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

[라포르시안]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표적항암제 글리벡이 보건복지부로부터 1년 이내의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이에 갈음한 과징금 처분을 받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국백혈병환우회와 한국GIST환우회는 글리벡을 복용하는 암환자 6천명을 대신해 이미 의견서를 두 번에 걸쳐 보건복지부에 제출하였고, 이제 그 결과만 남겨 둔 상태다.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정부의 어떠한 제도 추진이나 국회의 어떠한 입법 조치도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헌법상 보장된 인권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환자단체들은 보건복지부가 합리적인 결정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먼저 글리벡부터 한번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 2001년 6월 20일 식약처 허가를 받은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은 만성골수성백혈병, 위장관기질종양(GIST) 등 8개 질환 약 6천명의 암환자들이 복용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치료제다. 글리벡 복용 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10년 생존율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치료효과는 획기적이다. 치료는 초기 1년 6개월 동안 암세포를 집중적으로 없애고, 부작용 관리를 잘 해서 적응만 하면 이후부터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용량의 글리벡을 꼬박꼬박 복용하기만 해도 자기 수명만큼 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2년 이상 암세포가 없는 분자생물학적 관해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환자 대상으로 글리벡 복용을 아예 중단하는 임상시험도 진행 중인데 그 성적이 고무적이다. 어쨌든 글리벡 치료의 핵심은 ‘부작용’ 관리다.  

다음으로 글리벡을 복용하는 6천명의 암환자들의 요구를 한번 알아보자. 이들이 노바티스 사의 불법 리베이트 처벌을 면제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국민건강보험법 제99조제2항 및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70조의2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네 가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특별히 글리벡을 복용하는 환자들만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에 갈음해 과징금 처분을 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단지 법령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글리벡은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에 갈음해 과징금 처분을 해야 할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 예상되는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약제'에 해당한다고 의견서를 제출하였을 뿐이다. 환자단체들은 그동안 보건복지부에 충분히 의견을 전달했고, 보건복지부가 어떠한 처분을 하던 그 처분 결과에 따라 헌법소원을 제기하거나 또는 제도개선이나 법률개정을 하면 된다.  

이번 글리벡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의 문제점은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신규 암환자가 원해서 글리벡 복제약이나 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 등의 대체 신약을 복용하거나 기존에 글리벡을 복용했던 암환자 본인이 원해서 중간에 글리벡 복제약이나 대체 신약으로 바꾸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기존에 글리벡을 복용했던 암환자 본인이 원해서 중간에 글리벡 복제약으로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대체 신약으로 바꾸는 경우는 종종 있고, 신규 암환자 중에서는 처음부터 글리벡 오리지널이 아닌 복제약을 복용하는 환자들도 현재 100여명이 넘는다.

문제는 노바티스 사의 글리벡 불법 리베이트 제공에 대한 행정처분으로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글리벡 치료로 적게는 수년 많게는 16년째 암세포를 없애고 부작용 관리를 잘 하면서 장기 생존하고 있는 6천명 암환자들이 강제로 글리벡을 다른 대체 신약이나 복제약으로 사실상 바꾸도록 강요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노바티스 사의 불법 리베이트 제공에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다. 이는 글리벡을 복용하는 6천명의 암환자들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구용 표적항암제 등과 같이 암환자의 생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약물에 대해서는 오리지널이건 복제약이건 가능하면 중간에 다른 회사에서 나온 약으로 바꾸지 말고 한 회사에서 나온 약을 지속적으로 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정리하면 노바티스 사의 불법 리베이트 제공에 아무런 귀책사유 없는 6천명의 글리벡 복용 암환자들에게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 법령에 규정된 과징금 처분은 절대 안 되고 꼭 글리벡을 대체 신약이나 복제약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인권침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2001년 글리벡 복용 백혈병 환자들과 함께 글리벡의 신속한 공급, 약가 인하, 건강보험 적용을 노바티스 사와 정부에 요구한 글리벡 투쟁을 했던 단체들이라는 점이다. 2001년 글리벡 투쟁은 백혈병 환자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 잘못된 약가 제도와 법률과의 싸움이었고, 비록 이들 시민단체들이 글리벡을 복용하는 환자들로 구성된 환자단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리벡을 복용하는 암환자들이 적극 지지하고 투쟁에 참여했었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2017년 현재에는 이들 일부 시민단체가 환자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 잘못된 제도와 법률과의 싸움은 하지 않고, 환자의 생명과 인권을 무시하는 주장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 당연히 합리적인 환자들이 2001년과 달리 2016년에는 이들 시민단체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반인권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2017년 글리벡 이슈의 핵심은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글리벡의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을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글리벡을 복용해 본 경험이 없어서 지난 16년간의 글리벡 치료 환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글리벡을 복용하는 6천명의 암환자들이 겪는 글리벡 부작용의 내용과 정도, 잘 관리되고 있는 글리벡 부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외부요인에 대한 환자들의 심리적 부담감 뿐만 아니라 3개의 대체 신약으로 교체했을 때 일부 환자에게는 글리벡 복용 시 없었던 새로운 부작용 발생으로 생명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등을 너무 경시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아니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시민단체 대표는 환자단체가 당사자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환자단체 하지 말고 시민단체 하라는 이야기와 다름없고, 당사자 아닌 사람들이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당사자주의 극복을 외치는 것은 난센스 중에 난센스다. 

