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뜬금없는 말 같지만, 병원의 진료 대기실을 볼 때면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톨게이트를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 간혹 출발지에서 통행카드를 뽑지 못했거나 초행길의 행선지를 묻는 운전자 때문에 톨게이트 통과가 지체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뒤쪽의 차량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짜증을 내며 항의하기 십상이다. 톨게이트 앞에선 통행료를 지불하고(요즘은 하이패스 단말기를 장착한 차량이 더 많기는 하지만) 빨리빨리 지나가야 한다. 다음 차량, 다음 차량 하는 식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문제가 생긴다.

본질적으로야 전혀 다른 일이지만, 한국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과정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진료실에선 빨리빨리 필요한 것만 확인하고 다음 대기환자로 넘어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진료시간이 길어지면 대기자들이 불만을 쏟아낸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환자 진료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낮은 의료수가 속에서 가능한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병원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료환경을 떠올리니 진료대기실이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끔 했다.

지금의 의료환경에 대해 환자와 의사 모두 불만이다. 환자는 진료시간이 너무 짧아서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없다고 불평을 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병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초진환자라면 좀 더 꼼꼼하게 진료해야만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데 지금 한국의 의료환경은 그걸 막고 있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비유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는 '박리다매' 진료를 해야 병원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병원의 교수조차 하루에 70~8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의 생각하면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어찌어찌해서 이런 의료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슬아슬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깊이 따져볼 필요도 없이 환자의 질환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질병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렇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갖고 꼼꼼하게 가족력과 직업력, 여행력, 주거나 생활환경까지 확인한다면 불필요한 검사를 줄일 수도 있다.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건강보험 재정의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절실하다.

최근 지방의 한 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근무하는 의사(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지금의 의료시스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어느 날 오후, 8살의 남자아이가 1개월 전부터 배가 불러서 인근 병원을 내원해 치료를 받다가 병세가 나아지지 않아서 찾아왔다. 아이는 겉으로 보기에 배가 부른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복부엑스레이를 좔영했더니 장에 공기가 가득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폐쇄를 의심할 수 있지만 아이는 배에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며칠 뒤 이른 아침 시간에 다시 내원해 엑스레이를 촬영했을 때는 장에 찼던 공기가 보이자 않고 정상으로 나타났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이의 몸에 나타난 증상의 원인은 가정에 있었다. 아이가 이 병원에 내원하기 한 달 전 아버지가 오랜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본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꽤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공기를 더 많이 삼키는 '병적 공기연하증' 증상을 보였다. 오후에 촬영한 복부엑스레이에서는 장에 공기가 찾지만 이른 아침 촬영한 엑스레이 영상에선 공기가 보이자 않았던게 그 때문이었다. 아이는 낮 동안에는 엄하게 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 공기를 지나치게 삼키다가 밤에 잠이 들었을 때는 정상적으로 호흡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촬영한 엑스레이에 장에 찼던 공기가 빠져나가 정상으로 보였다고 한다. '병적 공기연하증'을 진단한 의사는 이후 아이는 부모에게 충분히 상황을 설명했고, 아이의 증상은 사라졌다고 한다.
 
 #. 중학교 3학년인 아이가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내원했다. 과거 병력 상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현재 몸 상태는 가벼운 변비와 중등도 비만 정도였다. 두통과 어지러움이 혹시 귀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 싶어 이비인후과에서 가서 검사를 받도록 했지만 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 특별히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두통과 어지러움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의사는 아이에게 며칠 입원하면서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극구 거부했다. 입원하면 학교에 빠지게 되고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께 크게 혼날 수 있다면 크게 걱정을 했다.
결국, 아이의 부모와 면담을 하고 현재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후 입원을 시켰다. 아이의 부모는 과도한 학업 부담 때문에 두통과 어지러움을 겪었다는 의사의 설명에 크게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아이는 입원한 다음 날부터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부모로부터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받았고, 자신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입원 후 며칠 뒤에는 식사도 제대로 하고 얼굴에 웃음도 보였다.

어디 이런 일뿐일까. 진료실에서 환자를 상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가족력과 직업력, 여행력, 주거나 생활환경을 상담한다면 감염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 혹은 산업재해 여부도 진단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의료환경은 진료실에서 환자와 의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앞의 사례에 나온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환자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명의'이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문제 의사'로 볼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는 데 한 명의 환자에게 너무 많은 진료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진료 환자 수가 줄고, 경영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의사에게 물어봤다. 한 명의 환자에게 그렇게 많은 진료시간을 할애하면 병원에서 싫어하지 않느냐고. 그는 "그거야 뭐..."라면서 말을 맺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분명하다. 환자 한 명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서 진료하기에는 수가가 턱없이 낮다는 거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분석한 ‘한국과 주요 선진국의 외래 진찰료 비교’에 따르면 한국의 외래 초진 진찰료(1만4,410원)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일본(2만9596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5만2,173원)과 비교하면 1/4 수준이었다. 선진국은 의료이용에 있어서 일차의료기관이 '게이트키퍼(Gatekeeper)' 역할을 하고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찰료를 병원과 같거나 혹은 더 높게 보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한국형 저수가체계’로 동네의원의 역할과 기능을 축소시켜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됐다는 지적이다.

의료전달체계 붕괴는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초래했고, 불필요한 검사를 유발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의료환경 속에서 환자들은 몸이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게 된다.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고 상담을 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건강 문제도 짧은 진료시간에 쫓겨 여기저기 다른 병원을 찾아가 이것저것 검사를 받느라 정신적 고통과 함께 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젠 정말로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의료시스템인지를. 제도개선을 통해 진료실에서 늘어나는 5분, 10분의 시간은 의사와 환자에게는 5년, 10년 뒤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너무 엄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공기를 과다하게 삼킨 아이나 부모로부터 받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던 아이의 문제를 찾아낸 건 진료실에서의 충분한 시간이었다. 5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다음 환자, 다음 환자' 하는 식으로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연상시키는 진료대기실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 의사와 환자가 진료실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갖게끔 의료체계의 틀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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