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처럼 해오던 부당한 업무지시 없어져...많은 게 달라졌다" 증언

2017년 12월 1일 민주노총 경기도지역본부 경기중부지부 대회의실에서 한림대의료원 산하 한림대 강남성심병원·동탄성심병원·한강성심병원·한림성심병원 등 4개 병원 노동조합 설립총회가 열렸다.
2017년 12월 1일 민주노총 경기도지역본부 경기중부지부 대회의실에서 한림대의료원 산하 한림대 강남성심병원·동탄성심병원·한강성심병원·한림성심병원 등 4개 병원 노동조합 설립총회가 열렸다.

[라포르시안] 재단의 행사에 동원된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춤'을 강요하는 식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각종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논란을 빚은 한림대의료원 산하 4개 병원에 노동조합이 생긴지 약 2개월 지났다.

노조 출범 이후 지난 2개월 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짧은 기간이지만 조직문화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직장 내 갑질 제보를 받고 무료상담을 진행해온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1일 출범 100일을 맞아 토론회를 열고 그동안 제보받은 각 사업자의 직장갑질 사례를 소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전국보건의료노조 한림대의료원지부 이병주 부지부장이 직접 참석해 지난해 12월 초 병원 노동조합이 결성된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전했다.

이병주 부지부장은 "국내 대학병원 중 웬만한 데는 다 노동조합이 있는데 우리 병원에는 없었다"며 "노조가 없다보니 부당노동행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몰랐고, 그런 일이 부당노동행위인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직장갑질119 카톡방을 통해 병원 직원들이 단체로 직장내 불만사항과 그동안 겪은 각종 부당노동행위 사례를 토해내면서 노조 결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부지부장은 "직원들이 자신들의 불만과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직원들 스스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노조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작년 11월 중순 쯤 8명이 모여서 노조 결성을 결의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1일 한림대의료원 산하 5개 병원이 모여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로 노조를 출범했다"며 "이후 조합원이 계속 불어나면서 사측에서도 (노조의)실체를 인정하고 불합리한 관행들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실제로 한림대의료원 측은 노조가 설립되고 며칠 뒤인 작년 12월 4일 "최근 논란이 된 일련의 사태로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교직원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구했고, 현장의 목소리가 담긴 조직문화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부지부장은 "노조가 출범한 이후 화상회의, 체육대회 등 한림대의료원만의 불합리한 조직문화가 서서히 없어졌다"며 "이후 노동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직원들도 생기고, 병원내 부서장들이 관행처럼 해오던 부당한 업무지시가 없어지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원에 노조가 만들어지고 2개월 만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우리는 의료원 측에 '병원을 망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상생해서 함께 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노사 실무교섭을 했는데 같이 잘 해보고자 하는 분위기이다. 뜻있는 분들은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노동이 존중받는 직장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직장갑질119에서 법률적 조언을 해주고 있는 김유경 노무사는 "한림대성심병원의 갑질제보가 엄청나게 많았다. 임금 갑질, 휴가 갑질, 성희롱 갑질, 정치 갑질, 비품 갑질 등 '백화점식 갑질' 사례였다"며 "한림대 산하 병원 직원들도 처음에는 '노조를 하면 짤린다' 등의 우려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질 제보가 제기된 지 1개월 만에 노조가 출범하고 조합원이 1천명을 넘어섰다. 요구하고 바꾸려는 노력이 시작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강원도 D병원이 간호사와 직원들을 동원해 김장 1만포기를 담그는 모습. 이미지 출처: 직장갑질119 토론회 중계 동영상 화면 갈무리.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강원도 D병원이 간호사와 직원들을 동원해 김장 1만포기를 담그는 모습. 이미지 출처: 직장갑질119 토론회 중계 동영상 화면 갈무리.

상상하기 힘든 갑질 넘쳐...간호사·직원에게 김장 1만포기 담그게 한 병원

작년부터 병원노조 설립 봇물...열악한 노동환경 방증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병원에서 벌어진 각종 직장갑질 사례가 소개됐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강원도에 있는 D병원에서는 병원내 간호사와 직원을 동원해 일주일간 1만포기에 달하는 김장을 하도록 지시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김장 1만포기를 담그기 위해 간호사들은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나와서 김장을 담갔다"며 "이렇게 담은 김장을 원장도 먹고 원장 주변사람들도 먹고 봉사활동을 한다면서 나눠주고 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병원 원장이 직원에게 지방흡입을 강요한다거나 병원 내에서 간호사 선후배간 군대식 군기 문화 사례도 소개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사립대병원과 공공병원 등에서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하는 신규 사업장이 크게 늘었다.

사립대병원 중에는 일산동국대병원과 건양대병원에서 작년 6~7월에 노조가 출범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한림대의료원 노조가 조직됐다. 

공공병원 부문에서는 국립교통재활병원, 광주시립제2요양병원, 서울시서남병원 등 3곳에서 노조가 출범했고, 지방자치단체 공공·민간위탁 부문에서는 대구 광역 및 자치구(군)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보건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했다.

병원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도 잇따랐다. 작년 4월 성빈센트병원을 시작으로 부산대병원, 의정부성모병원, 순천의료원, 전남대학교병원 등에서 청소 및 주차관리 등 용역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했다.

병원 사업장에서 노조 설립이 잇따르는 건 그만큼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많은 병원의 간호사들은 만성적인 인력부족 속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받고 있으며, 심각한 모성학대와 성차별 및 성희롱 등에도 시달린다.  

보건의료노조는 "신규 가입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 곳곳에서는 노동조합 설립을 감시하고, 방해하고 탄압하는 전근대적인 사용자들의 불법 부당노동행위가 멈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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