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한상의 초청 강의서 "통과시키는 게 옳다" 밝혀... "이명박근혜정권 계승자" 비난 제기

[라포르시안]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가 찬성한 규제프리존법은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규제프리존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재벌들에게 미래전략사업에 파격적인 특혜를 주기 위해서 추진한 정책이라는 의혹을 샀다.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는 지난 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규제프리존법안과 최순실 게이트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수사를 요청하는 고발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법안이 제정되면 지역별로 특화된 미래 첨단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보건의료, 환경, 교육 등의 공공성이 우성해야 할 분야를 민영화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함께 유력 대선후보 중 한명인 안철수 후보가 이런 규제프리존법 제정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강연을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특별강연 동영상 화면 갈무리.
지난 10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강연을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특별강연 동영상 화면 갈무리.

안철수 후보가 논란의 발언을 한 것은 지난 1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국민의당 대선후보 초청 특별강연에서였다.

기자는 대한상의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초청 특강 동영상을 통해 이날 안 후보가 한 발언을 확인했다.

안 후보는 23분 정도 진행된 특강에서 한국이 처한 '5대 절벽'(인구·내수·수출·일자리·외교절벽)문제의 심각성을 짚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의 국정운영철학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건 기업과 민간의 몫이고 정부는 민간과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며 "규제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일이 많다. 규제는 개혁해야 한다고 믿지만 감시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강이 끝나고 약 6분간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한 참석자가 "내수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과감한 규제개혁에 나서줄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 질문의 답변 과정에서 규제프리존법을 언급했다.

안 후보는 "규제프리존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저를 포함해 국민의당은 통과시키자는 입장"이라며 "그런데 민주당에서 (규제프리존법 통과를)막고 있다. 규제프리존법을 막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인데,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통과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로부터 자유롭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창업드림랜드' 같은 단지를 만들고자 한다"며 "이곳에서 규제로부터 자유롭게 여러 가지 해볼 수 있도록 해보고, 점진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의원들 주도로 발의된 규제프리존법은?

안 후보가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규제프리존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 법안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전국 14개 시·도에 지역 특성에 맞는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집중 육성할 수 있도록 '규제프리존'을 지정해 육성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프리존 정책 방안이 처음 등장한 건 2015년 10월 7일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리였다. 곧이어 같은 해 12월 16일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자리에서 정부가 마련한 '규제프리존 도입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방안'이 보고됐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한 지역경제 발전방안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 지역 특성에 맞는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집중 육성할 수 있도록 '규제프리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게 골자였다.

정부가 규제프리존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3개월 만에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추진됐다. 2016년 3월 말 당시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이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2016년 5월 19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개원 첫날인 작년 5월 30일에 경제활성화 법안이란 명목으로 '규제프리존법'(이학재 의원 대표발의)을 다시 발의했다. 새누리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법안임을 명백히 드러냈다.

2016년 5월 30일 당시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 이 법안에는 당시 새누리당 의원 122명과 국민의당 의원 3명 등 총 125명이 서명했다.
2016년 5월 30일 당시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 이 법안에는 당시 새누리당 의원 122명과 국민의당 의원 3명 등 총 125명이 서명했다.

이 법안이 제출되자 정부는 "과감한 규제 특례와 네거티브 규제 혁신 시스템을 적용하는 규제프리존을 조속히 도입해 신기술과 융‧복합을 통해 지역전략산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국회를 향해 규제프리존법 처리를 촉구했다.

규제프리존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왜 재벌 대기업을 위한 특혜성 법안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규제프리존법은 기획재정부에 규제프리존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재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 특별법이 다른 법령보다 우선 적용토록 하는 게 핵심이다.

실제로 규제프리존법의 제3조(다른 법령과의 관계)에는 '이 법은 규제프리존에 적용되는 규제특례를 적용하는 경우 다른 법령보다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지자체에서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특례를 담은 조례를 만들 경우 이 법에 근거해 우선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의료법상 규정된 부대사업 범위를 지자체의 조례 제개정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특별법안 제43조(의료법에 관한 특례)에는 규제프리존 내 지역전략산업과 관련해 의료법상 규정된 부대사업 외에도 시도의 조례로 정하는 부대사업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해 놓았다.

