ADHD 관련 정신의학과 진료 건수가 2002년 1만 6,266건에서 2011년 5만 6,951건으로 10년 사이 350% 증가한 점을 언급하며 애초에 아동의 ‘성격’일 수도 있었던 것이 ‘질병’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 또한 주로 아동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장애로 여겨졌던 과잉행동이 성인 ADHD로 확대된 과정을 다양한 사례와 인용을 통해 들춰냈다.

과잉행동 진단이 성인까지 확대된 것은 질병의 생의학적 원인에 대한 과학적 발견 때문일까. 저자는 향정신성의약품의 출현과 정신약물학, ADHD와 관련 있는 것으로 가정된 유전자, 관리 의료에 따른 비용 편익 중심의 약물치료와 같은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많은 성인들이 의사를 찾아가 자신을 치료하도록 요구하게 된 데 따른 것이라고 봤다.

의료화의 반대 현상인 ‘탈의료화’도 나타난다. 자위행위나 동성애처럼 기존에는 질병으로 분류됐다가 이제는 의료인의 개입이 필요하지(혹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된 사례도 있다. 그중에서도 동성애는 가장 성공적인 탈의료화의 사례로 꼽힌다.

남성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개념이 등장하고, 이것이 프로이트와 프로이트의 제자들에 의해 치료 불가능한 ‘변형’에서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재정의된 과정,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이나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에 의해 의료화되는 과정, 이후에 다시 동성애 운동 진영이 게이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DSM에 수록된 정신의학적 정의와 치료법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벌이면서 이루어진 탈의료화의 과정을 책 속에 상세하게 담았다.

저자는 동성애는 탈의료화되었지만 오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동성 결혼과 군 복무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차별은 계속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정치적 지형이 변하면 재의료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동성애가 유전학의 영향 아래 놓이는 것에 대한 활동가들의 반응은 뒤섞여 있었다. 일부는 동성애 유전자 가설을 동성애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증거로 보았으며, 따라서 동성애 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보았다. 또 다른 이들은 유전적 치료, 재의료화, 심지어는 잠재적 동성애자인 태아에 대한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아닐까 우려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의료화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학적 발견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느냐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게이 유전자”의 발견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모두 탈의료화를 유지하거나 재의료화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지점들이다. 즉 과학적 증거 자체가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237쪽)

그렇다면 의료화로 인한 사회적 결과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이미 외모를 비롯해 행동, 생활 방식, 한계, 삶의 모든 과정이 의료화 되는 추세에 있다.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일어나야 하는 일을 설명해야 하는 의학의 권위는 의학적 관리를 정당화하며,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의료전문가의 공식적 지배와 보이지 않는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의학적 감시는 점점 더 많은 수의 개인을, 심지어 현재 아프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의학적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간주돼, 위험 요인의 변화를 감시받는다. (…) 이제 의학적 시선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병에 걸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로까지 확대됐다.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 유전자가 발견되면, 이 같은 유전자 정보는 잠재적으로 병에 걸릴 사람들의 규모를 확대하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개인들은 이제 잠재적 질병이나 장애의 발현에 대해 감시받게 된다. (304, 305쪽)

저자는 우려할 만한 의료화의 사회적 결과로 ▲모든 것의 병리화 ▲정상성의 의학적 정의 ▲의학적 사회통제의 확대 ▲사회적 맥락보다는 개인적 문제로 ▲소비자와 의료시장의 등장 등을 꼽았다.

가장 우려스러운 결과로 모든 것의 병리화를 지목했다. 모든 인간적 차이를 병리적으로 접근하며 진단할 수 있는 질병으로 간주하고, 의학적 개입 및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우려를 표명한다.

지나친 과잉 의료화가 '인간의 다양성을 병리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학습 능력의 차이는 ADHD나 학습장애가 되고, 성욕이나 성기능의 차이는 성기능장애가 되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행동에는 무조건 ‘중독’ 딱지가 붙고, 개개인의 성격이나 외모 차이에는 사회공포증이나 특발성 저신장증 같은 진단이 내려지고, 가슴 크기나 작은 키, 대머리를 의학적 증강이 필요한 문제로 바꾸어놓는 일처럼 말이다.

과잉 의료화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초래된 건강상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그 책임을 전가한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개인이나 ADHD가 있는 산만한 아동의 문제를 다룰 때 알코올 남용을 부추기는 사회환경이나 아이들에게 문제를 초래하는 비교육적인 교육 시스템에 개입하는 성가신 방법보다는 알코올의존증이나 ADHD 환자로 분류해 치료하는 방식을 택하는게 더 쉬운 것처럼.

또한 의료화는 개인의 안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힘을 불투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울증의 신경생물학적 특성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항우울제를 이용해 치료하는 쪽에만 관심을 갖고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사회적 환경은 방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의료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문제에 대해 더욱 개인화된 접근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 책의 맨 마지막 문장을 채웠다.  

“의료화는 사회조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 탈모, ADHD, 갱년기의 사회학
피터 콘래드 지음 | 정준호 옮김 | 후마니타스 |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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