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펴냄

[라포르시안]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짜게 먹고, 더 아프다'

올해 초 국내 한 대학병원 신장내과 의료진이 소득 수준과 나트륨 섭취량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의 요지는 소득이 높을수록 싱겁게 먹고, 소득이 낮을수록 짜게 먹는다는 것이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이 가장 낮은 집단(소득 하위 25%)의 1일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3,251mg으로, 소득이 가장 높은 집단(상위 25%)의 섭취량인 3,217mg보다 34mg 더 많이 먹었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끼니를 잘 챙겨 먹어 칼로리와 나트륨 섭취량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연구결과는 달랐다. 왜?

연구진은 이렇게 분석했다. "소득이 낮을수록 식사가 불규칙하고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섭취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소득이 낮은 집단일수록 식사가 불규칙하고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트륨 섭취량이 고소득층에 비해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과도한 나트륨 섭취는 고혈압과 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초래하고, 저소득층은 만성질환이 있어도 의료비 부담 때문에 의료이용을 자제하다 보니 병을 더 키우게 된다. 질병으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고, 소득이 줄어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소득과 교육수준 등에 따른 건강불평등은 부모에서 자식 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건강불평등이 차곡차곡 누적돼 자식 세대로 이어지고 구조화된다는 건 더는 새로울 게 없는 사회현상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청소년의 건강수준에 불평등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학벌사회에서 교육의 격차는 다시 소득의 격차를 낳는다. 부모가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그 자녀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율이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구조화된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불평등이란 방식으로 몸에 새겨지고 겉으로 드러난지 오래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인 '사회역학'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발간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제목의 책은 사회역학의 시선으로 질병을 바라보며 구조화된 사회적 불평등이 어떻게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지, 사회가 개인의 몸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사회역학의 여러 연구 사례와 함께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저자인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부교수는 사회역학자로서 차별경험과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결혼이주여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 주로 연구해 왔다.

지난 2014년 ‘인턴/레지던트 근무환경 연구’를 비롯해 2015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 국가인권위원회의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6년 ‘한국 성인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 세월호 특조위의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김 교수는 이 책을 통해서 혐오, 차별, 고용불안 등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본문 중 '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란 소제목이 붙은 부분은 차별이나 폭력을 겪고도 말조차 하지 못할 때, 혹은 애써 괜찮다고 생각할 때 실은 우리 몸이 더 아프다고 이야기 한다.

"구직 과정의 차별에 대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여성 노동자와 학교 폭력에 대해 ‘아무 느낌 없다’라고 답한 남학생은 모두 자신이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거나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차별을 겪고도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한 여성 노동자들은 차별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팠습니다. 학교 폭력을 겪은 후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야기했던 다문화가정 남학생들 또한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학생들을 포함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아팠습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21~22쪽>

구조조정은 질병과 자살률 증가라는 사회적 상처를 상처를 남긴다. IMF의 고통이 극에 달했던 지난 1998년 상반기에는 부도, 빚독촉, 해고 등으로 인한 자살사고를 전하는 신문기사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후 직장점거 파업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의 고통도 이 책에서 다뤘다. 저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의 연이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해고노동자들의 건강 연구를 시작했다. 해고 이후 적금이나 보험 등 사적 안전망마저 붕괴될 때 공적 안전망이 부재한 한국사회에서, 고용불안이 개인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책을 통해서 전했다.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한 바 있는 김 교수는 지난 2014년 ‘전공의 근무환경 조사’를 통해 ‘건강하지 않은 의사들이 진료하는 환자는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짚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의뢰로 진행한 이 연구에서 김 교수는 전공의 수련환경 문제를 환자 안전과 전공의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전공의들의 열악한 수련 및 근무환경이 환자 안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이 연구결과는 '전공의 특별법' 제정의 동력이 됐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의사들'이란 소제목을 붙여 당시 연구결과와 의미를 되짚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과 그렇기에 '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사회적 원인을 가진 질병은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책의 끄트머리에 서로 돕는 공동체 문화를 통해 심장병이나 돌연사에 따른 사망률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낮게 나타난 미국 펜실베이니아 동부지역의 '로세토(Roseto) 마을' 이야기를 담은 건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말하고자 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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