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부족으로 일이 힘들어 떠나고, 떠난 빈 자리로 더 힘들어지고..."의료인력 부족 폭발직전 상황"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제 46회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5월 12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을 제안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제 46회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5월 12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을 제안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라포르시안] 더는 '백의의 천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백의의 전사'라고 부른다. 3교대라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 노동, 감정노동에 따른 스트레스와 날마다 싸운다. 그마저도 지칠대로 지쳤다. 날마다 사직서를 품고 산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간호사들에게 병원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간호사로서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고 무기력한 자기 자신, 혹은 동료들과의 갈등으로 정신적 탈진 상태에 빠졌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력부족 때문이다. 늘 부족한 인력으로 빡빡한 간호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만성화 됐다. 간호사 인력이 항상 부족한 상태에서 근무하다 보니 노동강도가 세지고, 일이 힘들어지니 또 병원을 떠난다. 그러면 남은 간호사들의 업무강도는 더 세지고 그런 이유로 인력 충원은 더 힘들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이고, 간호사 평균 근속연수는 5.4년에 불과하다. 많은 간호사들이 늘 사직서를 품고 산다. 오늘은, 내일은 사직서를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간호사로서 성취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사직서를 내는 게 그들의 꿈이 됐다. 간호사 부족과 잦은 이직에 따른 경력단절은 간호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결국 환자안전을 위협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병원이 적정 간호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개별 병원이 적정 간호인력을 확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적정 간호인력 확보를 할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한다.

전국보건의료노조(위원장 유지현)는 제 46회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을 제안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기자회견에서 "나이팅게일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제간호사의 날에 대한민국의 간호사들은 인간생명 존중과 간호 사명의 표상인 나이팅게일이 되고 싶은 꿈 대신 하루빨리 병원을 사직하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 참담한 노동현실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대한민국의 간호사들은 밥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의 극심한 인력부족과 엄청난 업무량 때문에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백의의 전사가 되고 있다"며 "임신조차 순번을 정해야 하는 임신순번제도 모자라 사직조차도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사직순번제라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간병비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환자만족도가 높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간호인력을 구하지 못해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 간호면허를 가진 10만명의 유휴간호사들이 너무나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에 간호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현실은 대한민국 보건의료인력정책이 완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성토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방 중소병원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실시하고 싶어도 간호사를 구할 수 없어 실시하지 못하고, 대형병원은 간호인력 쏠림현상 때문에 1개 병동 이상 확대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어 정부가 세웠던 2020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실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의료법상 간호인력 기준 위반인 간호등급 3등급 미만 병원이 86.2%에 달해 양질의 간호인력 확충을 통해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취지에서 실시된 간호등급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응급실을 폐쇄하는 지방의 중소병원, 무자격자를 고용해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편법마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입원환자수는 미국이 5명, 일본이 7명, 영국이 8.6명인데 비해 한국은 15명~20명에 달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현정 보건의료노조 이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은 "사직서를 품는 간호사가 아니라 환자에게 집중하며 보람찬 삶을 사는 간호사가 되고싶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 빡빡한 근무표 속에서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간호사가 되고 싶지않다"며 "병원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환자도 살리고 직원도 살리는 사람, 인력이 필요하다. 이는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절실한 문제"라고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런 점에서 보건의료 분야야말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최적지라고 보건의료노조는 강조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전체 취업자 중 보건의료분야 취업자 비중은 독일이 11.7%, 일본이 8.9%, 미국이 7.7%인데 비해 한국은 3.7%에 불과하다"며 "대한민국은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의 여지가 매우 높다.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 정책은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 의료양극화 해소와 의료균형 발전, 100세 시대 국민건강 증진 등의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일자리 창출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분야에서 50만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제안한 새 일자리 창출 방안은 ▲보호자없는 병원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실시(11만 5325명) ▲만성질환자 전담 사례 관리간호사 확충(5만명) ▲입원환자 전담 전문의 확충(7500명) ▲모든 병원에 환자안전전담인력 배치(3227명)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인한 결원인력을 충원하는 모성정원제 실시(3만 2649명) ▲실노동시간 단축과 교대제 개선을 통해 좋은 일자리 창출(6만 2686명) ▲보건소, 정신보건전문요원, 학교보건, 산업보건 등 공공보건의료인력 확충(10만 3,000명) ▲ 공공병원 확충(6만 9660명) 등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호 업무로 '일자리위원회 구성'에 착수한 것을 환영하며, 곧 구성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서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며 "보건의료인력 부족과 수급난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정도로 폭발 직전의 상황이다. 이제 정부가 직접 보건의료인력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발족과 함께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건의료노사정협의체를 즉각 구성할 것과 6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보건의료인력법을 제정할 것을 요청한다"며 "우리는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에 나설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해서도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산업의 일자리 창출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우리가 추계한 바에 따르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완전하게 실시하는 데만 11만명의 인력이 필요한다. 이것을 기본으로해서 보건의료산업에 44만명이 넘는 인원이 지금 당장 충원되어야 한다"며 "환자가 안전한 병원을 만드는 길이며,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길이고,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를 붙잡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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