"일부 시민단체가 환자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 잘못된 제도와 법률과의 싸움은 하지 않고, 환자의 생명과 인권을 무시하는 주장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당사자가 아니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울 가 본 놈하고 안 가 본 놈하고 싸우면 서울 가 본 놈이 못 이긴다.”는 옛 속담이 있다. 실지로 해 보거나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사실대로만 말하지만, 실지로 해 보거나 직접 눈으로 보지 아니한 사람은 오히려 더 그럴듯한 이론이나 과장된 이야기를 만들어 더 그럴듯하고 더 엄청나게 이야기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자주 인용되는 속담이다. 이 속담이 이번 노바티스 사의 불법 리베이트 관련 글리벡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 논란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번에는 글리벡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 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1년 간 글리벡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글리벡은 외래진료에서 보통 3개월 치를 처방해 주기 때문에 9개월 치 글리벡 약값을 우선 부자 환자들은 자비로,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은 실손보험금으로 지불하면서 계속 글리벡을 복용할 것이다. 다음으로 글리벡 복제약으로 바꾸느니 차라리 효과가 좋은 BMS 사의 ‘스프라이셀’, 노바티스 사의 ‘타시그나’, 일양약품의 ‘슈펙트’ 등의 대체 신약으로 다수의 환자들이 바꿀 것이다. 그런데 위장관기질종양(GIST)는 백혈병과 달리 대체제가 아예 없다.

그 외 환자들이 2013년 6월 3일 글리벡 특허 만료 후 현재 13개 제약사에서 시판하고 있는 글리벡 복제약을 복용할 것이다. 글리벡 복제약에 대해서는 성분은 동일하기 때문에 효능면에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중인 복제약 제형은 알파형인데 반해 오리지널 제형은 베타형이고, 이 베타형 글리벡은 2018년 7월 16일 특허가 만료된다. 글리벡 베타형은 약제의 흡습성과 열역학적 안정성 측면에서 알파형보다 우수하다. 또한 글리벡 특허가 만료된 후 보훈병원에서 복제약으로 강제 변경한 적이 있었다. 이때 일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에게 부작용이 발생해 다시 글리벡 처방을 할 수 있도록 변경한 전례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자가 치료 목적으로 일부 환자들이 수입해 복용했던 인도의 글리벡 복제약 ‘비낫’의 경우 효능과 대부분의 부작용에는 차이가 없으나 3도 이상의 피부발진 발생 부작용이 글리벡보다 높다는 발표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불법 리베이트 근절 목적으로 글리벡의 건강보험 적용을 정지했을 때 기존에 글리벡을 복용하던 백혈병 환자들이 복제약이 아닌 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 등과 같은 2차 대체 신약으로 바꾸었을 때 발생한다. 이 백혈병 환자들은 대체 신약이 모두 내성이나 심한 부작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건강보험 적용 정지 기간이 경과해도 다시 글리벡을 건강보험 적용해 복용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한 번 약을 바꾼 경우는 기존 치료에 부적응이나 내성, 치료 실패를 하였기 때문에 약을 바꾼 것으로 판단해 다시 이전 약으로 돌아가면 전액 환자가 비급여로 비용을 부담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암환자가 원해서가 아닌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으로 강제적으로 다른 대체 신약이나 글리벡 복제약으로 바꾸도록 했을 때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 예상되는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할 수 사유는 더 있다. 그래서 글리벡을 복용하는 암환자들은 당연히 정부도, 국회도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환자들을 위해 법령의 범위 안에서 최선의 판단을 해줄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만일 복지부가 글리벡에 대해서 건강보험 적용 정지 처분에 갈음해 과징금 처분을 한다면 환자단체들은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현행 리베이트 투아웃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 개선 및 법률 개정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할 계획이다.

국회는 2014년 7월 2일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 제공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행정재제 수단을 만들어 시행하였다. 일명, ‘리베이트 투아웃제’로 불리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의2에 규정된 해당 약제의 건강보험 적용 정지 및 제외 처분이다. 그런데 불법 리베이트 제공 약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정지 및 제외 처분은 필연적으로 불법행위자가 아닌 해당 약제로 치료받고 있는 다수의 선량한 환자들이 피해를 보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참조해 행정처분 시에도 천문학적인 금액의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징수하는 것도 제약사의 리베이트를 근절하는 또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재 과징금 부과·징수액은 국민건강보험법 제99조 제2항에서 정한 '해당 약제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총액의 100분의 40을 넘지 아니하는 범위'로 되어 있는데 이를 제99조 제1항에서 정한 '해당 약제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총액의 5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로 개정하면 헌법재판소의 과잉입법이라는 위헌 판결을 피해 가면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에 큰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폐지된 보건복지부고시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에 규정된 ‘리베이트 연동 약가인하 제도’를 국민건강보험법에 신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리베이트에 연동되어 있는 약제의 상한가를 대폭 인하함으로써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에 큰 경제적 불이익을 주고, 건강보험 재정도 절약하고, 환자들도 약가가 인하된 만큼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석삼조(一石三鳥)라고 할 수 있다.

안기종은?

백혈병 환자를 둔 가족으로 글리벡 약가인하 투쟁에 참여하면서 환자운동에 뛰어들었다. 2010년 여러 환자단체를 중심으로 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출범을 주도했고, 현재 연합회 대표를 맡고 있다. 환자운동에 있어서 '권한이 있는 참여'를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위해서 적극적인 활동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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