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서리풀 논평] ‘재원 대책’을 묻는 진심은 무엇인가?

[라포르시안] 대통령 선거는 권력을 나누고 돈을 (재)배분하는 중요한 결정이기도 하다. 차별이 얼마나 줄어들지, 소수자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는지, 대통령 선거가 영향을 미친다. 어린이 복지에 쓰는 예산과 토목 공사에 쓸 나랏돈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는 돈(자원)을 배분할 때 나타나는 대통령 선거의 오랜 관행과 습관을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 단지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대통령 선거와 그 후보, 정당을 움직이고 반응하게 하는 오랜 습관. 그것은 어떤 약속을 할 때마다 따라붙는 질문, ‘재원 대책’이다.

다음은 눈에 띄는 대로 고른 일간 신문 기사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6 더 나은 삶 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38개국 중 28위에 그쳤다. 심지어 2012년과 비교하면 4계단이나 하락한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기초연금 인상 등 복지 확대에 힘을 쏟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대부분 재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아 ‘포퓰리즘’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특정 신문이나 기사를 가릴 필요가 없다. 조금만 돈이 많이 든다 싶으면, 재원, 포퓰리즘, 퍼주기, 탁상공론 등의 습관성 용어가 꼬리를 문다. 대통령 후보들이 직접 만나는 토론 때도 빠지지 않는 주제다. 공허하다고 서로 공박하는 것이 보통이다.

바람직한 변화에 돈(자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가가 하는 일에는 반드시 재정과 재원이 필요하다.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생각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당연하다.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재정과 재정 대책이 한 사회의 가치와 지향, 그리하여 권력관계에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언제나 진실인,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재정 판단과 계획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거나 작은 것이 달라지고 쉽고 어려운 것도 변화한다.

재정 규모에 대한 ‘감’을 익히기 위해.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저출산 대책에 지난 10년간 150조 이상의 국가 재정을 투입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특히 이명박 정부의 씀씀이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악명 높은 4대강 사업에는 22조~32조 원의 재정이 들어갔고(관련 기사 바로 가기), 2009~2013년 ‘녹색성장’을 위해 100조 원이 넘는 돈을 쓰는 계획도 세운 바 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또한 미래에 대한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박근혜 정부가 2020년까지 고속도로 건설에 30조 원을 쓴다고 발표한 것이 작년이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한마디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바로 그 고속도로 건설에 저만큼 돈을 쓴다니. 이런 계획이라면 국방도 빠질 리 없다. 며칠 전 국방부는 내년부터 5년간 방위력 개선에 78조 원을 사용할 계획을 발표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이것도 할 말이 많지만 참는다.

낭비를 없애고 지출을 효율적으로 하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이런 예를 드는 것이 아니다. 국가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지출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가치’라는 것, 따라서 어떤 지향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정치’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여러 후보가 약속한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국민연금, 장기요양 확충, 일자리에는 돈이 많이 든다. 몇 조에서 몇 십 조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언론이 처음 보는 듯 호들갑을 떨지만,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재원 대책이 없다는 지적(또는 비난)도 새삼스럽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돈이 더 든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증세를 피할 수 없지만,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증세를 둘러싼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권력과 경제권력, 언론이 합작한 ‘증세’ 정치!
 
재원을 둘러싼 권력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문제다. 치우침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재원 대책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가 누구인지 유심히 보라. 국가와 공동체, 공익을 앞세우는 듯 보이지만, 세 가지 특징을 숨기지 못한다. 

1.
기존의 국가 재정과 그 권력관계를 보호하고 옹호한다. 그들은 어떤 공약에는 결사적으로 재원 대책을 따지지만, 어떤 공약에는 몹시도 너그럽다. 공약의 내용뿐 아니라 방식도 문제 삼는다(예를 들어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데 돈을 쓰는 것은 반대한다).

과거에는 녹색성장과 창조경제, 지금은 여러 후보가 거론하는 4차 산업혁명에 재원 대책이 없다고 비판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국방 선진화 계획과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쓸 예산은 또 어떤가? 그것이 경제나 성장인 한, 누가 감히 ‘퍼주기’나 ‘포퓰리즘’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기존 패러다임을 흔들지 않으면 재원의 크기와 종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 채무 증가를 지상 최대의 악으로 보다가도,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양적 성장을 추구하자고 말할 정도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확장적 재정정책’의 대해서는 정세은 교수의 글을 참고할 것.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재원 대책을 문제로 삼는 공약은 정해져 있다!

2.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 하나. 증세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다그친다. 재정을 생각할 만큼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의 본심은 다르다. 말만 그렇게 하지 증세, 더 정확하게는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 형태의 증세에 반대한다.

무엇에 반대하는지 본심은 이미 드러나 있다. 법인세를 올리고, 고소득자에 대해 더 많은 소득세를 물리는 것. 또는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 보유세를 크게 올리는 것. 왜 반대하는지도 뻔하다. 이런 세금에 반대하는 본심을 “증세에 솔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으로 치환한다.

후보들이 세금을 올리겠다고 하는 순간, 이들이 비판하는 대상은 바로 바뀔 것이다. 증세는 기업과 경제 살리기, 국제 경쟁력과 성장동력, 연구개발 투자로 연결되고, 그런 말을 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무능한’ 경제 패러다임을 덮어씌울 것이다. 

3.
이들은 또한 효율성 논리를 금과옥조로 삼는다. 투입에 대비한 산출, 가격에 대비한 성능이 효율성의 산술이지만, 투입과 가격은 알게 모르게 고정되어 있다. 복지 예산에 국방 예산을 같이 생각하기 어려우니, 이른바 ‘주어진’ 자원 논리다.

OECD 평균 또는 꼴찌의 복지예산 논리가 있어 그나마 낫지만, 이것도 빠른 고령화와 압축 성장 논리로 묶인다. 지금 평균 이하여서 안심할 일이 아니라, 조만간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는 시간과 추세의 논리. 그 익숙한 건강보험과 연금 재정의 ‘고갈론’도 비슷하다.

재원 대책을 묻는 말은 (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효율화의 압박을 숨기고 있다. 낭비와 비효율, 도덕적 해이, 복지 부정수급이 괜히 나온 말일까. 효율화와 동반하는 재정 대책은 사실은 재정 억제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재정을 둘러싼 완고한 권력관계를 쉽게 바꾸는 묘수는 없다. 다음 정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토목예산, 국방예산, 무슨 차세대 성장 동력에 쓴다는 돈을 생각해 보라. 무수한 이해관계자와 그를 둘러싼 현실 정치는 쉽지 않은 도전이자 과제다. 

대통령 선거는, 그래도 기회다. 국가재정 규모는 물론이고, 4대강이나 창조경제의 예만 생각해도, 기초연금 확대나 아동수당 말을 꺼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니, 거의 유일한 기회다. 건강보험 재정을 생각하면, 진료비 부담 상한을 낮추고 장기요양을 확대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가. 다시 얻기 어려운, 새로운 논의와 결정의 계기가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국가 재정은 기술 이상이다. 무슨 정책을 왜 해야 한다는 목표와 가치, 그리고 그를 위해 대중과 유권자와 소통하고 공유하는 정치가 더 중요하다. 돈이 어디 있느냐 묻지 말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라.

꼭 해야 하는 일이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할 것, 질문과 대답을 전환해야 돈에 합의하고 또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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