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의료인-의료인 수단으로 한정' 공약과 어긋나...박근혜 정부 때와 비슷한 패턴으로 의료영리화 정책 모색 우려

[라포르시안] 박근혜 정부 4년간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 완화 추진이 끊이질 않았다. 창조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과 부대사업 확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민간기업의 건강관리서비스 추진, 신의료기술평가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이 잇따랐다.

특히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은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였던 '창조경제'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박 대통령은 각종 공개석상에서 틈만나면 원격의료 필요성을 언급했다.

2016년 8월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충남 서산시 소재 서산효담요양원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 출처: 청와대
2016년 8월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충남 서산시 소재 서산효담요양원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 출처: 청와대

박근혜 정부 때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정책을 모색하는 과정을 보면 나름의 짜인 틀이 있었다. <관련 기사: 보이지 않는 ‘원격의료 카르텔’이라도 있나>

우선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한상공회의소 등의 경제계 단체에서 의료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이 필요하다고 제안을 한다. 그러면 기획재정부 등의 경제관련 관련 부처에서 이 안건을 규제개혁 과제로 수립하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관련법 개정 방안을 수립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의료계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추진이 재벌 대기업을 위한 의료영리화 정책이라는 의구심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다 2016년 말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원격의료 활성화를 비롯한 보건의료 분야 규제완화 정책이 특정 병원자본 및 재벌을 위한 특혜 정책이라는 의심이 더해졌다.

그러던 중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격의료 활성화 등의 의료영리화 정책 추진이 동력을 잃고 폐기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공약을 통해 재벌에게 특혜를 주고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저지하겠다고 강조하며 원격의료는 의료인-의료인 사이의 진료 효율화를 위한 수단으로 한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문재인 정부 임기동안에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활성화라는 정책 구호가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지 출처: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중에서
이미지 출처: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중에서

그러나 이 같은 기대가 무색하게 벌써부터 정부 차원의 원격의료 활성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이런 정책 논의 과정이 박근혜 정부 때와 흡사하기까지 하다. 경제계 단체에서 규제완화를 건의하고 경제관련 부처에서 검토하고 주무부처가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을 설파하는 방식이 그대로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15일 기획재정부에 '혁신성장 규제 개혁 과제'를 건의했다. 경총이 건의한 규제 개혁 과제에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 ▲원격의료 규제 개선 ▲의사·간호사 인력 공급 확대 등의 안건이 포함돼 있었다.

경제계 단체의 규제 개혁 과제 건의에 부응이라도 하듯 정부가 규제 혁신에 팔을 걷은 모양새다. 이번에도 역시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핵심 규제 리스트를 선정하고 규제 완화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검토하는 핵심 규제 리스트 중에서 원격의료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관련부처가 나서고 뒤이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나선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박 장관은 의료서비스산업 발전과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취약층의 의료접근성 강화를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필요성의 이유로 들먹였다.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복지부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도서벽지 주민, 군 장병, 원양선박 선원 등 취약계층의 의료복지를 실현하고 공공의료를 보완하기 위해 원격의료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요양시설 입소 노인·장애인·섬주민이 정말로 원격의료 수혜자들일까?>

박능후 장관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필요성을 언급하며 꺼낸 말들은 박근혜 정부 때 복지부가 원격의료 활성을 정책을 추진하며 설파한 내용 그대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9일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의료기기 체험을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KTV 국민방송 영상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9일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의료기기 체험을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KTV 국민방송 영상 갈무리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문재인 정부에서도 앞서 이명박근혜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의료영리화 정책 추진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그런 징후가 곳곳에서 보인다. 

정부가 지난 1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제시한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은 박근혜 정부 때 마련한 의료산업 규제완화 방안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특히 의료기기 개발 이후 시장 진입까지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게끔 신의료기술평가 무력화 하려는 시도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과 똑 닮았다. 특히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원을 불필요한 낭비로 보는 인식은 상당히 우려스렵다.

근본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건 공공의료 인프라가 취약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은 상황에서 신의료기술이나 원격의료 서비스가 과연 노인나 장애인, 도서벽지 주민 등 사회적 취약층의 의료접근성 향상에 기여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인·장애인, 도서·벽지 주민의 상당수는 정보화 소외계층으로 PC와 스마트폰 기반의 원격의료 서비스에 이용에 있어서 경제적-기술적 접근성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를 마치 공공의료 확대인 것처럼 포장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전체 의료기관 병상수 기준으로 10%에도 못 미치는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및 의료전달체계 개선 작업부터 서둘러야 한다. 그런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활성화하면 의료전달체계 왜곡이 심화되고, 의료영리화를 가속화해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층의 의료접근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앞서부터 누누이 지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마저 의료분야를 산업으로만 인식하고, '규제혁신'으로 포장한 의료산업화 정책을 추진하려고 어정쩡하게 발을 내딛는 모양새가 영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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