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미국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 개혁법안인 '오바마 케어(Affordable Care Act)'를 본떠서 부르는 게 뜬금없기는 하다. 문재인 케어라는 작명이 이 정책이 추구하는 본질을 왜곡하고,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립으로 변질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래대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이라고 부르는게 옳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마련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의 핵심은 향후 5년간 30조6천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 미용·성형 등을 제외한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예비급여·급여로 전환하는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찔끔찔끔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는 보장성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 획기적이다.

다만 걸리는 부분이 있다. 비급여와 급여의 중간단계로 환자 본인부담이 최대 90%에 달하는 예비급여 항목을 둔다는 점이다. '다소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비급여의 경우 본인부담을 차등 적용(50~90%)하는 예비급여로 전환해 건강보험에 편입해 관리'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아직은 예비급여가 어떤 보장성 강화 효과를 낼지 의문이다. 비급여를 건강보험의 관리기전 아래 두려는 게 일차 목적은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 예비급여가 어떤 효과를 낼지 지금으로선 영 가늠하기가 어렵다.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과 구체적인 의료전달체계 개편 방안이 빠진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치를 오는 2022년까지 70%로 제시한 건 보장성 강화 정책의 추진의지가 약한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새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이 발표되자 기다렸다는 듯 찬반 논란이 거세다. 30조6천억원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건강보험료는 얼마나 오를 것인지,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할 경우 적정수가를 보장할 것인지 등의 각가지 사안을 놓고 갑론을박이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의료계는 거의 '포비아' 수준의 거부반응이다. 의료계가 문재인 케어의 미래를 분석하며 내놓은 전망을 보면 극단적으로 건강보험제도와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치닫는 '디스토피아' 수준이다.

특히나 '저수가 포비아'가 극심하다. 정부가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추진하면서 건강보험 수가를 관행수가보다 낮게 책정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그나마 저수가 체계에서 비급여로 수입을 보전해 왔는데 문제인 케어가 추진되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로 그마저 막히고, 심지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관리와 규제가 더 강화될 것이란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낸다. 여차하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기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보장성 강화대책을 직접 발표하면서 "(병원이)비보험 진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한 보험수가를 보장해 의료계와 환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의료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신뢰하지 않는다.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 40년간 정부와 의료계는 라뽀(rapport)를 쌓지 못했다. 

판단하건대,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대책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맞지만 이대론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금새 한계에 다다를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본다. 의료계가 지적하는 바가 아니더라도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향후 5년간 30조6천억원(실제로는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하다고 예상되지만)을 투입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유지하려면 이러한 재정부담이 해마다 계속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얼마간은 21조원의 건강보험 누적흑자와 국고지원 확대로 감당할 수 있겠지만 적정 수준의 건강보험료 인상 같은 확실한 재정 확충 대책이나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이 없다면 머지않아 재정적자에 직면할 게 뻔하다. 다만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대폭 확대될 경우 민간의료보험 가입 필요성이 떨어지고, 그만큼 보험료 인상 명분이 생긴다는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제안한다.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처럼 계약지정제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 신중히 검토하자고. 그때는 의료보험을 운영할 의료기관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실패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당연지정제 폐지가 의료민영화와 같은 극히 민감한 이슈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갈등의 소지가 큰 아젠다라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당연지정제가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하는 데 장점만 있는 게 아니란 점도 인식해야 한다. 처음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할 당시에는 이 제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적정 요양기관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당연지정제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불량 요양기관의 퇴출을 막는 제도적 안전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허위·부당청구를 남발하는 사무장병원이 기승을 부리면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지만 당연지정제 하에서는 이런 요양기관을 솎아낼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계약지정제가 보다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전문가들도 언급해 왔다. 

다만 당연지정제에서 계약지정제로의 전환 논의에 앞서 충족해야할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전국에 걸쳐 공공의료 인프라를 충분히 확충해 어디에서나 건강보험 요양급여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별 거점 공공병원을 훨씬 더 촘촘하게 확충하는 게 급선무다. 또한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지금보다 대폭 확대해 최소한 80% 수준으로 높여 민간의료보험 가입 필요성을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건강보험 재정이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끔 총액계약제 등으로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편하는 게 필요하다.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주치의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주치의 의료기관은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과 요양기관 계약이 전제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지금보다 더 정교한 의료서비스 질 평가체계를 확립해 요양기관 계약에 반영하는 것도 전제조건에 포함된다.

의료공급체계의 90% 이상을 민간의료 인프라가 차지할 만큼 공공의료 기반이 취약하고,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하다시피 한 지금의 상황에서 문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이 실효성을 갖고 제대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1차 의료기관과 대형병원의 역할 정립을 유도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구조 개편, 신포괄수가제 확대 적용, 취약지에 거점 종합병원 확충, 중장기적으로 건강보험 보장률 80% 달성 등의 추진전략과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건강보험에 편입·관리하는 정책 하나만 놓고도 의료공급자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5년 임기동안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혼란만 초래하다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차리리 건강보험 계약지정제로 전환해 원하는 의료기관만 건보공단과 요양기관 계약을 맺음으로써 보장성 강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40년간 건강보험제도의 틀 안에서 의료서비스 공급이 이뤄졌기에 대다수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서는 운영이 힘든 구조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계약지정제로 전환하더라도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요양기관에서 이탈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동안 많은 보건의료 전문가들도 계약지정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언급했다. 당장 문재인 정부에서 실행하기에 벅찬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자 한다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계약지정제로 전환하고,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계로 패러다임 변화를 꾀하는 것도 이제는 하나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아니면 모든 전제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한참을 더 기다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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