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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생태생명, 과학을 넘어 종교와 철학을 만나다생태생명의 위기와 대안적 성찰 /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편 / 한국학술정보 펴냄

요즈음 주말 늦은 시간에 방영되는 <인간의 조건>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개그맨 6명이 현대 문명의 혜택 없이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밀착하여 관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입니다. 파일로트 프로그램 성격으로 방영될 때의 주제는 “휴대전화, 인터넷 , tv없는 생활”이었는데, 유선전화를 활용하면서 같이 지내는 멤버들 사이의 관계가 끈끈해지는 모습을 시청하면서 저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정규방송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인간의 조건>은 “쓰레기 줄이기”를 첫 번째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한 일상의 모든 쓰레기를 줄이는 생활에 들어가기에 앞서 보여준, 여섯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배출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은 어느 사이 우리들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편리한 생활의 부산물로서 다소 불편함이 있는 과거의 생활로 회귀하게 된다면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예측해 봅니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의 자원낭비를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다보면, 급증하고 있는 인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지구자원을 고갈시키고 종국에는 지구를 황폐화시켜 생존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자들의 주장에 이르게 됩니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제45대 미국 부통령을 지냈고, 2007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수상했던 앨 고어 전 미국 대통령이 출연했던 영화 <불편한 진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하여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생활이 몸에 익힐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요즈음 같은 동절기에 실내온도를 2도 낮추고 여름철에는 냉방온도를 2도 높이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엘 고어의 환경보호운동은 영화 이외에도 저술활동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의 선택>에서는 재생에너지 개발, 생태복원, 에너지 소비혁명 등에 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앨 고어는 “나는 우리의 손안에 기후 위기를 서너 번 정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전 세계인의 단합된 의지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가 전 지구적인 비상사태임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우리의 선택, 13쪽)”고 인류적 사고의 변환을 촉구하는 한편, 탄소배출의 주범인 몇몇 거대 석유회사, 자동차 회사, 석탄회사, 선탄을 태우는 회사들이 연합하여 기후위기를 희석시키기 위하여 기후 변화의 과학적 증거를 기만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앨 고어의 말대로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고 있다는 환경보호론자들의 주장을 들으면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낙관주의자들이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에서는 현재 당면하고 있는 환경오염의 문제 혹은 자원고갈의 문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에 불과하여 조만간 해답을 찾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에 인류가 경제성장이라는 어리석은 목표를 포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관론자들의 “후퇴하라는 거짓 경보에 속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구환경의 변화에 대하여 비관론자들과 낙관론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이들의 주장을 같은 거리에 두고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머리에서 <인간의 조건>을 인용한 것은 최근에 읽은 엘리자베스 파렐리교수의 책 <행복의 경고>와 맥이 통하는 점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운전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사며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고 지나치게 많이 버린다. 아이들과 나 자신을 지나치게 방임하며 산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물과 에너지, 공기, 공간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 즉, 나란 존재는 지구가 내게 베풀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인다.(7쪽)”는 파렐리교수의 자가진단은 편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한편 파렐리교수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지구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며,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는 파렐리교수의 제안에서 ‘과학을 넘어 종교와 철학에서 길을 찾다’는 부제를 단 <생태 생명의 위기와 대안적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서강대학교 생명연구소에서 나온 책을 떠올리게 됩니다. 환경의 위기를 과학이 아닌 종교와 철학에서 대안을 찾아 해결하려는 책의 기획의도가 적절한 것일까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자연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저의 생각의 단순함 때문일 것 같습니다.

