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 노동자 백혈병 첫 산재 인정…직업병 인정범위 확대 추세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근로자에게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결정이 처음으로 내려졌다. 

21일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에 따르면 지난 20일 매그나칩 반도체 청주사업장 클린룸에서 임플란트(이온주입) 공정 예방정비 업무를 담당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김 모씨에게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심의 결과,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그동안 공단은 반도체 공장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재생불량성 빈혈과 유방암 두 사례는 산재로 인정했지만 백혈병에 대해서는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는 저농도의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지속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고 임플란트 공정의 이온 주입 장비에는 방사선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 요양부 한 관계자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김 모씨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장기간 방사선에 노출된 부분과 백혈병 발병 이전에 방사선 피폭으로 의심되는 치은염, 갑상선기능저하증, 기흉이 발병해 치료받은 적이 있어 백혈병과 업무가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반도체공장 노동자의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 인정과 직업병 예방 조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재보험법‧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그동안 반도체 공장에서 근로자의 백혈병 유발 원인물질로 지목됐던 방사선과 프롬알데히드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 2월 ‘산재보험법‧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산재 인정 범위를 대폭 확대키로 한 바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직업성 암 종류가 9종에서 21종으로 늘어나고 암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도 현행 9종에서 23종으로 확대된다.

 

▲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 질병통계별 유해요인 추가 사항

특히 발암물질에는 엑스선 및 감마선, 비소, 니켈 화합물, 카드뮴, 베릴륨, 목분진, 벤지딘, 베타나프틸아민, 결정형 유리규산, 포름알데히드, 1,3-부타디엔, 라돈-222, 또는 그 붕괴물질 등 14종이 추가됐다.

고용부는 시행령 개정안이 산재 인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어렵지만 추후 반도체 공장 근로자의 백혈병에 관한 산재 인정이 어느 정도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부 산재보상정책과 한 관계자는 “기존에 고수하던 산재 인정의 판단 기준이 바뀐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사안마다 역학조사를 하는 방식은 같다”며 “그러나 역학조사 결과와 달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재로 판정한 것은 의외”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병한 백혈병을 산재로 처음 인정한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며 “이에 비춰볼 때 앞으로 관련 업무에 있어서 산재 인정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시민단체는 의료계에 근로자의 직업력에 관해 면밀히 검토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상근활동가(산업의학 전문의)는 “산업재해의 인정기준이 개정됐지만 이를 더 완화해서 개정하지 않는 한 현재 갖고 있는 구조적 어려움은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근로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 의료인이 산업재해 인정에 중요한 기준이 되는 직업력에 관심을 가져야 발병 원인을 밝혀내는데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인이 진찰할 때 하는 말 한 마디는 환자가 본인이 갖고 있는 질병의 직업병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환자의 직업력을 쉽게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화학물질 독성이 환자에게 발병 원인임을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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