특별법안 제4조(원칙허용 예외금지 규정 등)는 규제프리존에 한해 '네거티브' 방식의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4조 제1항은 '규제프리존에서는 다른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열거된 제한 또는 금지사항을 제외하고는 지역전략산업 및 이와 관련된 사업 등을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제2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규제프리존 내 지역전략산업 및 이와 관련된 사업 등에 대한 해당 법령을 운영·집행하는 경우 규정이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당 사업 등을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해 놓았다.

다른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제외하고, 관련 규정이 없거나 불명확한 모든 사업을 포괄적으로 허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또 규제특례를 지자체 단위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개별기업 단위로 적용하는 '기업실증특례' 규정도 담고 있다. 기업실증특례제도란 신규 사업을 개시하는 사업자가 특례조치를 제안하면 안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기업 단위로 규제의 특례조치 적용을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경북 지역에서 의료기기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데 현행법상 규제 때문에 사업 추진이 힘들다고 판단하면 기업실증특례 신청을 통해서 개별기업 차원의 규제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게 된다.

지난 1월 23일 오후 1시, 특검사무실 앞에서 ‘재벌특혜 규제프리존법 추진한 박근혜-최순실-전경련 특검 고발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1월 23일 오후 1시, 특검사무실 앞에서 ‘재벌특혜 규제프리존법 추진한 박근혜-최순실-전경련 특검 고발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단체 "규제프리존법, 미르·K재단에 입금한 대기업 위한 특혜법안" 의혹 제기

의료계 "의료영리화 추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안"

규제프리존법 제정 추진에 대해서 시민단체와 의료계 모두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의료전문가들은 오로지 기업의 이윤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법안이 제정되면 국민의 건강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5월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원칙허용·예외금지 규제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의료법 등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 이외에는 허용하도록 해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등 의료영리화를 적극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규제프리존법이 제정되면 의료법 등 보건의료관계법령의 상위법이 되어 기재부 주도 하에 보건의료분야를 경제 산업화 관점에서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권의 절대가치가 훼손될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이 법을 통해 의료법인의 임대업 허용 등의 부대사업이 확대됨으로써 수익의 다변화 및 극대화에 집중하는 등 의료영리화의 우려도 높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민사회의 반발은 훨씬 강경했다. 재벌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특혜법안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히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대기업들이 수백억원의 출연금을 낸 시기와 박 전 대통령이 규제프리존법 등의 이른바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촉구한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은 이런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다.

무상의료운동본부, 언론개혁시민연대,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는 지난 1월 박영수 특검에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비롯한 대기업 총수를 뇌물죄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2015년 10월부터 2016년 8월에 박근혜가 재벌들에게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할당하고, 돈을 받았다"며 "박 대통령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입금을 하자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주문하고 규제청정구역(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규제프리존법이 대기업의 입금 대가로 추진된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의 진보단체들은 이 법안이 제정되면 보건의료와 교육 등 국민의 삶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익적 가치를 파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규제프리존법은 사실상 모든 공공적 규제를 없애버리는 심각한 규제완화 법안"이라며 "박근혜가 언급한 '일단 모두 물에 빠트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해야 한다는 끔찍한 발언이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규제프리존특별법에 적시된 규제완화 대상 분야는 보건의료, 환경, 교육, 개인정보, 경제적 약자 보호 등 국민의 삶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익적 가치”라며 “규제프리존법은 국민의 삶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각종 규제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문재인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의 유은혜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일 논평을 내고 안철수 후보를 비난했다.

유은혜 수석대변인은 "안철수 후보가 자신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계승자임을 드러냈다"며 "규제프리존법은 박근혜 정부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통해 대기업에 입법을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대기업 청부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유 수석대변인은 "이 법은 의료, 환경, 교육 등 분야에서 공공 목적의 규제를 대폭 풀어 시민의 생명과 안전, 공공성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며 "안 후보와 국민의당이 국정농단 핵심 세력이 밀실에서 만든 정경유착의 표본과 같은 법을 꼭 통과시키겠다고 한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