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의사(협회)의 정치, 시민의 정치

[라포르시안] 투표 전에는 전혀 사회적 존재감이 없다가 끝난 후에 갑자기 불길처럼 관심 대상이 된 이상한(?) 선거. 관심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스캔들’로 비화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말 끝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 선거 이야기다. 

새로 뽑힌 회장이 극우 성향이라는 것이 ‘시끄러움’의 핵심 이유다. 그동안 그가 쌓아온 이력이나 활동, 발언을 볼 때 내부, 외부에서 많은 사람이 한 마디씩 보태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도 당연히 그의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적 입장과 방법을 반대한다.

큰 표 차이로 그를 뽑은 의사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무심하거나 방관했던 사람들을 책망하는 비판이 많이 들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당신이 이런 집단에 속해 있던 것이냐” 등등.

우리는 조금은 냉정하게,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 일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논평의 기본 관점과 입장부터 밝히면, 첫째, 국외자 입장에서, 둘째, 시민 또는 사회적 관점에서, 그리고 셋째, 정치적 시각을 유지할 것이다. 여기서 정치란 선거와 국회의원으로 대표되는 현실 정치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 즉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다루는 인간의 실천 활동을 가리킨다.

극우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못했으나, 결과가 놀랍지는 않다.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가 말하는 ‘합리적 무지’를 비롯해(관련 기사 바로 가기), 대부분 투표 결과는 유권자의 정치적 ‘합리성’을 반영한다. 우리는 이 후보를 선택한(또는 투표에 불참한) 투표권자도 ‘합리적’ 행동을 한 것으로 해석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경제학이 말하는 이 합리성은 ‘바람직함’이나 ‘옳음’ 또는 ‘좋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모든 개인이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존재라 전제하고, 그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결정을 합리적이라 본다. 결국 합리성은 행위자 개인이 판단하는 자기 이익이다.  

개인 의사들이 무슨 이익을 원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자가 문재인 케어를 저지한다 했으니 그 정책에 대한 찬반을 드러내려 한 것은 아닐 터. 가장 선명한 약속을 내세운 ‘극단’을 선택함으로써, 가장 비용-효과적인(!) 방식으로 ‘불만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려 했을 것이다. 여러 개인은 합리적 정치 행위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문제는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집단(조직)의 합리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구성의 오류’(관련 기사 바로 가기).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전체 구성원 중 아주 일부만 그를 지지한 것부터 오류이자 제도적 한계다. 대표가 약한 대표성만 가지는 현실.   

게다가 사회적, 제도적인 정치 주체는 개인 의사가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의사들, 구체적으로는 의사단체로서의 의협이 아닌가. 시민과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정치적 주체로서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인지는 전혀 별개 문제다.

이번 선거 결과, 의사단체는 정부가 추진하고 시민이 대체로 지지하는 정책에 ‘결사반대’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역사적으로는 단순한 정책 반대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정치를 전면화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전면화’라는 표현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의사 ‘집단’과 이해관계가 연결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국외자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우친 선택을 했다. 그 모든 것 ― 이념과 성향, 사회적 평판, 정치적 자산, 문화적 상징 등 ―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택했다!

선택의 정치적 의미와 효과가 중요하다. 개인과 집단이 왜 그렇게 했느냐에 무관하게, 이제 이해관계의 정치만 남고 다른 정치는 배제되었다. 게다가 그 이해관계는 가장 노골적이고 어떤 대화도 차단하는 ‘자기 유폐적’인 것이다. 적어도 사회와 시민이 보기에는 그렇다. 정치에서는 때로 실제보다 어떻게 보이고 받아들여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백 퍼센트 이해관계 정치가 되면 ‘윤리’의 정치와 ‘전문가’의 정치는 사라진다(다들 말하는 미국의사협회의 정치가 어디에 토대를 두는지 상기하자). 한 가지가 계속되면 다른 것들은 힘을 잃고 결국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 결과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의협이 말하는 ‘국민 건강을 위해’ 또는 ‘의학적으로 타당한’ 등의 명분은 점점 더 기반이 약해질 것이다.

투표에 참여한 각 개인은 합리성의 관점에서 이런 결과를 원했을까? 한국의 의사들은 이미 윤리의 정치와 전문가의 정치를 포기하고 이해관계를 결집하고 드러내는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럴 수도 있다. 파업도 불사한다는 ‘강경 투쟁론’이 넓은 지지를 받는 것을 보면, 일부 의사들은 이번 결정이 집단적으로도 가장 합리적이라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부 논리나 생각이 무엇이든, 의사와 의사단체의 정치 행위가 정말 합리적인지는 그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판단할 필요도 없다. 시민이 주도하는 또는 시민에서 출발하는 건강정치, 의료정치, 건강보험의 정치가 남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정치 주체가 있다는 사실!

의사와 의사단체는 놀랄 정도로 관심이 약하지만, 가시성과 무관하게 시민 정치는 늘 의료와 건강보험에 개입한다. 더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이 정치에는 여러 정치 행위자가 서로 작용하고 경쟁하며 때로는 협력, 연대한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은 당연히 권력과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시민을 시민운동이나 사회단체, 소비자 단체로 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때로 조직이 시민을 대표하거나 매개하지만, ‘사회권력’은 분명하지 않은 채, 어떤 때는 여론과 공론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때는 불만과 불평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실현한다. 심지어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분위기나 ‘공기’로 나타나기도 한다(‘공기’는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쓴 <공기의 연구>에서 따온 표현이다).

상호작용과 권력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의사와 의사단체의 이해관계 정치는 필시 시민을 움직이게 하되, 시민은 그냥 수동적 주체가 아니다. 시민은 윤리의 정치와 전문가의 정치에도 반응을 보이지만, 이해관계 정치에서는 이해관계의 ‘프레임’ 안에서 말하고 실천한다. 새로운 정치적 시민이 형성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대중은 문재인 케어와 비급여를 새롭게 이해할 것이고, 이를 추진하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의협을 달리 볼 것이다.

속도는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있으나, 새로운 여론과 공론이 형성될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 여론과 공론이 권력으로 바뀌어, 시민-정부-의사단체와 의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문재인 케어를 저지하겠다는 이유가 오로지 ‘돈’ 때문이라고 여론, 분위기, 공기, 문화가 확립될 때, 의사단체의 정치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 정치도 어쩔 수 없이 구속된다.

의사와 의사단체의 정치와 그 앞날을 걱정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지만, 걱정한다고 될 일도 아닌 듯싶다. 그보다는 윤리의 정치와 전문가의 정치가 작동하지 않을 때, 시민의 건강과 보건의료가 부정적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담과 교육, 예방, 공감과 교류, 환자의 고통을 줄이려는 노력이 모두 수가(비용)와 이익, 이해관계로만 환원되면, 그것은 도대체 어떤 건강, 보건, 의료가 될까.

정치와 권력관계는 사회적, 역사적 산물인 만큼, 어떤 개입도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그 ‘경로’ 때문에 평균으로 수렴할지 또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지 모르지만, 기회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시민과 사회권력이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하다.

때로 치우침과 왜곡이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지금 벌어지는 의사와 의사단체의 정치를 주목하면서, 아울러 이에 반응하고 개입하는 시민의 정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시민의 시각에서 이해관계의 정치 특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윤리의 정치와 전문가 정치를(그리고 그 힘을) 회복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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