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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느 고등학생의 죽음을 보며…<이현석의 진료실 단상>

건강의 의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가 1948년에 ‘건강이란 질병이나 손상이 없을 뿐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completely well-being) 상태를 말한다’와 역시 WHO가 1986년 오타와에서 발표한 ‘건강이란 신체적 능력과 사회적 인적 자원을 강조하는 하나의 적극적인 개념으로서 생활의 목표이기보다는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자원(resource)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가 가장 보편 타당한 정의로 폭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느닷없이 건강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살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다. 모든 사람 하나하나의 생명이 소중하기에 자살에 대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진다. 특히 밝고 힘차게 자라서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 학생들이 동료와의 갈등 혹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현실은 우리 기성 세대들의 지나친 성과 지상주의적인 문화가 빚어낸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착잡해진다.

최근에도 중학교 성적이 상위 2% 안에 들어야 입학할 수 있는 자율형 사립고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전교 1등을 하기도 한 뛰어난 학생이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는데 이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죄송해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해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그전에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학생들의 죽음이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했었다. 다시 말해서 학교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서 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은 물론 외형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학생조차도 내면에는 심각한 갈등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 받는 카이스트에서도 이미 성인의 나이인 학생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것을 보고 당시 필자는 한 일간지 기고 글을 통해 “대학은 현재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사회의 미래를 위한 인재 양성이 근본적인 목표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엘리트를 뽑아 놓고 끊임없이 무한 경쟁과 패배의식을 심어주는 것을 개혁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개성과 잠재력을 끌어내어 극대화 시키는 것이 대학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또 “최고의 대학이라고 자부하면서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지 않으면 그들이 노는 것에만 열중할 것이라고 믿을 정도로 자기 제자에 대한 믿음도 자신감도 없단 말인가. 이런 교육제도에서 인생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의 학생들에게 인생을 논하고 철학을 사색하고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질타하기도 했었다.

지금, 의료계에는 산적한 현안들이 쌓여 있지만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있다면 장기적으로 이 사회의 특히,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의사협회나 해당 학회들이 주도하고 정부와 민간 단체의 도움을 얻어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의 전화를 운용하거나, 각 학교를 순회하면서 강연을 하고 청소년 카운셀러를 양성하는 기관을 만드는 것과 같은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미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패자 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서 그들의 희망이 좌절되지 않게 하는 것이 기성 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의사들이 국민 건강을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묵묵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많이 쌓여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확대해보면 이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진료실 밖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료실이라는 공간에 우리를 가둬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방하는데 의사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의료 단체들이 같이 고민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현석은?

1986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4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수료 및 전문의1998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06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2011년 광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의료커뮤니케이션 박사2012년 제1회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엔자임 학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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