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건강 격차 / 마이클 마멋 지음 / 김승진 옮김 / 동녘 펴냄

[라포르시안] 건강 불평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의료인프라 접근성, 경제력, 생활환경, 혹은 개인의 생활습관까지 다양한 요인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인이 건강 불평등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미국을 보자. 미국의 15~60세 사이 성인사망률은 세계 50위 정도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이자 의료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곳으로 평가받는 미국보다 성인사망률이 낮은 국가가 49곳이나 된다는 의미다.

성인사망률 기준으로 미국보다 건강 상태가 좋은 49개국 대부분은 미국보다 1인당 소득도 낮고 의료서비스 수준도 뒤처진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보다 성인사망률은 더 낮을까.

모성사망률은 또 어떤가. 미국은 의료비 지출이 세계에서 가장 많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산과 진료가 가능한 나라라는 점에서 모성사망률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의 15세 소녀들은 1,800명당 1명꼴로 생애기간 중 임신·출산 관련 요인으로 사망한다. 반면 이탈리아는 1만7,100명당 1명꼴이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미국보다 임신사망률 면에서 양호한 나라가 전 세계에 62개국이나 된다.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의료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낙후된 지역에 살고 아파도 치료비를 낼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하고 수명도 짧을 거로 생각한다.

성인사망률과 모성사망률을 놓고 보면 꼭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럴까.

의료인프라 접근성, 경제력, 생활환경, 혹은 개인의 생활습관은 건강 불평등의 격차를 더 크게 벌어지게 하지만 근본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거다. 건강과 건강 형평성의 문제를 초래하는 원인은 바로 한 국가, 한 사회의 불평등 정도에 달려있다고 한다.

마이클 마멋(Michael Mamot)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역학 및 공중보건학 교수가 펴낸 '건강 격차'는 건강 불평등의 원인을 집요하게 파헤친 책이다.

마멋 교수는 이 책에서 “건강에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라고 말한다. 건강과 건강 형평성의 문제는 국가의 부와 개인의 빈부 격차,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사회의 평등 정도에 따라 바뀐다고 주장한다.

쿠바, 코스타리카, 칠레처럼 국민소득은 높지 않지만 건강지표는 좋은 국가도 있고, 미국처럼 국민소득은 높지만 건강지표는 형편없이 떨어지는 나라도 있다.

마멋 교수가 그 원인을 조사해 본 결과 코스타리카와 칠레에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을 사회 주류에 통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빈곤층의 권리와 사회적 혜택을 보장하는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 있었고 국가가 학교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굉장히 컸다.

예를 들면 이렇다. 교육, 특히 여성이 교육수준에 따라 아동생존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영아사망률을 줄이려면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 위생시설과 의료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있다. 바로 여성의 교육 수준이다.

마멋 교수는 이 책에서 교육이 아동생존율에도, 출산율을 낮추는 데도, 건강에도, 나라의 발전에도, 성평등에도 좋다고 강조한다.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에서 교육을 못 받은 여성부터 중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영아사망률을 보면 출생아 1000명당 140명에서 60명으로 줄어드는 차이를 보였다. 다른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도 교육과 영아사망률 감소 사이의 인과관계는 분명했다.

마멋 교수는 그 이유를 엄마가 교육을 받으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잘 알게 되고 영양과 위생도 나아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럼 교육이 건강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봐야 하나. 아니다.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환경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마멋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을 좋은 사례로 들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상당한 규모의 교육 투자가 성과에 크게 기여했다. 교육부 예산은 1990년보다 6배나 늘어서 중앙정부 지출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중략)한국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93퍼센트로 77퍼센트인 미국보다 훨씬 높다" <'건강 격차' 223쪽>

또한 '공정한 사회'가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말한다.

마멋 교수는 남미의 쿠바, 코스타리카, 칠레 등 3개 국가를 예로 들었다. 이들 국가는 미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훨씬 낮지만 건강 수준은 미국과 비슷하다.

그는 "칠레에서는 극빈층을 포함해 모두를 포괄하는 '솔리다리오(Solidario, 빈곤퇴치 프로그램)'의 보편적 접근, 취학 전 교육과 학교 교육에서의 높은 투자, 의료서비스 제공 등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쿠바와 코스타리카에서도 이러한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추측했다.

이런 사례를 근거로 마멋 교수는 건강과 의료의 문제는 개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건강 불평등 문제는 의료 접근성이나 금연, 금주, 식단 조절 등 질병 예방을 위한 개인의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해결될 수 있다고 받아들여졌다. 물론 그런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더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 큰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마멋 교수는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사회가 건강에, 그리고 건강의 불공정한 분포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며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알려 주는 지식과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서"라며 "피할 수 있는데도 존재하는 건강 불평등은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불의"라고 꼬집었다.

건강 불평등이 몸에 새겨지고 부모에서 자식세대로 대물림되는 현상이 굳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마멋 교수의 '건강 격차'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노력에 더 집중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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