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얼마 전에 국내의 주요 언론들이 영국의 스태포드 병원 사태를 소개하면서 영국 국영의료제도(NHS)에 대해 대대적으로 비판한 일이 있었다. 게다가, NHS에 대한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영국 국영의료제도가 부당하다거나 한계가 뚜렷하다는 등의 성토에만 그치지 않고, 한국의 의료제도 개혁에서 무상의료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소위 ‘무상의료 무용론’이 거론되었고, 심지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80% 이상으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로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근거 없는 침소봉대라 하겠다. 

스태포드 병원의 높은 ‘초과 사망자 수’ 

스태포드 병원 사태의 핵심인 이 병원의 높은 ‘초과 사망자수’는 영국 NHS의 규제 기관인 Healthcare Commission 자체 조사를 통해 2009년 처음 알려졌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2/03년부터 실제 사망자수와 기대 사망자수의 차이가 100명 이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사실, 프란시스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총 5회의 자체 및 외부 감사가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감사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들의 추가 증언들이 계속 나오고, 피해를 입은 환자 보호자들이 단체를 결성하여 종합적인 진상조사를 계속 요구하자 2010년 캐머런 총리의 지시로 프란시스가 그 임무를 맡은 것이다.  필자가 영국에서 1년 간 머무른 2010-2011년 동안에도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계속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졌던 터였다. 한국에서 지금에야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2월 초에 프란시스 보고서의 최종본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 영국 스태포드병원의 실제 사망자수와 기대 사망자수의 추이(1996-2008)/ 자료원: Healthcare Commission 통계, 프란시스 보고서를 참고하여 재구성

프란시스 보고서 

프란시스 보고서는 스태포드 병원 사태에 대한 종합적 감사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과거 수차례의 감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태포드 병원과 지역보건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139일에 걸쳐 160명 이상으로부터 증언을 들었다. 이를 통해 환자가 꽃병에 든 물을 마셔야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비롯하여 환자들에게 적절한 영양과 음료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드러났다. 간호인력 부족과 불성실한 간호가 그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이 생명유지 장비를 적절히 다루지 못했거나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이 중환자를 책임지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보고서가 나온 직후, 캐머런 총리는 “단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끔직한 일”이라며 현실에 안주하는 문화를 뿌리 뽑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이 추진하고 있는 NHS 개혁의 동력으로 이 보고서를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총선에서 장애아로 사망하였던 자신의 아들 사례를 들면서 영국 NHS 제도의 소중함을 이야기하였고, 총리가 되더라도 NHS 예산을 줄이지 않겠다는 약속했었다.

하지만 총리가 되고 난 후, 캐머런 정부는 NHS에 대한 대대적 구조 개혁에 착수하였고, 그 핵심은 재임기간 동안 200억 파운드에 달하는 지출의 삭감이었다. 지출 삭감은 당연히 인력의 감축으로 이어지게 되고, 환자의 안전은 더 큰 위협에 처해질 것이 명백한 이치였다. 캐머런 정부는 이러한 우파 개혁으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해야 했고,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조차 그러한 개혁의 부당성을 지적했었다.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NHS 제도 그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 정부의 NHS 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영국의 병원은 대처 정부 당시 NHS 개혁을 통해 병원은 전문 관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고, 이러한 현상은 노동당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노동당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경쟁과 선택의 원칙’에 근거하여 병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2001년부터 스타 등급제(Star Ratings)로 불리는 병원인증평가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평가 제도를 통해 높은 평가등급을 받은 병원들에 대해서는 영국 정부가 NHS 파운데이션 트러스트(Foundation Trust)라는 지위를 부여해 주었다. 병원들이 파운데이션 트러스트로 전환되면 보건부 장관의 관리감독으로부터 벗어나 별도의 기구인 모니터(Monitor)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재정과 병원인력 운영의 자율성을 대폭적으로 보장받게 된다. 대신, 모니터에서는 병원 간 경쟁을 위하여 계속적인 비용 절감 노력과 의료의 질 보다는 가시적인 목표의 달성을 요구했다. 스태포드 병원 역시 파운데이션 트러스트이다. 

결국, 스태포드 병원은 비용 절감을 위하여 기존 인력의 축소를 감행하였고, 이를 값싼 의료 인력으로 대체하였다. 스태포드 병원의 실제 사망자수가 기대 사망자수보다 급증한 것이 2001/2년(영국의 회계연도는 4월 1일부터이다)부터라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반증해준다. 병원 경영진은 파운데이션 트러스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의료진들의 필요하고도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였고, 외부의 감사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프란시스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부정적인 NHS 조직문화는 목표치 달성, 재정, 파운데이션 트러스트 지위의 유지 등과 같은 압력에 대해 NHS 하위조직들과 병원조직, 그리고 스텝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을 최우선에 두는 “NHS 조직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 보고서가 NHS 제도 자체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영국 NHS 제도의 핵심인 의료이용 시점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원칙이 스태포드 병원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은 보고서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스태포드 병원 사태는 영국 노동당 정부가 주도한 NHS 개혁의 어두운 한 단면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양적 성장을 위한 경쟁과 경영 효율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당 정부 기간 동안에 행해졌던 모든 NHS 개혁이 부정적이라거나 NHS 무용론으로까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잘못된 것이다. 예컨대, 의학적 서비스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사망률은 노동당 집권 시기 동안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가파르게 감소하였다. NHS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 역시 노동당 집권 시기에 급증하여 정권 이양 직전인 2010년에는 국민의 70%가 만족한다고 응답하여 영국사회조사가 이루어진 1983년 이래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의 의료체계를 주로 연구하는 미국의 커먼웰쓰 펀드의 2011년 조사에 의하면, 영국은 스위스와 함께 자국의 환자들이 자국의 의료제도를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주된 이유는 영국의 노동당 정부가 NHS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함으로써 인력과 시설의 확충 및 현대화를 이루어 만성적인 대기시간의 획기적 감축을 달성했고, 정기적으로 환자 설문조사 결과를 의료인들에게 환류하는 등 환자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과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스태포드 병원 사태와 국내의 한 지방병원 사태 

마침 며칠 전에 지방의 한 병원에서 의료기 판매업체 직원과 간호조무사가 1,100여 차례에 걸쳐 수술을 해 왔다는 기사가 났다. 해당 병원장은 “병명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발병원인을 질병에서 상해로 변경해 환자가 고액의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하면서 환자를 늘렸고, 고액이 보장되는 보험 상품에 가입하도록 한 뒤 아프지도 않은 사람에게 관절염 수술을 시행” 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은 보건당국이 아니라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수사 결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영국의 한 지방병원인 스태포드 병원 사태에 대해서는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NHS 무용론, 심지어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제한해야 한다는 식의 목소리가 대대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진작 국내의 지방 소재 한 병원의 사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종합적 감사가 필요하다거나 한국 의료체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등의 목소리는 전혀 내지 않고, 단지 일회성의 사건사고처럼 다루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병원 사망률을 비롯해 병원 의료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통계마저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침소봉대하는 것도 잘못이요, 드러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 이 글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http://state.welfare21.net)에 게재된 것입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측의 양해를 구하고 본지에 전문을 재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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