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서리풀 논평] 바이오와 4차 산업혁명, 희망인가 거품인가? (1)

[라포르시안] 이른바 ‘혁신성장’을 이끌 첨병으로 의료기기 규제개혁을 표방했으니, 다음 차례는 필시 ‘바이오’라 예측한다. 지난 정권과 차별성을 변명하느라 의료기기를 꺼낸 듯싶으나, 기기, 제약, 의료 서비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긴밀하게 연결된 체계를 부질없이 구분했으니, 호시탐탐 산업화와 영리의 기회를 노리는 다른 영역이 손 놓고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 바이오는 유행을 넘어 광풍이다. 주식시장에서 시작해 바이오 제약, 바이오 생명, 바이오 산업혁명 등 ‘바이오’라는 외래어 접두사가 붙지 않으면 후진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바이오(bio)라는 이 외래어 치장이 (‘생명’이라는 조금 고리타분한 말과 달리) 문화적 권력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이오는 가상의 경제 단계를 넘어 이미 실물 경제다. 거품이긴 하지만. 숱한 회사들의 이름, 주식 시장에서 ‘대장주’로 불리는 상장기업들, 그 많은 각종 협회를 넘어 아예 ‘한국바이오협회’라는 곳도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입된 대학들이 표방한 바이오OO학과 운운은 또 어떤가? 국가 세금에서 지원하는 국가 연구개발비도 바이오 경제를 창출하는 한 가지 원천이다.   

이런 바이오 바람은 경제성장과 혁신, 지식기반 경제, ‘성장동력’을 연결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다. 현 정부 들어 혁신성장을 내세우고 그 핵심 개념의 하나로 4차 산업혁명을 들고나온 것이 기름을 부은 꼴이다. 바이오 또한 정치-경제-문화의 앙상블인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이라는 상징이자 동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의료기기, 바이오, 의료 서비스, 그 무엇이든,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을 보고 판단하는 우리의 관점은 일관된다. 정부 정책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활동과 실천의 목표는 분명하니, 사회 전체, 모든 사람이 골고루 편익과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말고 혁신의 다른 목표와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우리는 바이오와 이와 연관된 성장 패러다임에 대해 건강·생명 효과와 경제 효과라는 두 가지 효과를 따지고자 한다. 경제 효과는 다음 주에 다루기로 하고, 이번 주는 첫째 질문에 집중할 차례다.

바이오와 4차 산업혁명에 기반을 둔 혁신성장론과 규제 개혁은 생명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 또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

먼저, 바이오라고 따로 불렀지만, 의료기기나 의료 서비스, 제약도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확하게 해둔다. 정책과 행정, 지식, 법률 따위는 나뉘지만, 현실과 실제에서는 그런 구분이 의미 없을 만큼 서로 긴밀하다. 경제적으로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되고, 가치와 윤리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 삶의 질로 수렴한다.

첫 번째 효과로 생명과 건강, 삶의 질을 묻는 것은 모든 인간 활동을 판단하는 데 결과와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과 행복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그 많은 국가 투자가, 그 많은 사람의 밤을 잊은 노력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 수고로운 논의에는 무슨 보람이 있을 것인가?

경제가 독점한 ‘혁신’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부터. 건강과 생명,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의료기기와 바이오 혁신이 있다. 예를 들어 혁신적 결핵치료제가 그렇다. 내성 때문에 큰 어려움에 봉착했던 결핵 치료에 몇 년 전 베다퀼린과 델라마니드라는 신약이 등장했다. 거의 50년(!) 만에 결핵 치료의 새로운 희망을 만든 중요한 혁신이자 진보다. 

그야말로 혁신을 기다리는 기기와 기술, 약, 바이오 제품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슈퍼버그’에 대처하는 항생물질은 인류 전체의 생존과 무관하지 않은 혁신 대상이다. 그보다는 규모와 중요성이 덜하지만(한국에서는 더하다). 모기가 매개하는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마찬가지다.

작은 혁신도 있지 않느냐고? 맞다. 꼭 ‘블록버스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쉽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진단기기, 덜 고통스럽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 효과는 비슷하면서도 비용을 크게 줄인 개량, 당연히 혁신이다.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혁신에 값하는지가 중요하다. 지금 혁신 또는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모든 기술과 산업, 연구개발은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가? 우리는 모든 혁신이 기준 미달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당장은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이럴 가능성이 있는 혁신에 대해서는 다음 결과를 기다릴 수 있다. 기반이 되는 기초 연구와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결과, 효용, 가치를 잊거나 무시하는, 그런 의미에서 ‘물신화’한 기기와 바이오를 혁신이란 이름으로 치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성장동력과 산업화 논리와 연결되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경제 논리를 강조할수록 생명과 건강, 삶의 질은 ‘몸=바이오’에서 일탈하는 역설.

현실은 어떤가? 예를 들어 유전자를 앞세운 그 많은 혁신과 규제 완화는 도대체 어떤 가치를 위한 것인가? 대표적인 논리 한 가지를 소개한다. 바이오의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어떤 인터뷰에서 따온 것으로, 인용 정보는 굳이 밝히지 않는다.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TC)'는 국내 바이오 기업의 발전을 막는 대표적인 규제 분야다.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국내에서는 질병 유전자 검사는 DTC로 할 수 없어 산업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규제에 막혀 이도 저도 못하면 3~5년 내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국내 시장으로 치고 들어올 것이다.

DTC 유전자 검사는 의료 전문가가 처방하는 유전자 검사와 달리 소비자가 직접 검사할 수 있는 방식의 새로운 상품이다. 산업은 이런 DTC의 건강·생명 효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시장만 주장한다. DTC 방식의 유전자 검사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조상과 친척 찾기 용도라는 미국 상황에서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력의료를 비롯한 모바일헬스(mHealth)의 가치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줄기세포가 그렇지만, 인터넷, 휴대전화, 메신저 서비스 등 정보통신 인프라도 한국에서는 토대와 경쟁력이라는 ‘신화’에 묶여 있다. 모바일헬스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당연지사, 앞으로도 상당 기간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번에도 문제는 성과로서의 가치와 의미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모바일헬스가 환자와 지역 주민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모바일헬스의 건강과 보건의료 성과는 미미하다. 여러 연구를 종합해도, 환자에 대한 원거리 모니터링, 만성질환자와의 대화와 상담, 행동치료에서 정신요법 보조 등에서 효과가 있을 뿐 다른 편익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관련 논문 바로 가기).

많은 의료기기, 바이오, 보건의료 서비스가 혁신을 주장하지만, 건강과 생명이라는 기준으로 이들 대부분이 혁신적이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똑 부러진 성과가 없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과 생명을 혁신과는 아예 무관한 것으로 보는 경제 논리가 체계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경제가 혁신을 독점하는 현상이 오늘 우리가 보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혁신의, 아니 모든 것의 ‘경제화(economization)’!

혁신을 다시 정의하고 ‘사회적 혁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건강과 생명이 모든 사회적 행위와 실천의 유일한 가치이며, 의료기기, 바이오, 의료 서비스의 혁신도 오로지 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건강과 생명을 훼손하지 않는 전제라면, 경제와 물적 토대가 비약하는 것도 혁신의 중요한 목표이자 가치다. 

한국의 의료기기, 바이오, 제약, 의료 산업이 과연 이런 가치를 지니는지, 다음 주 <논평>은 경제 효과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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