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발생한 무자격자의 의료행위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해당 사건을 적발한 부산지방경찰에 따르면 문제의 종합병원에서는 의료기기업체 직원들이 자사 제품을 납품하는 조건으로 병원장의 지시에 따라 환자의 신체에 직접 메스를 대고 인공 십자인대를 삽입하는 재건수술을 했다고 한다. 또 간호조무사가 맹장염 등 일반외과 수술을 수 백회에 걸쳐 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마도 환자들은 자신이 비의료인에게 불법 의료행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무자격자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가 비단 이 병원만의 상황이 아니란 점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중소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이번에 적발된 병원과 비슷한 불법의료행위가 무수히 자행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일차적 원인은 일부 비윤리적 의료인 때문이다. 수익만을 쫓아 환자의 안전을 내팽개친 의사들 탓이다. 그들에게 의료윤리란 한낱 거추장스러운 수사일 뿐이다. 의료윤리의 4대 원칙은 ‘자율존중의 원칙, 악행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이다. 의료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환자의 선택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어떤 행위도 금하고, 환자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증진시킬 것을 요구한다. 무면허자의 의료행위를 지시한 의사에게 날 선 칼의 준엄함과 같은 의료윤리 의식을 찾기란 애당초 무리다.

한국 의사사회의 미성숙한 ‘의료전문주의’도 단단히 한 몫 했다고 본다. 어쩌면 의료전문주의가 미처 싹틀 겨를조차 없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서양의 의사들은 근대적 의학교육 체계가 정립되고 지금처럼 국가로부터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의사면허를 부여받기까지의 과정에서 지난한 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내부적으로 단결해 자율적인 면허 부여권을 획득하는 동시에 의학교육에 있어서 그 자격과 내용을 엄격하게 규제함으로써 의사의 권위를 스스로 높여 나갔다. 외부로는 비과학적, 반의학적 이론이나 환경과 싸워가며 굳건한 의학적 스페트럼을 구축하고 견고한 의료전문주의를 완성했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누리는 권위와 신뢰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한국의 의사사회는 서양의 의학기술·제도와 함께 의료전문주의마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이는 서양의 의사사회가 각고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낸 의료전문주의를 수입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부 의사들은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의학교육의 성과로 고도의 직업전문성이 완성됐기 때문에 당연히 그만큼의 의료전문주의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착각이다. 분명 의사의 직업 전문화는 의학교육과 개개인의 노력으로 놀라울 만큼의 성과를 일궈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사회와 교류하며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의료전문주의를 얻지는 못했다. 의사에 대한 사회로부터의 신뢰와 권위는 한국 의사사회가 이뤄낸 직업전문성에 비하면 초라할 따름이다.  

이런 결과를 놓고 이상하게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국 의사사회는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진 의사면허제도의 틀 속에서 부여된 독점적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낮은 경제적 보상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여 왔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 보장이나 대기업에 의해 자행된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 문제에는 침묵을 지켰다. 그렇지만 정치적 목적를 위해서는 의사의 전문성을 기꺼이 빌려줬다. 조류독감 논란이 한창일 때 의사들의 닭고기 시식 행사 참석이나 광우병 논란 당시 의사단체 대표의 미국산 소고기 시식 행사 참석은 두고두고 아쉬운 기억이다. 이런 모습은 일반 대중이 의료전문주의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의료전문주의는 자율성과 자기통제, 이타심을 뿌리에 두고 있다. 특히 전문가의 자율성과 자기통제는 사회적 신뢰와 권위의 원천이다.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의 지시로 벌어지는 무면허 의료행위는 자율성과 자기통제를 상실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견고하게 쌓아온 의사의 직업전문성마저 의심받게 만든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지시한 의사를 징계하기 위해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른 의사를 강력하게 자율징계함으로써 의사사회의 자정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끊임없이 메스를 대야 한다. 이를 통해 미성숙한 의료전문주의가 제대로 뿌리 내리고 싹을 틔우는 토양이 축적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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