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문재인 케어 청구서가 날아온다'고 호들갑이다. 내년도 건강보험료율 3.49% 인상을 놓고 일부 보수언론에서 '문재인 케어 청구서'라며 비판에 열을 내고 있다. 지난 2011년 5.9% 인상 이후 동결되거나 1~2%대의 인상률을 기록해온 것에 비하면 최근 8년 만에 가장 높은 인상률이란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이걸 '문재인 케어 청구서'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보험료가 5.9% 인상되던 2011년에는 직장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가 전년도보다 4천 원 이상 올랐다. 그 이후에도 인상률이 동결되던 해를 빼고 최소 1~2천 원 수준의 월평균 보험료 인상이 이뤄졌다. 내년도에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올해보다 평균 3천 원 남짓 인상되는 것을 놓고 문재인 케어 청구서라고 하는 건 정치적인 선전·선동에 가깝다.

비급여의 단계적인 전면 급여화를 통해 오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데 막대한 재정부담이 든다. 오히려 3천 원 남짓 월평균 보험료를 더 내는 수준으로 보장성 강화에 따른 추가 재정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진짜 문제는 지난 40년 넘게 지속해온 건강보험료 저부담과 그에 따른 저급여-저수가 체계다.    

'저부담-저급여-저수가'를 기반으로 한 건강보험은 의료체계를 비틀고 왜곡시켰다. 앞서부터 이대로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끊이질 않는다. 이미 그런 적신호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의료이용의 양극화와 지역 간 의료자원의 불균형, 인구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전에 따른 의료비 급증, 비효율적 의료공급 및 이용체계 등이 한국 의료의 목을 조여 왔다. 그중에서 의료전달체계 부재는 심각하다. 동네의원은 일차 의료기관으로서 게이트키퍼 역할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는 '박리다매 진료'와 비만과 성형 등의 비급여 진료에 매달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태에 놓였다.

대형병원은 끊임없이 병상을 확충하면서 몸집을 부풀리는 식의 성장을 지속해 왔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동네의원과 감기환자 유치 경쟁까지 벌여야 하는 궁색한 처지로 내몰렸다. 병원의 규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특수한 의료환경 탓에 병상 확충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멈추는 순간 경쟁에서 도태된다. 병원의 몸집 부풀리기 경쟁과 의료자원의 수급 불균형 속에서 환자안전을 위한 적정 의료인력 확보와 안전시스템 구축은 '후순위'로 밀리고 환자안전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본인부담 차등제와 같은 비용부담을 통한 의료접근성 장벽을 통해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려는 정책 속에서 환자는 아플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의료난민' 신세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과 안정적인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서는 맨 먼저 '저부담-저보장-저수가'로 상징되는 '1977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을 달성했다는 '압축성장 신화'를 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개혁에는 비용이 든다. 저부담에서 적정부담으로 전환하고 저급여-저수가 구조를 깨려면 건강보험료율을 높이는 게 선결 과제다.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은 이제 겨우 6%대다. OECD 국가들의 평균(9~10%)에 접근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 보험료를 더 냈을 때 보장성이 얼마나 더 확대되고, 삶의 질이 어떻게 나아질까를 제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건강보험료 적정부담 의제화를 꺼린다. 자칫 커다란 논란만 초래하거나 선거에서 표를 잃을까 두려워서다. 건강보험료 인상에 따른 국민의 저항감부터 먼저 걱정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문재인 케어 청구서'라는 조악한 비난이 제기되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식의 불합리한 비난은 지난 수십 년간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개혁을 발목 잡아 왔다.

마침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다양한 정책과제를 발굴 실천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수립을 추진 중이다. 건강보험종합계획은 2016년 8월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제도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 복지부장관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5년마다 수립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수립될 종합계획은 건강보험 정책의 기본목표와 추진방향, 재정, 부과, 급여 등 제도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첫 건강보험 전략이 되는 셈이다.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참에 적정 보험료 부담을 공론화해야 한다.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를 핵심으로 보장성 강화를 추진하는 데 '보험료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의 말은 무책임한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 저급여에서 적정급여로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당연히 보험재정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가입자가 보험료를 더 부담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때마침 7월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높인 소득 중심의 새로운 부과체계가 시행된다. 또한 내년 초를 목표로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른 국가 차원의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도 진행 중이다. 건강보험 적정부담과 보장성 강화, 의료체계 개편에 관한 사회적인 논의를 시작할 좋은 기회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더 미루면 감당할 수 없는 건강보험 청구서가 날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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