편집을 맡은 김완구님은 (환경의)오염방지 및 정화기술 등과 같은 과학기술이 환경문제들을 즉시에, 일시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눈에 띄게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개발해온 과학적 기술은 긍정적 가치와 부정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는 양면성을 가지는 만큼, 과학을 넘어 환경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대한 반성과 전환을 요구하는 종교적이고 철학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나 정복자로서 단순히 자연을 수단으로 여기고 이용해 먹는 존재라고 보는, 이른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인간은 이제 자연의 일부인 자연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혹은 자연과 하나로서 자연에 본래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보는 생태중심적 사고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 아래, 1부에는 환경문제에 대한 종교적 논의를, 2부에는 철학적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종교적 논의는 가톨릭, 동학, 불교 그리고 유교적 관점에서의 논하고 있습니다. 심상태 교수께서 논하신 가톨릭 관점에서의 논의에서는 그동안 인류가 직면한 환경위기의 사상적 바탕이 서양의 종교적 전통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위한 해결책을 다시 성서 안에서 발견해보려는 하고 있습니다. 즉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짐승을 부려라”는 구절이 세계가 인간을 위하여 창조된 것 같은 인상을 주어 근세 이후의 서구인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성서의 전거에 입각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성서의 표상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관계가 ‘착취의 지배관계’가 아니라 ‘관리적 지배’의 성격을 지닌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연세계는 하느님이 관리를 위탁한 것으로서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충실하게 관리해야 할 실재이다.(63쪽)”라는 것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톨릭의 새로운 해석입니다.

표영삼 천도교 상주선도사께서 논하신 동학(東學)적 관점에서는 동학의 생명관을 바탕으로 환경파괴에 대한 오늘의 문제점을 개관하면서 ‘온 천지 생명체계로 돌아가 한 몸처럼 되자’는 동귀일체(同歸一體)의 가르침을 통해 정신적 의미의 세계를 넓혀나가면 환경과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인간 조건에는 결핍성이 있으므로 물질적 만족은 한도가 없다. 물질적인 세계에 갇히지 말고 무한한 의미의 세계를 넓혀 나가야 한다. 온 천지 생명체계와 하나 될 때 거기서 얻어지는 의미의 세계는 무한하다. 정신적 의미의 세계를 넓힐 때 진정으로 세상을 만날 수 있다.(80쪽)”고 하였습니다.

유정길 사무국장님이 논하신 불교적 관점에서는 환경문제를 진보라는 인간의 집단적 관념에 대한 문제제기로 보고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 보다는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사고가 바로 진보적 사고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보이는 것만이 존재의 전부라는 사고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연기법(緣起法)으로 재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삼법인(三法印)을 내용으로 합니다. “세계는 제석천의 그물망처럼 구슬 하나하나에 전체가 비춰 있어, 하나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하나가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다.(83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세계가 서로 연관 맺으며 순환하는 이치를 무시하고 직선적인 시간관, 직선적인 발전, 직선적인 세계관이 바로 근저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생태학에서 놓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이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는 운동과 나아가 자연을 파괴한 인간에 대해 새로운 변화, 새로운 가치관 각성 운동, 생활양식 전환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 종교의 역할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영진 교수님이 논하신 유교적 관점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주역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를 규정할 때 나에 대립하는 존재, ‘너’를 타자(他者)로 마주하게 되는 것처럼, ‘자연’을 ‘인간’에 대립하는 타자(他者)로 구성합니다.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을 ‘물(物)’이라고 지칭하는데, 설괘전 3장에서는 하늘, 땅, 산, 연못, 우레, 바람, 물, 불 등 여덟 가지 사물, 즉 기본존재들이 상호작용하여 자연을 구성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산과 연못은 기를 통하고, 우레와 바람은 서로 부딪히고, 물과 불은 서로 쏘지 않으나 팔괘가 서로 착종된다.(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錯, 116쪽)] 유교에서도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남을 얻어 가장 귀하다.’고 하는 인간우월주의에 대한 이론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 정리하고 있습니다.

2부에는 김완구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이 쓴, ‘환경철학과 윤리에서의 생명’과 ‘인간과 자연: 큰 자아실현과 다중심주의’, 김성한 숙명여대 교수가 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학적 고찰’ 그리고 정민걸 공주대학교 교수가 쓴 ‘환경갈등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하여 환경문제에 대한 철학적이고 윤리학적 접근방법을 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태와 개별 생명체에 대한 본래적 가치를 어떻게 따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생태계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여 비교할 것인가 하는 등,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사안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서문에서 “지구온난화문제나 새만금방조제 건설사업 그리고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의 환경쟁점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낙관론과 비관론이 늘 병존하기도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막상 필자들의 논의에서는 해당 문제들에 부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인식을 숨기지 않고 있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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