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전국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최근 창립 15주년을 맞이했다. 보건노조는 지난 199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산별노조이다. 국내 노동운동에서 본격적인 산별노조 시대를 연 보건노조는 지난 2004년 첫 병원노사 산별교섭의 문을 열기도 했다. 그동안 병원 노동자들의 근로환경 개선은 물론 의료공공성 강화 투쟁의 구심체 역할을 맡아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보건노조 이주호 전략기획단장을 만나 산별노조로서 보건노조의 지난 15년간 성과와 의미를 되짚어봤다.


- 1987년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가 출범했다. 당시 병노협의 출범을 촉발시킨 보건의료계 내부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그 당시만 해도 간호사를 비롯해 병원 기능직의 근로기준법상 임금을 지키는 병원이 거의 없었다.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하루 노동시간은 13시간이 넘는 실정이었다. 모든 출발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단결로 탄압을 막아내고 권익도 지킬 수 있는 공공적인 활동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병노협을 통해 단결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 보건노조가 국내 최초의 산별노조로 탄생할 수 있었던 동력은.

“보건노조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노동자로서 산업적 동질성이 높고 노조 간부들이 활동에 있어서 헌신성과 순수성, 중앙에 대한 현장의 신뢰가 깊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게다가 조직의 공식 결정은 반드시 실천해왔던 조직문화도 크게 한 몫 했던 것 같다”

- 2004년에 이르러서야 실질적으로 병원노사간 산별교섭이 이뤄졌다. 당시 병원 사용자들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노동법상 기업별로 교섭하는 자리에 사용자가 나오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별단위에서는 처벌조항이 없어 참석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국내 노동법은 기업별 교섭을 전제로 만들어져서 산별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을 위해 처음에는 병원 사용자가 모여 있는 곳이 병원협회라고 생각하고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병협의 입장은 '병원급 사업장은 1,700개인데 그 중 노조가 있는 곳은 160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갈 이유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략을 현장교섭으로 바꾸게 됐고, 그것이 사용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 산별교섭이 이뤄지면서 보건노조의 활동이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산별교섭 과정에서 노조는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을 한다. 산별교섭은 산업별 노사 대표가 하는 교섭이다보니 무상의료, 보호자 없는 병원 등과 같은 의료공공성에 대한 의제를 꺼낼 수 있는 틀이 되는 것이다. 산별교섭이 있었기 때문에 의료공공성 투쟁이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만약 산별교섭이 없었다면 의료공공성 부문은 시민단체들이 하고 있는 방식을 별도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의료공공성과 산별교섭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병원노사간 산별교섭이 상당히 약화됐다. 이런 배경에 정부의 노동정책이 많은 영향을 끼쳤나.

“당연하다. 산별교섭은 노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여기에 정부가 우호적으로 도와준다면 교섭은 더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 때의 중앙노동위원회는 산별교섭이 성사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친기업적 성향이다 보니까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사간의 원활한 교섭을 위한 조정 등에 대해서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본다”

- 산별교섭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지난 2009년에는 산별교섭을 중단했고, 2010년에는 교섭 자체를 아예 못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특성별로 교섭을 했다. 작년에는 78개 사업장에서 노사 합의가 이뤄졌다. 올해는 불참했던 국립대와 사립대를 포함시켜 완전한 산별교섭으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78개 사업장에서는 산별중앙교섭을 어떻게 잘 할 것인지 꾸준하게 논의하고 있지만 국립대와 사립대병원은 아직까지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건노조는 '투 트랙' 전술이라고 해서 산별교섭에 응하는 사업장은 합리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도록 하고 산별교섭을 거부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강력한 현장투쟁을 전개할 방침이다”

- 이전에 개원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도 보건노조 조합원으로 가입시키자는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조직의 외연을 개원가까지 확대시킬 계획인가.

“규약상으로는 개원가에 근무하는 노동자도 노조원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솔직히 의원급의 경우 사용자가 의사이고, 경영 규모도 상당히 열악한 수준이다. 그런 상황에서 노조를 만들어 노조활동을 하겠다는 것은 한국적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보건노조 차원에서 개원가까지 노조 활동을 확대시킬 것을 여러 번 주장했지만 이런 한계가 있었다. 다만 앞으로 개원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지역별 지부를 활성화하고, 성급하지 않게 노사간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최근 전공의 노조가 활성화를 천명했고, 의사노조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만일 의사노조가 활성화된다면 보건노조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옳다고 보나.

“전공의 노조는 솔직히 보건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의사노조도 봉직의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보건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보건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어렵다면 공동의 필요성에 의해 만나는 협의체 형식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 의료계의 불만 중 하나는 보건노조는 왜 정부를 상대로 의료수가 인상 요구를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분명 저수가다. 하지만 저수가를 보전하기 위해서 병원에서 비급여 진료를 하고 있고, 장례식장 등 부대사업을 통한 수익보전 방안이 마련돼 있다. 게다가 의료기관의 회계 투명성도 상당히 낮다. 이런 상황에서 수가가 낮으니 수가를 올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수가 인상을 요구하려면 경영 투명성이 더 높아져야 하고, 비급여를 없애고 행위별 수가제가 개선돼야 한다. 이런 노력과 동시에 수가를 올려달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적정보장, 적정부담, 적정수가를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건강보험료 인상의 필요성도 주장해야한다. 이 모든 것을 전제로 둬야 수가 인상 주장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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