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정부·정치권의 무책임한 의대 신설 허용...'의대 유치 숙원사업' 지금도 여전해

[라포르시안]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분 아래 전국 각지에서 의과대학 신설을 허용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의대 신설 공약을 남발한 터였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93년부터 1998년까지 5년 간 전국 각지에 무려 9개 의대가 신설됐다. 강원대를 비롯해 제주대, 건양대, 관동대, 서남대, 성균관대, 을지의과대, 포천중문의대, 가천의대 등이 이 시기에 설립됐다. 

의대 설립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의료인력 수급전망과 교육의 질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리 없었다. 그때 당시에도 무분별한 의대 신설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아랑곳없었다.  

1998년 2월 21일자 한겨레 기사.
1998년 2월 21일자 한겨레 기사.

당시 정부가 의대 신설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의 압력으로 의대설립 여건 평가지표 순위가 뒤바뀌었다는 논란이 제기된 걸 보면 어떤 게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지역별 균형 발전이란 정치논리의 틈을 비집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신설 의대 중 일부가 '부실의대'란 불명예를 안고 의료계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그 중에서 관동대 의대(현 가톨릭관동대학교 의과대학)와 서남대 의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5년 문을 연 관동대 의대는 설립 이후 20여년 동안 부속병원조차 갖추지 못하고 부실 의대교육 논란을 빚었다.

학교법인 명지학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의대 설립 당시 인가조건인 부속병원 설립을 이행하지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12학년도부터 모집 정원의 10% 감축이란 페널티를 받기도 했다.

그동안 학생들은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며 임상실습을 해 왔고,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 대학 재단과 정부를 향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급기야 폐과 위기까지 내몰렸던 관동대 의대는 지난 2014년 7월 인천가톨릭학원이 의대를 포함한 관동대학교를 인수하면서 '가톨릭 관동의대'로 새출발 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남대 의대 사태는 무책임한 정치적 배려가 낳은 부실의대 사태의 결정판이다.

관동대 의대와 마찬가지로 1995년 신설된 서남대 의대는 끊임없이 부실교육 논란이 제기됐지만 그 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 41개 의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제1주기 의과대학 인정평가를 통해 부실교육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남대 의대는 1주기 인정평가에서 조건부 인정을 받은 후 두 차례에 걸쳐 재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권고사항이 충족되지 않아 최종적으로 조건부 인정을 받았다.

서남대 의대는 그 후 2007년부터 시작된 2주기 인정평가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았고, 미인증 상태에서 신입생을 뽑고 의학교육을 이어갔다.

서남대 의대의 부실교육 실상이 드러난 결정적인 계기는 설립자인 이홍하씨의 횡령사건 때문이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지난 2012년 12월 자신이 설립한 대학 4곳의 교비 약 898억원과 건설사 1곳의 자금 106억원 총 1천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이어 교육부가 서남대를 상대로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2013년 1월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실교육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교육부 특별감사 결과 서남대는 2009년 1월19일부터 2011년 8월19일까지 부속병원에서 54개 과목의 임상실습 교육과정 1만3,596시간을 운영했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병원에 외래·입원 환자가 없거나 부족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이 8,034시간에 그쳤다.

서남대는 임상실습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실습과목 학점 취득에 필요한 최소 이수시간을 채우지 못한 의대생 148명에게 1,626학점을 부여하고 이 중 134명은 의학사 학위를 줘 졸업시켰다.

인턴과정 수련병원 지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부속 남광병원에서 2011∼2012년 임상실습 교육과정을 운영해 학점을 부당하게 주고 파견실습 병원 및 임상실습 협약 병원의 의사에게 외래교수 위촉 절차도 없이 실습을 전담토록 한 사실도 확인됐다.

교육부는 감사결과를 근거로 학점취득 최소요건에 미달한 의대생 148명에게 준 학점을 취소하고 의대 졸업생 134명의 학위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관련 기사: 대법, 서남대의대 졸업생 134명 학위 인정>

서남대 의대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작년에 실시한 인정평가에서도 '불인증' 판정을 받았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서남대 의대 측에 올해 6월 30일까지 평가·인증을 받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재평가에서도 ‘불인증’을 받으면 서남대 의대에 2018년 입학정원의 100% 범위에서 모집정지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서남대 의과대학 재학생 60여명이 4일 오후 2시부터 새 정부에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광화문 광장에 마련한 '광화문 1번가' 옆에서 교육부의 조속한 인수대상자 선정을 통한 대학 정상화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했다.
서남대 의과대학 재학생 60여명이 4일 오후 2시부터 새 정부에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광화문 광장에 마련한 '광화문 1번가' 옆에서 교육부의 조속한 인수대상자 선정을 통한 대학 정상화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했다.

떠돌이 임상실습에 거리에서 피켓시위하는 의대생들 

이런 가운데 서남대 정상화를 위한 인수자 선정은 수년 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나마 최근 서울시립대와 삼육대가 적극적인 인수 의사를 밝히면서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수자를 선정할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어찌된 이유인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서남대 의대 사태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의대 재학생들이다. 서남대 의대생들은 부속병원이 수련병원 취소처분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며 임상실습을 받아왔고, 학교 정상화를 위해 국회를 찾아다니고 거리에서 피켓 시위도 했다.

학생들이 벌써 수년 째 교육권을 침해받고 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교육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임금체불로 교수들이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피켓시위에 참석한 서남대 의대생은 "교육부가 차일피일 인수자 결정을 미루는 사이에 학생들의 학습권은 심각하게 침해를 받고 있다 얼마 전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가 오랜 임금체불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고, 병리학교실 교수도 학교 측의 부당한 행태에 교수직을 내던졌다"고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지만 부실의대 신설 허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교육부는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가 없어 보인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을 지기보다는 왜 부실교육을 했느냐고 따지며 심판자 역할을 하는 데 더 열심이다.

교육부가 특별감사 결과를 근거로 서남대 의대 졸업생 134명의 의학사 학위를 취소하라고 통보하자 서남학원이 제기한 취소소송에서 법원은 "학교가 제공한 임상실습이 부실하다고 해도 이에 대한 책임은 부실교육의 당사자인 학교와 감독을 소홀히 한 교육부에 있다"고 판단했다.

목포대학교와 순천대학교는 의대 유치를 숙원사업으로 벌이고 있다.
목포대학교와 순천대학교는 의대 유치를 숙원사업으로 벌이고 있다.

부실의대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에 있고, 사태 해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도 교육부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하다.    

서남대 의대 사태를 계기로 의과대학 유치가 마치 지역 숙원사업인 것처럼 추진하는 정치권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작년에도 전남 지역에서 서남대 의대 폐과를 염두에 둔 의대 유치전이 벌어진 바 있다.

의료인력 적정 수급이나 의료자원의 지역별 형평성을 높이는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의대를 신설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인식이다. 이런 식이라면 언제라도 제2, 제3의 서남대 의대가 등장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